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여의도가 보인다. 나는 지금 여행하고 싶다.
여느 시골 초등학교가 그렇듯 우리 학교도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다. 당연한 순서에 따르듯 옆 학교 따라, 다른 시골 학교 따라 결국 도착하는 곳은 이곳이나 저곳이나 결국 서울일 수밖에 없었다. 경주 다음 서울. 시골 학교는 서울과 경주라는 곳을 관광시켜줄 의무가 있었던 것 같다.
서울로 2박 3일간 수행여행을 떠난 나는 멀미 때문에 1시간도 제대로 눈을 못 떴다. 버스 안에서는 멀미에 기절하기를 자처하고, 버스 밖에서는 멀미 후유증 때문에 기절하기를 자처했다. 새벽부터 멀미약을 마시고, 귀밑에 스티커를 붙여봐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가는 곳마다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의무실이었고, 나는 항상 그 하얀 조명 아래 몸을 웅크린 채 신음하고 있는 것이 수학여행의 전부였다. 그 병실 같은 곳의 숨 막히는 시간이 여행이라면 다시는 여행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2박 3일을 숙소와 버스, 의무실에서 모든 시간을 허비하는 게 여행이라면, 다시는, 절대, 여행 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밤이 저무는 날, 이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다면 달리던 버스 안, 겨우 눈을 떠 뭉클하게 바라본 서울의 밤, 여의도만이 기억에 남았다.
수학여행 이튿날 저녁, 눈을 떠 보니 버스는 넓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었고, 친구들은 들뜬 얼굴로 버스를 앞서 내리기 위해 통로에 있는 사람을 밀치며 소리를 질러댔다.
"야, 좀 비켜 봐!!"
"빨리 좀 내리자!!"
난 그 소음에 눈을 뜬 것 같았다. 누군가의 빨리 내리라는 그 말이 잠들어 누워있던 나를 향하는 듯 날카롭게 다가왔다. 분명 수원 화성이었던가 어떤 성벽을 본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나는 그 성벽을 마지막으로 기절한 것 같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여리한 몸, 실타래같이 가느다란 머릿결이 어렴풋이 내 볼을 스친 것이 떠올랐다. 아마도 여태까지 그랬듯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기절해버린 나를 업어 의무실로 달려간 것 같다. 올해 처음 교사가 된 우리 담임 선생님. 가녀린 몸으로 매번 나를 업어 나르시느라 이틀간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시고 계신다. 여행 와서 갑자기 멀미에 기절한 학생을 본 선생님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생각은커녕 놀란 가슴을 움켜쥐고 그저 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놀란 표정에 땀으로 흠뻑 젖은 담임 선생님이 그려지자 민폐만 끼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신이 들수록 자괴감은 더 몰려왔다.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고, 이곳은 도대체 어디인가? 왜 나는 계속 아파야 하고, 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야만 하는가? 한숨이 절로 나온다. 땅이 꺼져라 길게 숨을 뱉고 겨우 창문으로 시선을 던졌다. 얼룩진 유리창 너머에 궁전처럼 생긴 건물 입구가 보였다. 마치 동화 속에 존재할 것만 같은 건물이었다. 저 문을 넘어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은, 어쩌면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지붕 아래에는 정말 동화 속으로 초대한다는 전광판이 초마다 여러 색깔로 반짝였다. 빨간색이었다가, 노란색이었다가, 초록색이었다가, 분홍색이었다가. 쉼 없이 다른 빛깔을 뿌려댔다. 여러 색으로 물들이는 그곳을 보자 동화 속으로 초대한다는 그 말을 조금은 믿고 싶어 졌다. 궁전 같은 건물과 반짝이는 빛, 더불어 살짝 뿌연 하늘이 조금 옅은 하늘색, 말하자면 파스텔을 뿌려놓은 듯한 하늘이 펼쳐진 이곳은 동화 속 세상, 에버랜드였다.
매표소 앞에 반 별로 줄 지어선 우리는 동화 속 나라에 초대받기 위해서 모두 자유 이용권을 끊었다. 빅 3이라던가 원하는 놀이기구의 표만 살 수도 있었지만, 학교에서 단체로 계산한다는 이유로 전교생이 전부 자유 이용권을 끊어야 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지배하는 멀미 때문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어떤 놀이기구도 탈 수 없었지만, 그때는 군중을 벗어나는 법을 몰라 어쩔 수 없이 학교의 의견에 따라야 했다. 그렇게 내 손목에는 밴드 형식의 자유 이용권이 채워졌다. 채워진 입장권에 내 의사는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지만. 그래서였을까, 표를 끊고 나니 괜한 오기가 생겼다. 2박 3일의 모든 시간이 버스, 의무실, 숙소. 이 세 곳에서 신음하는 시간으로 끝나는 게 억울했었던 모양이다. 태어나서 처음 와 본 놀이공원, 나도 한 번쯤은 신나게 놀아보고 싶었다.
시골에 살던 나는 층층이 쌓아진 아파트 대신 농가 주변의 작고 허름한 주택이라 표현하며, 사실상 다 무너진 집에 살았다. 집 뒤엔 공동묘지가 펼쳐져 있었고, 집 옆으로는 햇빛을 모두 가리는 감나무 밭으로 인해 음침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이런 시골 마을에 산다는 것은 절대 하늘을 달려볼 일이 없다는 것을 뜻했다. 시골만의 푸른 하늘을 눈으로만 바라보아야 하는 것, 그건 실로 잔인한 일이다. 하늘에 깔린 레일 위로 바람을 맞으며 공중을 달리는 롤러코스터 대신 길게 뻗은 논 위를 터덜터덜 달리는 자전거. 그 하늘만이 내게 허락된 세상이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꿈을 꾼다. 터덜터덜 보리밭 대신 저 솜사탕 같은 구름 사이를 달리고 싶다는 꿈. 나는 자전거를 타고 모내기하는 할머니 옆을 지나칠 때면 언젠가 꼭 롤러코스터를 타고 하늘을 달리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 하늘에서 부는 바람과 지상에서 부는 바람의 차이, 하늘을 달리며 만끽하는 바람, 상상만으로도 그 상쾌함이 내 심장에 스며들었다. 넓게 펼쳐진 논이 아닌 커다란 아파트와 하늘을 치솟은 빌딩도 보일 것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그 황홀한 세상은 시골 소년의 꿈을 말하고 있었다.
하늘을 달리는 롤러코스터의 그 환상적인 세상을 상상하자 내 몸이 아픈 것도 모르게 되었다. 아니 그 세상을 보기 위해 나는 내 아픔을 모른 척하고 궁전처럼 보이는 에버랜드 입구를 통과했다. 동화 속 나라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그것은 어쩌면 어린아이의 꿈을 실현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꿈속에 들어간다. 하늘을 달린다. 내 2박 3일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에버랜드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환상적이었다. 정말 동화 속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커다란 관람차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바이킹이 좌우로 하늘 높이 치솟는다. 서서히 올라가 정상에 다다랐을 때 스르륵, 바람 소리와 함께 함성인지 괴성인지 모를 소리와 같이 땅으로 떨어지는 자이로드롭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 높은 곳에서 보이는 이 동화 속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나같이 만화책으로 보았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궁전이나 알라딘에 나올 법한 건물들. 문득 하늘을 날아 이곳을 내려다보고 싶어 졌다. 그건 아마도 화자가 되어 동화를 읽어 내려가는 것이리라.
이 거리에서 나는 동화 속 나라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누구든 주인공이었다. 화단에 핀 꽃은 옅은 바람에 살랑이고, 츄러스를 입에 문 꼬마는 해맑게 웃었다. 그 사이에 마주 잡은 두 손은 당신이 주인공이 아니면 누가 주인공이냐고 말하는 듯, 이곳은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 보였다. 어쩌면 바람에 살랑이는 꽃은 해맑은 아이와 마주 잡은 두 손을 배경으로 한 주인공이었고, 해맑은 아이는 바람에 살랑이는 꽃과 마주 잡은 두 손을 배경으로 한 주인공이었고, 마주 잡은 두 손은 바람에 살랑이는 꽃과 해맑은 아이를 배경으로 한 주인공이었다. 모두가 중심이고, 모두가 사랑이었다.
형형색색의 풍선 다발을 들고 거리를 누비는 연인이 사람들 틈에서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 담긴 세상은 동화를 배경으로 한 당신, 그리고 또 당신. 그렇게 서로만이 존재할 것이다.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을 클로즈업한 상태. 세상은 그 둘만을 비추어 그들을 둘러싼 수백 명의 인원을 프레임 속에서 모두 지워버렸다.
나는 이곳이 우리나라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시골 소년에게 이런 세상은 처음이었다. 주위 경관에 압도되어 넋 놓고 이곳저곳 둘러보니 저 멀리 하늘과 구름 사이로 길게 뻗은 레일이 눈에 들어왔다. 직감적으로 그 길은 롤러코스터가 달리는 길이란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위를 달리는 열차를 바라보았다. 바라본다는 건 그곳을 향한다는 것. 한동안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 그것이 내지르는 소리에 심취하다, 문득 잠에서 깬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툭 치고 지나갔다. 부딪힌 충격에 정신이 든 나는 머리를 양옆으로 휘저어 보았다. 흔들림에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발걸음을 재촉했다. 바라본다는 건 그곳을 향한다는 것.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 꿈을 이루는 순간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꿈은, 그러나 쉽사리 찾아오지 않는다. 롤러코스터의 출발지를 찾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이 넓은 동화 속 세상에서 롤러코스터의 입구를 찾는 것은 뫼비우스의 띠를 걷는 기분이었다. 안내판을 보며 잘 따라간 것 같았는데, 결국 도착하는 곳은 똑같은 놀이기구의 앞이었다. 세 번쯤 플라잉 레스큐라는 어린이용 자이로드롭 입구에 도착하자 길을 찾는다는 건 모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모험은 항상 헤매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주인공은 모험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곳에선 누구든 주인공이었으므로 나 역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주인공이란 생각보다 힘든 역할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살짝 스쳐 갔다. 어쨌든 내 모험은 꿈을 향해 가는 길이니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표지판을 한번 보고, 지나가다 주운 에버랜드 지도를 한번 훑고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꼭 롤러코스터 입구에 도착하리라.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이루어낸다는 것. 그런 믿음으로 플라잉 레스큐 입구를 또 한 번 지나친 뒤, 나는 겨우 롤러코스터 입구가 어떻게 생긴 지 확인할 수 있을 뻔했다. 확인할 수 있을 뻔, 했다. 지도가 가리키는 곳이 분명 이곳이 맞을 텐데, 무엇인가 성벽을 이루듯 내 앞을 가로막았다. 마치 개미들이 먹이를 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롤러코스터를 타기 위해 많은 사람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까치발을 들어보았지만, 입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긴 줄이었다. 시골 소년의 눈에 이렇게 긴 줄은 처음이라 그랬던 건지 이 줄은 영원히 줄어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역시 꿈이란 쉽사리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보다. 한숨을 쉬며 포기할까 하다가 내가 언제 다시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중학교 수련회는 거제도를 갈 것이고, 수학여행은 경주를 가겠지. 고등학교 수련회는 경주를 갈 테고, 수학여행은 제주도를 가겠지. 시골 학교의 순서에 따라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떠올려보니 결국 지금이 아니면 어른이 되기 전까지 다시는 타지 못할 것 같았다. 시골에 사는 내게 에버랜드는 저 멀리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하는 외국과도 같았다.
나는 수학여행에서 하나의 추억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2박 3일간 몸져누운 기억만 있다면 나는 다시는 여행 따위 떠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다른 놀이기구는 타지 않아도 괜찮다, 롤러코스터만 타면 된다는 생각으로 개미들의 줄에 합류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기 전까지만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다면 얼마든 기다리겠다고 마음먹었다. 모험의 끝에는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쾌감으로 내 온몸에 전율이 일 것이니 얼마든 기다려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시골소년은 어른들 틈에서 앞이 보이지도 않는 긴 줄을 혼자 기다리게 되니 알 수 없는 공포감이 생겼다. 그것은 마치 모험의 끝에 무엇이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아찔한 불안감이기도 했다. 대학교 4학년이 되어 졸업할 때를 상상하는 그런 기분. 막연한 불안감. 내 옆으로 괴성을 동반한 채 하늘을 달리는 롤러코스터 탄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내 차례가 됐을 때 공포감에 휩쓸려 도망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내지르는 괴성 속에서 황홀한 음성이 희미하게나마 들려왔다. 공포나 불안보다는 시원하게 내지를 수 있는, 마음속 응어리를 모두 던져내 버린 황홀한 음성. 나는 롤러코스터 탄 그들처럼 황홀감에 젖어 탄성을 내지를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하늘을 달릴 때는 어떤 기분일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공포감보다는 내 심장 소리가 더욱 커져갔다.
1시간쯤 기다렸을까? 드디어 롤러코스터 매표소 입구에 도착했다. 개미들이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된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다는 생각에 밝게 미소 지으며 얼른 입구를 통과하려 하는데, 매표소 직원이 뚱한 표정으로 나를 막고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크게 한번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옆에 눈금이 그어져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직감적으로 키를 검사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혹시 못 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눈금 앞에 섰을 때 뒤꿈치를 살짝 들고 말았다. 그 사실을 들키지 않길 바라면서, 또 속으로 제발 그냥 넘어가라, 수없이 외치면서 나는 애원 가득 담긴 눈으로 직원을 쳐다봤다. 직원은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나를 다시 한번 크게 훑어보더니 들어가라고 안내해 주었다. 아마도 내 뒤의 긴 줄이 부담되어 빨리 들여보낸 것 같았다. 그 당시 내 키는 뒤꿈치를 살짝 든다고 해도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는 높이가 아니었다.
나는 운이 좋았던 건지 이번 차례에 타는 사람 중 가장 먼저 열차에 입장했다. 잠시 동안 꿈에만 그리던 롤러코스터의 기다랗고 늘씬한 몸매를 감상할 수 있었다. 칸칸이 물결처럼 부드럽게 이어진 롤러코스터의 그 섹시함이란, 여느 모델들의 S라인 부럽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기 전에 얼른 뛰어가 가장 앞자리에 앉았다. 그곳이 가장 멀리 보일 것 같았다. 내 앞에 사람이 있다면 아무리 가까운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긴 줄을 기다리며 배웠던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좌석에 착석하자 안전바가 내려왔고, 직원의 안내 멘트와 함께 롤러코스터는 수많은 긴장감을 품고 하늘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치솟았다. 롤러코스터가 하늘을 향해 올라갈수록 내 심장은 터질 듯 쿵쾅대기 시작했다.
롤러코스터가 올라갈수록 하늘로 치솟은 레일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끝에 다가갈수록 내 심장 소리는 점점 커져갔고 내 그 끝에 다다르자 심장이 더는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마치 심장이 터져버려 더는 호흡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의 긴장감은 마치 첫사랑의 살결을 처음 만질 때처럼 적막하고 고요했다. 앞으로 다가올 폭풍은 이 고요함에 비례해 더욱 거세고 잔인하게 몰아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순간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하늘 위로 천천히 올라가던 롤러코스터가 오르막길 끝에 다다르자 여기저기서 환희, 기쁨, 절망, 고통.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소리 없이 다가왔다. 고요한 가운데 일렁이는 그 감정들은 밀려오는 파도가 모래사장을 적시듯, 내 몸 곳곳을 샅샅이 훑어버렸다. 파도가 모래사장을 덮으면 스며든 물의 흔적이 남는다. 마찬가지로 훑고 지나간 파도는 내게 슬픔이란 감정을 고스란히 남겨주었다. 나는 의아스러웠다. 드디어 하늘을 달려본다는 기쁨에 젖어야 할 텐데, 무슨 일인지 파도는 내게 슬픔을 남겨주었다. 내가 하늘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무서워졌기 때문이었을까? 공포가 점점 거세져 이내 슬픔으로 변질됐다.
롤러코스터는 미친듯한 속도로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열차가 레일을 벗어날 것만 같았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안면을 강타하는 바람도 마찬가지로 거세졌고, 나는 도저히 눈을 뜰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심지어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내가 상상했던 롤러코스터는 소리 지르며 뜬 눈으로 멀리 펼쳐진 빌딩 숲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며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벙어리 신세가 됐는지 알 수 없었다. 여태까지 이것을 타려고 그 긴 시간을 기다렸던 것인가? 나는 나 자신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야 했다.
롤러코스터가 360도 회전하는 구간에서 엉덩이가 의자 위로 살짝 떠 나는 안전바에 걸친 신세가 됐다. 마치 롤러코스터에 내가 있을 자리는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롤러코스터는 쉬지 않고 달렸다. 기계는 내가 겪는 고통 따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내 엉덩이가 공중에 떠 있어도 계속해서 달릴 수밖에 없는 롤러코스터에 나는 스멀스멀 멀미가 올라왔다. 여태까지 잘 참아왔던 멀미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했다. 몸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롤러코스터를 타려던 오기의 죗값일까, 결국 목구멍으로 솟구치는 위액이 느껴졌다. 목구멍을 넘나드는 불순한 향기가 내 코끝에 닿았다. 다행이라면 롤러코스터가 달리는 속도 덕분에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했던 것이 나를 열차에서만큼은 토할 수 없게 막아주고 있었다. 상상은 착각이고 꿈은 역시나 어려운 것이리라. 이 여행의 유일한 추억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롤러코스터는 이 여행 최악의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내 꿈은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고통의 시간이 모두 지나가고 열차는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안전바가 올라가자마자 사람들 틈을 헤쳐 기둥이 보이는 곳으로 무작정 달려갔다. 겨우 기둥을 잡은 채 입을 벌리자 누리끼리하고 투명한 액체가 쏟아졌다. 위액이었다. 죽도 제대로 먹지 못해 그러다 위액을 토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은 사실로 밝혀졌다. 초등학생 혼자 기둥을 잡고 위액 토하고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은 주변을 둘러싸고 "어떡해."라는 말만 반복했다. 어떡하긴, 빨리 나의 등을 토닥여주고, 속을 게워내면 의무실로 실어 보내야지. 하지만 사람들은 어떡하냐는 말만 할 뿐 아무도 등을 두드려주지 않았다.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이곳에서 나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악당이 된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속을 게워내고 정신이 조금 드니 구경거리가 된 것에 수치심이 몰려왔다. 그러나 곧 그보다 더 큰 고통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 머리는 종이었고, 누군가 망치로 두드렸다. 그 울림은 사람을 미치게 하기 충분했다. 차라리 버스에서처럼 기절하고 싶었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머리는 벌레가 꿈틀거리는 듯 지끈거렸고, 다리는 힘이 풀려버렸다. 나는 몽롱한 상태로 몇 걸음 걸어가다 앞으로 고꾸라졌고, 결국 필름이 끊겨버렸다.
눈을 떴을 때는 에버랜드 안에 있는 의무실이었다.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하얀 조명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니 서글퍼 눈물이 났다. 사실 부담스러운 비용 때문에 수학여행 오는 걸 집에 비밀로 하고 있다가 선생님들의 설득으로 인해 겨우 오게 된 수학여행이었는데, 결국 아파 쓰러져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을 텐데, 부모님께 부담 주지는 않았을 텐데. 후회됐다. 후회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울다가 지쳐 또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달리는 버스 안이었다. 버스 안은 불이 모두 꺼져있었다. 버스를 집어삼킨 어둠은 흐리멍덩한 시선에도 지금이 밤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항상 그랬듯 의무실에서 잠들어 있다가 누군가의 부축으로 버스 맨 뒷자리에 실린 것 같았다. 친구들은 놀이공원에서 신나게 놀았던 건지 모두 잠에 취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다들 롤러코스터를 실컷 타고, 바이킹도 타고, 자이로드롭도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동화 같은 풍경에 사진도 찍고,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동식물 속에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세상을 마주 했겠지. 내 앞에 앉은 친구 머리에 동물 모양의 모자가 쓰여 있었다. 에버랜드에서 파는 여우 모자였다. 친구들이 잠든 모습을 보자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서러움이 솟구쳤다. 나는 아무것도 타지 못하고 타서도 괴로움뿐이었는데, 나만 빼고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친구들이 잠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겨우 몸을 일으켜 핼쑥해진 얼굴을 창문에 기댔다. 남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창문에 달린 커튼을 쳐 나를 가리고 아무도 몰래 그곳에서 혼자 흐느꼈다.
울면서 창문 밖을 바라보는데 큰 빌딩 하나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학교에서 어렴풋이 들었던 63빌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도무지 볼 수 없는 높이와 색상의 빌딩이었다. 좀 더 시선을 아래로 두자 물이 보였다. 버스는 한강 위를 달리고 있었다. 일렁이는 물길을 보자 내 심장에서 알 수 없는 뭉클한 감정이 일었다. 왠지 내 눈물이 쏟아져 물길이 생긴 것만 같았다. 물길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니 저 멀리 어둠이 내려앉은 밤에도 무지개가 핀 듯 다리 하나가 조명에 빛나고 있었다.
눈물에 담긴 서울의 밤은 불빛 하나하나가 모두 별처럼 보였고, 별들은 서울을 환하게 밝혀주는 것 같았다. 항상 사진으로만 보던 별을 가까이서 보자 내 마음에서 알 수 없는 파동이 느껴졌다. 하늘을 달리는 걸 상상할 때보다 내 심장이 더 두근거렸다.
나는 창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밤공기가 상쾌하게 다가왔다. 별들이 밝혀주는 세상과 상쾌한 공기, 하늘 대신 물 위를 달리는 버스. 이 모든 것이 소중하게 느껴져 작게 미소 지었다. 여행 떠나 이틀 만에 처음 짓는 미소였다.
어쩌면 이 풍경이 내 첫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밤. 2박 3일 동안 내가 만난 세상은 별처럼 빛나는 서울의 밤뿐이었다.
그때 보았던 서울의 밤은 한강대교를 건너면서 본 여의도의 모습이었다. 이미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버스 안에서 보았던 여의도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63빌딩과 함께 반짝이던 한강. 일렁이는 물길이 주던 뭉클한 감정. 그것은 아마 여행이 주는 감동이 아니었을까? 나는 요즘도 그때의 추억에 잠겨 여의도 주변을 서성이고는 한다. 우리 삶은 결국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가는 법이니까. 서울은, 여의도는 내 여행의 시작이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10년이 지나고서야 서울로, 여의도로 돌아왔다. 내 여행의 시작점. 지금 내 눈앞에 여의도가 보인다. 그때 처럼 몸져 누워도 좋으니 나는 또 여행하고 싶다. 여행이란, 돌아오면 또다시 떠나고 싶어 지는 것이니까.
여전히 63빌딩은 밝고, 한강은 일렁이고, 서울이 담은 빛은 별과 같고, 저 멀리 다리 하나가 조명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