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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Mar 25. 2018

열두 시가 지나면…
김용안 과자점_Since1967

오래된 것은 맛있다

열두 시가 지나면…
김용안 과자점_Since1967
    


요 며칠 무리를 해서인지 또 어깨가 너무 아프다. 이런 날에는 삼각지 역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간다. 미로처럼 숨겨진 단골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어깨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술 좀 그만 마시라’는 이야기를 들은 뒤 점심을 먹으러 걸어간다. 

이 동네 부근에 산지도 몇 년. 이 동네에도 조금씩 예쁜 레스토랑들이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그 중 한 곳을 골라 굴 파스타와 와인 한 잔을 청한다. 낮에 마시는 술이 제일 맛있다는 말을 누군가 했었는데, 그에 걸맞게 불콰해진 얼굴로 큰길을 걷는다.

디저트를 뭘 먹을까 고민하다 자연스럽게 김용안 과자점 앞에 도착했다. 오늘 나만의 조합은 세련된 양식과 오래된 과자의 만남이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오늘 구워낸 센베들이 각각의 모양을 뽐내며 누워있다. 

소박한 가게 외관 덕에 쉽게 지나치기 쉽지만 김용안 과자점은 50년 전통의, 이제는 서울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센베 가게다.     



사실 센베 자체는 흔한 과자다. 4호선 이수역에서 7호선 이수역으로 갈아탈 때, 지하철 상가 한쪽에는 언제나 그람 단위로 달아 파는 막과자들이 있었다. 이 과자들이 ‘센베’라고 불린다. 

일본에서 볼 수 있는 간장을 발라 숯불 위에 올리는 센베와는 다르지만 어쨌든 이 과자들도 ‘센베’다. 밀가루 반죽을 튀기거나 굽고 설탕 시럽을 묻힌다. 깨와 땅콩 등을 듬뿍 묻혀낸다. 그야말로 어릴 때 할머니가 권하던 ‘오래된 과자’들이다. 


지하철에서 마구 퍼다 파는 막과자들은 공장에서 찍어내 도매로 판매되고, 최종 소비자인 우리는 유통기한이나 과자 설명조차 알기 힘들다. 사실 설명이 필요할 만큼 맛도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모두가 생각하는 ‘그 맛’인 셈이다. 


하지만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는 그 과자들과 달리 김용안 과자점은 뭔가 다른 특별함이 있다. 언제부터 쌓여 있었는지, 해변의 모래처럼 오랫동안 무지막지하게 쌓여있는 막과자들과는 그 궤를 달리 한다. 

김용안 과자점의 센베들은 주의 깊게 비닐봉지에 밀봉하지 않으면 열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아 눅눅해진다. 오늘 구워내 오랫동안 보관하지 않는 과자들인 셈이다. 바싹 마른 과자에서 신선함을 느낀다. 눅눅한 과자에서 느끼는 신선함이라니.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지하철에서 파는 막과자와 가장 큰 차이다.     


과자 진열장 앞으로 어떤 선물을 미리 열어볼까 고민하는 생일 파티처럼 과자 진열장 앞에서 마음이 들뜬다. 혼자 먹을 한 근(400g)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넣어 달라고 하고 싶다. 가격은 싸지 않지만 이것저것 욕심을 부리다 보면 두 근이 금방이다. 

김 맛, 생강 맛, 고소한 깨 맛까지… 이것저것 고르니 봉투가 금방 불룩해진다. 

과자 이름도 재밌다. ‘네모’라던가 ‘들깨’는 이름을 들으면 알겠다만 대체 ‘해삼’이라고 쓴 과자는 뭐란 말인가? 손바닥 만 한 센베에 땅콩 분태를 콕콕 박아낸 모양이 해삼의 돌기 같아 붙여진 이름이란다. 


땅콩을 싫어하는데도 뭔가에 홀린 듯이 “해삼도 하나 넣어 주세요”라고 청한다.


      

집에 도착하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걸어가며 센베 봉투를 열었다. 바삭바삭하면서도 정겨운 옛 과자 맛이 입안에 퍼진다. 생강 맛으로 시작해서 고소한 깨 맛으로 넘어간다. 깨 맛 센베에 한자로 ‘김용안’이라 새겨져 있다. 음식점이나 빵집에서 자기 이름을 거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직접 음식에까지 쓰는 일은 거의 없지 않은가. 오히려 신기하기까지 하다. 


프로가 자기가 만들어낸 것에 자부심을 갖는, 또 그것이 훌륭한 것을 느낀다는 것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과자를 떠나 어떤 작업에서도 뿌듯한 일이다.      

사실 김용안 과자점 과자는 매일 찾게 되는 과자는 아니다. 오늘처럼 가끔 만나는 과자지만 그때마다 한결같은 맛이기에 안심이 된다. 50년간 꾸준한 길을 걸어온 자부심에 박수를 보낸다.


집에서 커피를 한 잔 내려서 접시에 담고 우아하게 남은 과자를 먹어야겠다. 열두 시간이 지나기 전에. 

                      


오래된 것은 맛있다

사실 오래된 집들은 기본 이상의 맛을 보여준다. 1년 이내 문을 닫는 음식점이 50%고 10년 이상 살아남는 음식점은 30%라고 하는 시대다. 식품업계에 몸담은 이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음식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동안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점들은 뭐가 있을까. 이 글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오래된’이라는 말의 정의를 고민했다. 사전적 정의로 ‘오래되다’의 뜻은 아래와 같다.

[형] 오래-되다 ‘시간이 지나간 동안이 길다.’

한국에서 음식점이 15년 이상 되면 한 지역에서 터줏대감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오랜 시간 동안 운영된 가게들이 많긴 하지만, 일단 15년 이상 맛을 지켜온 가게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맛과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으나, 글의 성격상 최대한 경험에 의거해 작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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