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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Dec 08. 2022

왕가위, 피아졸라, 그리고 탱고

내가 왕가위 영화를 이해하게 된 것은 서른이 지난 뒤였다.

그전에는 파인애플 통조림 먹방을 찍는 잘생긴 금성무나, 이과수 폭포를 담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스탠드를 보며 ‘왕가위의 감성은 내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감성’이라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나는 왕가위의 영화보다 그의 영화 속 음악이 훨씬 익숙했다. 냇 킹 콜, 피아졸라, 마마스 앤 파파스… 재즈와 팝을 끼고 살다 보니 그의 영화를 이해하기 전 그의 음악에 훨씬 먼저 귀가 익숙해져 있었다.  


   

그의 영화 중 하나 

해피투게더를 다시 봤다. 탱고를 시작하고 나서는 처음 하는 관람이다. 

지구 반대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었던 두 남자의 이야기는 돌고 돌아 내 인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나에게 탱고를 권한 C는 영화가 너무 좋아 대학을 영화과로 다시 들어간 자타공인 영화광이다. 그녀가 탱고를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양조위와 장국영 때문이었다. 인생의 나비효과를 이런 곳에서도 느낄 수 있다.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Libertango)가 흐르는 영상 속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거리는 사뭇 신기하고 이국적이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피아졸라의 음악에 맞춰 실제 밀롱가에서 우리가 춤을 추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 애절한 반도네온 소리는 사람의 가슴을 후벼판다.  

영화 속 밤거리와 밀롱가는 크게 화려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내 머릿속에 ‘살면서 한 번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야겠다’는 것이 인생의 버킷 리스트로 자리 잡아 버렸다. 

영화 속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거리와 밀롱가, 지금도 남아있다는 탱고 바 수르(Bar sur) 까지. 양조위가 언제든 앞에 서 있으리라는 환상은 진즉에 버렸지만, 바의 사진만 봐도 가슴이 뛴다.      



연애 같은 탱고, 탱고 같은 연애 

밀롱가 밖에 서 있는 양조위 너머로 아련히 들리는 탱고 음악이 ‘무슨 악단이래...’ 생각하며 악단을 찾는 걸 보니 나도 어지간히 탱고에 미쳐있는 것 같다.

사실 영화 속에 흐르는 피아졸라의 음악은 애절한 정서를 오롯이 담고 있지만, 직접 탱고를 추기에 편안한 음악은 아니다. 실제 밀롱가에는 오히려 4대 악단, 5대 악단이라고 부르는 1920~1960년대 황금기의 음악들이 2020년대의 밀롱가 전반을 수놓는다.      

해피투게더 속 아휘와 보영은 함께 탱고를 춘다. 내게는 영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내가 찾는 서울의 밀롱가에서도 흔한 광경은 아니지만, 남자들끼리 탱고를 추는 일도 종종 있다. 탱고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남자들끼리 추는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도 하고, 유튜브를 보다 보면 마에스트로들 둘이 추는 탱고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아휘와 보영이 함께 추는 탱고는 기술적으로 훌륭한 아르헨티나 마스터들의 그것은 아니다. 힘이 넘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성별만 치환해 놓고 보면. 좀 더 뭐랄까, 그들의 춤은 감정의 흐름 자체만을 놓고 보면 남녀가 추는 ‘연애 같은’ 탱고에 가깝다.

탱고를 추는 이상적인 마음가짐에 대해 많은 땅게로스들은 상대방과 ‘그 순간만큼은 연애하듯이’라고 말한다. 음악이 끝나면 속절없이 헤어지지만, 서로 안은 채 가슴을 맞대고 서서 함께 걷는 그 순간에는 오직 세상에 둘만 있는 것처럼 추라는 이야기다. 

양조위와 장국영도 그들의 세상 안에서 그들만의 탱고를 추고, 또 췄다. 내가 탱고를 배우고 바라보는 그 순간은 더 애절했다. 

C가 보여 준 해피투게더 메이킹 필름 안에는 탱고 씬을 찍기 위해 담배를 물고 연습에 임하는 장국영이 있었다. 과연 이 춤이 무엇이길래 이들을 이렇게 만들 것인가, 이들의 연기를 넘어 남들의 가슴을 이렇게 울리는 것인가. 탱고라서인가 둘의 관계가 애틋해서일까. 만감이 교차했다.


기억에 남는 영화 속 한 장면이 더 있다. 

사실 현실적인 탱고를 추는 사람이기에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다.

‘너는 왜 연습을 안 하냐’며 양조위에게 뭐라고 하는 장국영이었다. 남녀고 나이고 모든 것을 떠나 파트너라는 사이는 모두가 저렇게 비난하며 살아가는 것인가!

애절함 속에 묻어났기에 현실 한 스푼이 이렇게 뼈저리게 웃긴 것인가 싶었다. 알고 보는 영화가 더 무섭고 절절하다. 

    


촬영이 끝난 후 해피투게더의 시사회 현장. 홍콩의 거장 감독과 슈퍼스타 둘이 지구 저 반대편에서 진행된 촬영이 궁금했던 기자들이 양조위에게 물었다.


“장국영과 함께 춤을 춘 기분은 어땠습니까?”


그는 답변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탱고를 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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