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미 Nov 07. 2017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김진환제과점 _Since1996

오래된 것은 맛있다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김진환제과점 Since_1996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김진환제과점_Since1996


동네가 식빵 천지다. 2년 전쯤이던가, 다니던 직장 근처에 갓 구운 식빵을 파는 식빵 전문점이 생기던 게. 점심을 먹고 그 집의 갓 구운 식빵에 커피를 마시는 게 낙이었던 시절이 있었드랬다. 

몇 년 후, 그 식빵집과 같은 컨셉의 가게가 동네에도 생겼다. 엄청난 인기다. 저녁 해가 채 떨어지기도 전에 빵이 죄다 동난다.     


요즘은 ‘이런 식빵 전문점도 베이커리의 한 형태로 자리 잡는 걸까’ 생각을 한다. 그런 의식의 흐름 끝에는 언제나 김진환제과점이 있다. 신촌과 홍대 사이, 요즘은 경의선 기찻길 옆 ‘땡땡거리’라고 불리는 길 한 켠의 식빵 가게에서는 아침부터 식빵 냄새가 진동을 한다.

김진환제과점이야말로 요즘 뜨는 식빵 전문점들의 ‘원조’격인 가게다. 김진환 파티셰는 1996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새벽 4시부터 식빵을 만들고 있다. 

후계자를 계속 찾고 있지만 젊은이들도 고된 빵 일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기가 몇 차례라는 얘기를 들었다. 젊은이들도 하기 힘든 일을 매일 매일 하고 있는 노년의 파티셰라니. 화려한 기술이나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이 꾸준함이 맛의 비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카페 맞은편에 앉아 김진환제과점을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여러 유형이 보인다. 배달 대행업체 직원들이 몇 봉지씩 식빵을 챙겨간다. 동네에 사는 할머니가 매일 식빵을 사 옆의 의자에서 오물오물한다. 잘 빠진 외제차에서 내린 아주머니가 식빵봉지를 잔뜩 들고 차에 오른다. 어느 커플은 우유 1리터와 식빵 한 통을 들고 가게 옆에 앉아 우적우적 먹기도 한다. 참으로 와일드한 광경이다.      



구수하고 달큰하면서도 사람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 냄새에 홀린 듯이 다가간다. 채 식지 않아 비닐봉지를 열어 놓은 식빵들을 보고 있으면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식빵을 두 통이나 사버린다. 한 통은 바로 앞 피터캣의 커피 한 잔과 함께 앉은 자리에서 눈 녹듯 사라진다.

보들보들하고 폭신한, 속이 부드럽게 찢어지는 하얀 우유식빵은 그야말로 만점짜리다. 집까지 얌전하게 걸어가 식빵을 썰어 먹는 것은 이 냄새를 져버리는 행위다. 


걸어가면서 속을 북 찢어내 입에 넣고 잼도, 버터도 바르지 않은 식빵 맛 그대로를 음미한다. 탄수화물이 줄 수 있는 풍부한 단맛이 입안을 휘감고 나는 봄날의 고양이처럼 나른해진다.      



사실 동네의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서도 피자빵이나 고로케 종류는 매장 내에서 구워낸다. 하지만 어느 프랜차이즈에서도 식빵은 직접 만들지 않는다. 모두 잘 썰려 비닐에 포장된 채 우리를 만나왔던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따끈한 식빵의 맛과 촉감을 모르고 있었다. 

의외로 식빵은 꽤 까다로운 빵이다. 집에서도 넘치는 체력이나 반죽기가 없다면 만들기 어렵다. 쫀득한 결은 반죽을 얼마나 잘 했느냐에 달려 있다. 화려한 재료나 소스로 맛을 숨길 수가 없다. 그렇게 보면 식빵은 순수하고 가장 솔직하다.      



김진환제과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요즘은 식빵 외에도 소보루빵이나 케이크 등이 조금씩 생겼지만 그래도 메인은 따끈한 식빵이다. 노년의 사장님은 아직도 트레이 가득한 빵 반죽을 번쩍번쩍 들어 옮긴다. 가득한 식빵 반죽이 모두 오븐으로 들어가 식빵으로 재탄생한다.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광경이다. 모두가 가게 앞을 지나며 코를 한 번씩 킁킁거린다.     


토요일 아침, 독서모임을 위해 다시 제과점 맞은 편 카페에 왔다. 조금 일찍 도착해 쪼르르 빵집에 들른다. 손바닥만 한 밤식빵 한 통을 사서 먼저 온 네 명이 한 입씩 뜯어 먹는다. 


이야기를 나누기 전 따뜻한 식빵을 연료로 머릿속의 태엽을 감는다.      


맛있다는 말 보다 따뜻하다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잼이나 버터 따위 바르지 않아도 식빵 그 자체로 충만하다. 네모난 식빵 속에 행복해지기 위한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오래된 것은 맛있다

사실 오래된 집들은 기본 이상의 맛을 보여준다. 1년 이내 문을 닫는 음식점이 50%고 10년 이상 살아남는 음식점은 30%라고 하는 시대다. 식품업계에 몸담은 이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음식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동안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점들은 뭐가 있을까. 이 글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오래된’이라는 말의 정의를 고민했다. 사전적 정의로 ‘오래되다’의 뜻은 아래와 같다.

[형] 오래-되다 ‘시간이 지나간 동안이 길다.’

한국에서 음식점이 15년 이상 되면 한 지역에서 터줏대감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오랜 시간 동안 운영된 가게들이 많긴 하지만, 일단 15년 이상 맛을 지켜온 가게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맛과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으나, 글의 성격상 최대한 경험에 의거해 작성하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여름에 말하는 한겨울, 공주 이학_since195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