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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Mar 22. 2018

나는 야한 떡이 좋다, 비원떡집_Since1949

오래된 것은 맛있다

나는 야한 떡이 좋다
비원떡집_Since1949     


떡을 좋아한다. 그냥 좋아한다는 고백이 아니라 영업용 떡 레시피 북도 갖고 있고 틈날 때 약밥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떡 공장에도 몇 번 가봤다. 이런 떡 사랑 때문일까…

자연스럽게 주말에 서울에 이름난 떡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취미의 한 종류가 됐다. 베이커리를 새로 찾는 것에서 얻는 신선함과 감동이 조금 사라져서일까. 빵은 항상 사는 곳에서 맛있는 것들로. 떡은 아직 정착할 만한 가게를 찾지 못했다.      


여러 가지의 떡을 모두 사랑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떡은 두 가지. 주악과 두텁떡이다.

주악은 쌀가루를 막걸리와 반죽해 튀겨낸 후 조청에 하룻밤 담가낸다. 한 입 베어 물면 쭈욱 퍼져나는 조청의 단 맛과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두텁떡은 찜기 위에 한 숟갈씩 떠낼 수 있도록 거피팥(껍질을 벗겨낸 팥)과 찹쌀, 뭉쳐 만든 소 등을 뭉쳐내지 않고 ‘얹어내’ 쪄낸다.

두 떡 모두 손이 많이 가고 취급이 까다로워 잘 하는 집은 고사하고 파는 곳조차 드물다.     




인사동 거리 입구, 채 추위가 가시기 전인 어느 날 네이버 지도를 켜들고 짜증을 내고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스마트폰의 버전이 올라가고 GPS의 기능이 비약적으로 좋아져도, 길눈이라는 타고난 자질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바로 앞 횡단보도에서 지도를 쳐다보다 한 번 신호를 놓쳤다. C와 함께 맞는 길인 것 같다는 추정을 하며 몇 걸음 더 걸어간 뒤 잘못된 골목으로 빠져 한참을 되돌아왔다.

상권이라고는 형성될 것 같지 않은 큰 길 어귀에 있는 떡집, 떡집보다는 모던한 갤러리에 가까운 유리 외관이다. 게다가 날씨 탓에 낀 김으로 떡집인지 알 수가 없었다. 찬 바람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이 벽을 타고 더듬더듬 문을 열자 인사동 거리 어딘가에 있을 법한 유리 쇼케이스가 보인다.  


떡이 몇 종류 남지는 않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두텁떡이 있으니 됐다. 뭘 먹을까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옆에 나란히 앉은 쌍개피떡도 맛을 보자며 집어 들었다.     

떡이 다 됐으니 차를 마셔야지, C와 고민을 시작했다. ‘길 따라 광화문으로 가서 커피숍에서 커피와 먹자’는 얘기가 나왔다가 추위와 시위 소식에 쏙 들어갔다. 다시 인사동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 맛있어 보이는 떡을 사서일까 며칠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일까, 오늘은 카페에 가고 싶지 않았다.  



골목을 조금 돌아 처음 보는 찻집에 들어갔다. 수녀님 두 분이 앉아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TV에서는 남자 배구경기 중계가 나온다. 다구(茶臼)가 선반 한 자리를 가득 차지했다. 이 동네에서 전통 찻집을 처음 와봐서일까, 참 낯설면서도 정감 있는 광경이었다.

아니 이게 웬일?

메뉴에 우전(雨前)이 보인다. 사실 당연할 수도 있는 구색이지만 몇 백 미터 앞 오설록에서도 세작이 전부다. 쉽게 맛볼 수 없는 차 메뉴에 마음이 들뜬다. 찻주전자와 포트, 찻잔까지 모두 나오고 C와 잡담을 나누다 내려온 첫 맛을 봤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다. 부드럽고 향긋하면서 은근히 입안에 감겨드는 맛이라니! 좋은 녹차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집약해 둔 느낌이었다.




미리 청해둔 접시에 떡들을 얹었다. 두텁떡도 맛있었지만 이 날 주연은 놀랍게도 쌍개피떡이었다.

자료_비원떡집.

음식에서 관능적이란 표현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음식을 먹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렇게 야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건 쌍개피떡이 처음이었다.


겉에 바른 참기름 덕에 집어 들자 고소한 향과 미끈한 외관이 느껴진다. 녹색과 흰색이 반씩 어우러져 엇갈린 떡 모양도 오묘하다. 입으로 가져가자 얇게, 아주 얇게 펴서 말아낸 메떡과 팥고물이 입안에서 밀려 스러지며 섞인다.

입에 넣자마자 사라지는 솜사탕이나 크로와상의 얇고도 바삭한 느낌과는 다르다. 입이 뇌에 줄 수 있는 가장 야하고 관능적이면서 원초적인 감각이다.


음식이 주는 달다, 짜다, 뜨겁다 등의 감각보다도 오래되고 충실한 감각인 촉감을 실컷 채워 넣는다. 즐겁다.     

한참 이렇게 떡을 즐기다 정신을 차리고 차를 마신다. 녹차가 살짝 떫은 느낌으로 맛을 확실하게 잡아주면서 입 안을 정리해준다. 떡과 차를 반복하며 먹는다. 주전자의 물이 비면 주전자를 채우고, 찻잔이 비면 차를 따르고.



C와 이런 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힘든 일, 복잡한 일, 즐거운 일…

수다와 쌍개피떡으로 휴일의 공백이 채워진다.      





오래된 것은 맛있다

사실 오래된 집들은 기본 이상의 맛을 보여준다. 1년 이내 문을 닫는 음식점이 50%고 10년 이상 살아남는 음식점은 30%라고 하는 시대다. 식품업계에 몸담은 이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음식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동안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점들은 뭐가 있을까. 이 글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오래된’이라는 말의 정의를 고민했다. 사전적 정의로 ‘오래되다’의 뜻은 아래와 같다.

[형] 오래-되다 ‘시간이 지나간 동안이 길다.’

한국에서 음식점이 15년 이상 되면 한 지역에서 터줏대감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오랜 시간 동안 운영된 가게들이 많긴 하지만, 일단 15년 이상 맛을 지켜온 가게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맛과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으나, 글의 성격상 최대한 경험에 의거해 작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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