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구요? 잘 모르겠는데요 ” “저 있는 그대로 나왔네요. 근데 참 싫어요 다시 하면 어떨까요?” “ 어떤 부분은 맞는 거 같은데 어떤 부분은 제가 아닌 것 같아요. 혹시 제가 한 두개는 고민하다 놓쳤는데 그래서 결과가 잘못 나온 걸까요”
클럽턴 강점 진단을 한 이후 리포트를 보면서 나오는 제 각각의 반응들이다. 20대의 경우 대부분이 맞긴 한 거 같은데 설명이 필요하다 또는 내가 진짜 맞는지에 대해 반신 반의 한다. 그러다 코칭을 받다 보면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한다. 맞네요. 저군요!
최근 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리포트를 보고 이건 정말 내가 맞아요! 라고 전적으로 동의한 경우가미국에서 80%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아직 조사하지는 않았지만 사업상 매일 만나는 고객을 대하다 보니 나의 경험에 비추어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20대와 30대의 경우는 50% 미만, 40대이상인 경우 70-80%가 맞다고 답변을 한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에 비해서 나의 강점에 대한 리포트를 보고 바로 인지하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다.
아무래도 경쟁을 부추기고 성과 주의에 물든 교육 환경과 치열한 사회 환경을 거치면서 자존감 낮아지고 자신에 대한 인지 또한 낮을 수밖에 없다.
자존감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이 삶에서 마주하는 기본적인 도전에 맞서 대처할 능력이 있으며, 행복을 누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내적 경향이다. 이러한 자존감은 자기 효능감과 자기 존중감으로 구성되어 있다.1)
자기 효능감은 자기 정신의 기능에 대한 믿음이자, 자신의 생각, 이해, 학습, 선택, 결정 능력에 대한 믿음이다. 자기 존중감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뜻한다. 자신에게 살아갈 권리와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긍정적인 태도, 자신의 생각과 욕구와 필요를 적절히 주장하는데서 얻는 위안, 그리고 기쁨과 성취감을 누리는 것이 자신의 타고난 권리라는 느낌이 여기에 포함된다.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국내 최고의 기업의 임원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투자에 실패하고 회사에서 해직된 이후 줄어든 수입을 보고 그런 안타까운 결정을 한 것이다. 줄어든 수입이라고 해도 대치동에서 중산층의 위치는 보장된 경제적 규모였다. 아이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전교 1등을 한 고등학생이 어느 날 전교 10등을 하고 순간 자살을 선택했다. 도대체 사회에서 학교에서 소위 잘나가는 그들이 자살이라는 자신을 해치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은 필자는 자존감의 문제하고 본다.
본인 능력에 대한 최고의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고 경험도 많이 했겠지만 그들은 자신의 가치를 경제적 가치나 학교 등수에 두었던 것이다. 낮아진 자기 존중감이 결국 자존감을 무너뜨려 결국은 해서는 안될 선택을 하도록 했다.
추석 연휴 기간동안 최근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 중 하나인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를 읽었다. 두꺼웠기에 어느 정도 도전의식을 가지고 시작했고 며칠에 거쳐 읽어 나갔다. 그 중에 나를 사로잡는 문구가 있었다면 “행복”에 관한 그의 말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에너지나 파워의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진화해 왔지만 행복이라는 측면에서는 나아진 것이 없다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자기 정체성, 능력, 가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행복을 일구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자기 정체성과 능력은 어떻게 알아질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라는 격언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알려져 왔지만 어떻게 나를 아는지에 대한 방법에 대해서는 종교적인 방법이외에 배워본 적이 없었다.
나를 아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자.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은 나의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사고, 행동, 감정의 패턴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수행할 때 나의 내재적 동기는 빛나는 미래에 대한 확신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 또 어떤 이는 다른 이를 배려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내가 현재 관계를 맺고, 일을 하기 위한 사고 체계를 정립하고 실행으로 옮기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내 뇌의 시냅스의 작동들인 것이다.
나의 반복되는 패턴을 보고 누군가가 긍정적인 피드백을 준다면 우리의 뇌에 아마 기록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뇌는 부정적인 말 또는 피드백에 더 작동을 빨리한다. 왜냐하면 두려움, 초조, 긴장과 같은 감정이 크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천재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인 다니엘 카네만에 의하면 우리는 대부분 90일쯤 지나면 인지적인 부분은 잊어버리지만 감정과 함께 저장된 기억은 강력하게 지속된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나에 대해 준 부정적인 피드백은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마음이 약해. 비현실적이야. 계획 세우기만 해. 시키기 대장이야. 좋은 것을 지나치게 과장해. 감정적이야 등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걸 바꿀까, 나는 이걸 바꾸어서 발전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본래로 돌아가곤 했다. 이제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에게 준 부정적인 피드백은 나의 강점이었다. 다시 바꾸어 말하면 나는 아래와 같은 사람이다.
진실한 관계를 추구함 (Relator절친) 미래를 생생하게 그리고 동기부여를 잘함 (Futuristic 미래 지향) 계획과 대안이 있음.(Strategic, 전략) 다른 이의 재능을 소중히 함.(Arranger,정리) 좋은 것들을 훌륭하게 만들 수 있음 (Maximizer 최상화).
즉, 파트너들과의 진실한 관계속에서 일의 효율화를 통해 전망 있는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
나의 패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나는 가까운 사람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고 그들의 강점에 감사할 것이다(Relator절친 + Maximizer 최상화). 한번 입은 은혜는 잊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받은 것이 있다면 돌려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Relator 절친 + Maximizer 최상화 ) 일을 실행할 때는 전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대안에 대해서 고민하면서(Strategic전략) 가능한 효율적으로 일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최적의 결과를 위해서는 유연하게 프로세스를 바꿀 수 있다. (Arranger정리 +Maximizer 최상화 )다른 이에게 설득을 잘 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결과물에 대해 생생하게 표현하고 진정성 있게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Futuristic 미래지향 + Relator 절친).
나의 강점과 함께 찾아본 나의 가치는 Authenticity, Quality, Accountability 그리고 Balance이다.
내가 추구하는 바는 내 안의 사고방식을 통해 구현된다. 내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나는 고객에게, 직원에게, 동료에게, 또는 나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강점을 안다는 것은 가치를 찾게 만드는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나를 알기 이전에는 나는 내가 존경하는 리더를 그대로 닮고 싶었다. 정보를 잘 모으고(Input 수집) 타인의 마음에 공감을 잘하고(Empathy공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도(Includer 포용) 에너지 넘치게 일하고(Achiever 성취) 새로운 것을 끊임 없이 배우는 (Learner 배움)상사를 모신 적이 있다. 그 분처럼 되려고 참 애를 많이 썼다. 몇 년에 거쳐 그 분을 따라하려고 사고 방식, 행동 방식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힘만 들 뿐이었다.
내가 나일 때는 쉽게 가능했던 성과도 타인이 되려고 할 때는 시간이 많이 들고 예전에 쉽게 내었던 성과도 나지 않는다.
몇 년 후 나는 그냥 나로 인정하기로 했다. 그게 훨씬 쉽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방법이고 성과를 내는 비결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나의 Top 5강점이 같을 확률은 전세계에서 3천4백만분의 1이다. 성별, 나이, 교육 정도, 인종, 국적까지 포함한다면 나랑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나 하나뿐일 것이다. 우리는 70억 인구가 모두가 다른 재능과 패턴으로 매일을 살아나간다.
예전에 ‘알쓸신잡’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가는 곳마다 꽃 이름을 말하고 모르면 물어봐서 알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이자 피디가 물었다. 왜 그렇게 꽃이름을 알려고 애쓰냐고. 그러자 소설가인 그 출연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작가는 사물의 이름을 아는 자다 라고 본인이 존경하는 작가가 이야기했다고. 꽃은 그냥 꽃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된다.
내가 나를 꽃으로 불러줄 때 나는 비로소 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내 안의 나를 안다는 것은 타인의 쉴 곳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만약 내가 나인 것을 그대로 인정했더라면, 몇 년 동안 나의 상사를 따라하려고 지나치게 애쓰지 않았더라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다른 이와 친밀한 교류와 관계를 쌓았을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지 않으려 애쓰면서 나와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하는 것은 나에게 힘든 경험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나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자. 진단을 통해서도 좋고 또는 명상을 통해서 또는 일기를 통해서 아니면 여행을 통해서도 좋다. 개인적인 경험을 사색을 통해서 진단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인지하고 이름을 붙였을 때 나를 알아가는 나만의 여행이 시작되고 정체성과 능력을 깨달아 가면서 행복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