장훈(張勳)선수가 있었다. 한국인이었지만 일본 야구인들은 그를 영웅이라 부른다. 생애 홈런 504개와 안타 3,085개를 치는 등 기록적인 선수생활을 했다. 재일한국인으로 어쩔 수 없었던 멸시와 홀대를 받으면서도, 치욕적인 한계상황에서 인내와 끈기로 자신의 분노를 실력으로 이겨내며 삭였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오사카 나니와상고에서 어렵게 어렵게 야구를 시작했던 무렵, 당시 프로선수 등용문인 고시엔(갑자원)대회에는 한국인이라는 이류로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하였다. ‘조센징’이 고시엔에 나가면 대회가 더러워진다고 놀려대는 바람에 밤새 울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장훈 선수는 이후 놀라원 성장을 거쳐 1990년 일본 ‘야구의 전당’에 입성하는 멋진 마무리를 일구었지만, 한국인으로 받았던 상흔은 늘 가슴깊이 남아있지 않았을까.
고시엔(甲子園). 전일본고등학교야구대회. 2024년 고시엔대회는 한국계 고등학교인 쿄토국제고(京都国際高)가 우승배를 거머쥐었다. 1947년에 한국계 고등학교로 시작하였지만, 이제는 딱히 한국학교라기보다는 일본 내 국제고 정도로 이해된다. 전교생 160명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한국학생이며 나머지는 일본인 학생들.
그럼에도, 학교의 뿌리를 간직하고자 한국말로 적힌 교가를 부른다. 고시엔대회 결승토너먼트에서 매 경기를 이기면 교가를 불렀다. 일본에서 한국말 교가가 일곱 번이나 우렁차게 흘러나왔다. 장훈선수는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소년 장훈은 초등학교 시절 일본인 급우들에게 둘러쌓여 구타를 당하거나 싸움에 휘말리곤 하였다.
학교에서 경고를 받고 돌아온 아들에게 어머니는 ‘한국인은 우수하고 용감하며 성실한 민족’이라고 자랑하였다. 어머니의 높은 긍지와 세심한 격려 덕에 굽히지 않고 일본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하는 교토국제고 교가의 4절을 읽으면 가슴이 더욱 웅장해 진다.
‘힘차게 일어나라 대한의 자손
새로운 희망 길을 나아갈 때에
불꽃같이 타는 맘 이국 땅에서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이 되자.’
누구였을까. 척박했을 여건으로 사면초가 환경에서 학교를 세워짓고 두고 온 나라 대한을 생각하며 아이들을 가르쳤을 그 사람들은. 역사를 되짚다 보면 뜻이 깊었을 사람들을 수없이 만난다. 눈앞의 이익에 목이 말랐다면 절대로 할 수 없었을 일들을 누군가 해낸 덕에 오늘 세상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필자가 어렸을 적에 들은 경고가 있다. ‘한국인 개인들은 우수하지만 그들을 모으면 힘을 잃는다.’ 이도 어쩌면 일본인들이 한국사람을 비하하느라 만들어낸 표현일지도 모른다.
고시엔의 고지를 점령해 내고야 만 학생선수들의 기개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힘들어도 우리는 무엇이든 해 낼 수 있다는 자부심을 살려야한다.
오늘처럼 나라 안에 뒤엉킨 문제들 앞에도 우리만의 긍지와 지혜로 돌파구를 열어내는 발걸음을 기대해 본다. 일본쯤이야 넘고도 남는 기백을 되살려야 하고, 오대양육대주로 뻣어가는 디아스포라의 정신을 일으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