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번째. 모유
- 모유는 예습이 필수.
임신하기 전부터 모유수유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딱히 완모를 해야겠다 하는 생각은 없었다. 초유까지만 주고 안나오면 무리하지 말자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른둥이, 특히 1kg이 안되는 초미숙아는 괴사성 장염의 위험이 높기도 하고 우리 아이들의 주수에 맞는 영양이 들어있는 모유가 나온다고 해서 반드시 모유를 충분히 만들어야만 했다.
사실 그냥 짜면 나오는거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고, 산후조리원에서 가슴마사지를 받으면 금방 퐁퐁 솟아나겠지 밑도 끝도 없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새벽에도 알람을 맞춰놓고 3시간마다 일어나서 유축기로 열심히 짜봤지만 젖병 바닥만 겨우 찰랑일 정도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너무나 작고 소중한 모유가 유축기 깔대기에서 튀어서 젖병 벽에 달라붙는 양, 젖병에 담고 모유 보관팩에 옮기는 과정에서 손실되는 양이 너무너무 아까웠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니 아기가 먹고 싶어 할때마다 수시로 직수를 하면 양이 자연스럽게 늘어난다고 했다. 직수 하고싶어도 못하는 나는 어쩌라고? 그 후엔 괜히 모유 관련 영상만 봐도 짜증이 났다. 여러 방법을 찾아보다가 모유관련 학회 같은곳도 찾아서 질문을 해봤는데 젖이 차오를때마다 자주 유축을 해주는 수밖에 없다는게 결론이었다.
아기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모유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찾아볼 수록 아기들이 너무 보고싶어졌다. 유축할때 아기 얼굴 사진을 보면 모유도 자연스럽게 차오른다고 해서 주렁주렁 이것저것 달고있는 몇장 안되는 우리 아기들 사진을 돌려가며 보기도 했다.
산후조리원에서는 보통 조리원을 나간 후 고생할거라서 조리원에 있는 동안은 새벽에 수유콜을 안받고 그냥 자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분유로 마음먹었다면 상관없지만 모유수유를 하고자 한다면 수시로 물리는 게 답이다. 그리고 초유는 원래 양이 적은데 처음부터 너무 적게 나온다고 포기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또 초유 양이 적다고 처음부터 양을 늘리겠다며 너무 억지로 유축기부터 들이대면 아기가 먹는 양과 맞지 않게 너무 늘어나버려서 젖몸살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가슴 마사지를 비싼 돈 주고 받게 되는거다. 이런 걸 미리 공부했더라면 좋았을걸.
- 노력.
산후조리원에서의 나름 편안한 6일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왔다. 원래 7일을 있기로 했는데 조리원에 자리가 부족해서 하루 일찍 자리를 내줬다. 급작스럽게 한참 날짜를 당겨서 들어가게 된거라 우겨서 더 있기도 그렇고 한번 더 결제해놨던 추가 마사지를 취소하고 그 비용이나 아끼자 싶기도 해서 군말없이 조리원을 나왔다.
오래간만에 집으로 오니 몸은 그래도 편했다. 이제 남편은 출근을 해야하고 나는 매일 삼시세끼를 잘 챙겨먹어야 한다. 모유가 잘 나오려면 어떤 걸 먹어야 할까. 온통 나의 관심사는 모유에 집중됐다. 두유, 우유를 잔뜩 사고 기름진 음식은 되도록 많이 먹지 않았다. 국물류를 적절히 먹는게 좋다고 했는데, 병원에서 미역국은 이제 그만 먹으라고 했다. 이른둥이에게는 과도한 요오드가 전달되는게 좋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그 외에도 뭐든 먹기전에 먹어도 되나? 모유에 좋은가? 검색해보곤 했다.
입덧을 시작하고부터는 밥 먹기가 힘들고 배가 부르기 시작하고부터는 한두숟가락만 먹어도 너무 배부르고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나서 잘 먹지 못했었다. 누워있는 생활부터는 먹고 누우면 먹은게 역류해서 더 먹기 힘든데 아기들이 커야하니 조금씩 자주 먹었었다. 그런데 모유수유를 시작하고나니 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밥 한그릇을 가득 떠서 맛있게 먹고 수시로 간식도 챙겨먹었다. 그래도 몸무게가 늘진 않았다. 몸무게는 계속 임신직전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집에 와서는 유축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숫자로 양을 보니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는데 그래도 추이를 어느정도 보고 싶었다. 기록하고 있는 지금에서 되돌아보면 처음에는 정말 양이 적었는데 두달쯤 지나고 나니 양이 확 늘어서 하루에 700ml까지도 나왔다. 나중엔 병원 냉장고에 자리가 없다고 천천히 가져오라고 할 정도였다. (이 모유가 지금은 냉동실에 가득 남아있다.)
중간에 가슴이 돌덩이처럼 뭉칠때도 자주 있었는데 아픈걸 꾹 참고 유축하면서 손바닥으로 묵직하게 눌러주면 두세번 유축만에 풀리고 다시 모유가 많이 나왔다. 한번은 쿡쿡 찌르듯이 너무 아파서 유방외과에 가서 검사를 받기도 했는데 다행히 감염이나 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냥 열심히 짜주는게 답. 마사지로도 꽤 많은 비용을 썼다. 처음엔 몰라서 무조건 마사지를 받아야만 양이 느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꼭 그런것만도 아니었다. (나중에 단유할때도 마사지 없이 1~2주정도 만에 단유했다.) 미리 알아보고 공부해야 역시 헛돈을 안쓰고 고생도 안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