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빵과 튤립 (Pane e Tulipani)

뎀벼라 '델마와 루이스'

알아맞춰 보시라. 미국에서 가장 흥행한 이탈리아 영화순위는 어떻게 될까? 나름 예상을 하며 자료를 좀 뒤져보았다. 1위는 '인생은 아름다워'. 이건 맞췄다. 허나 2위부터는 예상을 번번히 빗나가기 시작한다. 2위는 '일 포스티노'다. 좋은 영화인 건 알았지만 미국내에서 그렇게까지 성공했을 줄이야... 3위는 오히려 2위일 것으로 예상했던 '시네마 천국'이었다. 5위는 '지중해(이것도 좀 의외), 6위는 '말레나'가 순위에 오른다. 그건 그렇고 일부러 4위를 건너뛰었다. 그 영화 얘기 좀 해보려 한다. 국내엔 개봉된 적도 없고 인테넷상에선 한글자막조차 찾아볼 수 없는 영화, 국내엔 듣보잡이나 다름없으나 이탈리아와 미국에선 이미 대박을 쳤던 바로 그 4위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은 누구나 배가 부르면 정서적 욕구를 품는다. 세상은 줄곧 배부름에 관한 욕망을 ‘빵’에 비유해 왔고 정서에 관한 욕망을 ‘꽃’에 비유해 왔다. 이 ‘빵과 꽃’이라는 용어의 사회적 의미는 100여년전 미국의 여권운동으로부터 시작됐다. 당시에는 ‘빵과 장미’라 일컬었다. 배도 고프고 마음도 열받고… 이제 더 이상 여성으로서의 차별 그만하고 인간으로서의 평등한 대접을 해달라며 시작된 아주 거센 구호였다.

이 사회운동은 유럽에도 영향을 미쳐 서양은 그때서야 겨우 여성에게 참청권이라는 걸 부여했고 여성의 인권에 관한 문제가 그 악한 인종차별보다도 더 뒤늦게 대두된 문제라는 걸 자각하기 시작했다. 역사의 큰 획이 된 그 ‘빵과 꽃’ 스토리는 그렇게 호사가들의 단골메뉴로 입방아에 올랐고 각종 예술의 주제로도 봇물을 터뜨렸다.

영화계에선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에 이어 최근엔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로 두번이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가 ‘빵과 장미(2000)’라는 영화를 만들어 세상의 이목을 끌었던 적이 있었다. 그의 네임벨류를 의식하자면 그가 그 사회적 시선을 영화로 승화시킨 최초의 인물인가 싶을 수 있지만 영화의 역사를 고려한다면 세월이 너무 뒤늦다. 의외의 사실은 그보다 무려 50여년이나 이전에 비슷한 주제로 영화를 만든 인물이 이탈리아에 있었다는 거다(이탈리아 영화는 굳이 신사실주의가 아니더라도 할 말이 많다).

1950년대에 이미 루이지 코멘치니가 ‘빵과 꽃’을 소재로 두편의 영화를 만든 바 있다(물론 흥행에 성공한 건 아니지만). 다만 켄 로치의 꽃은 언급했던 역사적 기원처럼 여성의 인권에 관한 욕망을 상징하지만 코멘치니의 꽃은 여성의 사랑에 관한 욕망을 상징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탈리아에선 여성의 날이 되면 노란 미모사가 거리를 메운다. 의미심장한 것은 이 전통이 무솔리니가 죽은 이듬해인 1946년에 시작됐다는 것이다. 여성의 사회운동을 상징하며 100여년 전에 미국에서 시작했던 은유적인 ‘꽃’의 의미가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정치적 맥락으로 출발한 것이다. 이쯤되면 이탈리아의(혹은 코멘치니의) 꽃을 두고 그렇게 근본없다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뭐 아무려면 어떤가, 장미든 튤립이든 그 꽃들의 꽃말은 어차피 ‘사랑’이고 하물며 하루에도 열두번 사랑을 외친다는 이탈리아라면 굳이 사족을 붙일 이유도 없을 것이다.

로살바(Rosalba)는 아주 평범한 남부 이탈리아의 가정주부다. 매사에 굼뜨고 허당이다. 반면 사업을 하는 남편은 꼼꼼하고 다혈질이다. 아들과 더불어 가족이 관광버스로 여행을 나섰는데 그녀는 휴게소 변기에 귀걸이를 빠뜨린다. 가이드는 인원체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그녀가 허둥대는 사이 버스는 그대로 떠나버린다. 뒤늦은 전화통화속 남편은 그녀에게 역정을 내며 잔소리를 쏟아붓는다. 어떻게든 버스를 쫓아가야 하는 그녀, 그녀가 버스를 찾아가기 위해 간신히 얻어탄 승용차는 원래 행선지가 베네치아였다. 기로에 섰다, 욕 한바가지가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찾아갈 것인가, 아니면 태어나서 한번도 가보지 못한 베네치아를 갈 것인가…    

베네치아를 무대로 설정했다 하니 멋진 해상도시의 영상이 담겼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되지만 그런 건 거의 없이 동네 골목 뿐이다. 그러나 탁월한 선택이다. 미로같은 베네치아의 골목과 그녀의 복잡한 심경이 결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국 베네치아로 향하고 거기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들을 겪는다. 매일 자살을 고민하던 식당 종업원 페르난도, 마사지걸, 그녀의 행방을 쫓는 사립탐정… 그들은 각자 서로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방황하는 삶을 살았었으며 그녀의 출현은 곧 자잘한 사건들을 일으켜 주변을 변화시킨다. 그녀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까지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가 탄생하기 10여년전, 헐리우드는 여성해방, 혹은 페미니즘을 주제로 걸출한 영화 한편을 먼저 탄생시켰었다. 두말하면 잔소리, ‘델마와 루이스(1991)’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특히 마지막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차로 질주하던 두 여인이 경찰의 추척을 피해  그랜트캐년 절벽을 그대로 날아버리는 장면 말이다. 주제의식과 더불어 이 장면은 영화사에 회자되는 가장 임펙트 있는 컷으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다. 헐리우드 역사상 여성의 해방을 소재로 이토록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든 영화가 이전에 또 있었을까? 이 영화는 그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고 해외의 많은 비평가들로부터도 엄지척을 이끌어냈다. 그렇다면 ‘빵과 튤립’은 이탈리아의 ‘델마와 루이스’라고 불리울만 한가? 이 영화는 자국내 가장 권위있는 영화제인 도나텔로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았으며 국제적으로도 ‘델마와 루이스’ 못지 않은 많은 수상을 검어쥐는데 성공하여 이탈리아판 ‘델마와 루이스’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평가를 받았다. 물론 두 영화는 여성문제를 바라보는 시선과 해법이 전혀 다르다. 그야 어쩌겠는가, 1500년동안 성모마리아를 집에 모시며 신념의 대상으로 여겼던 여성관이 고작 현대에 들어서 이념의 대상으로 여겼던 여성관과 같을 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두 영화는 비슷한 듯 하나 많은 게 다르다. 델마는 권위적인 남편을 두고있고 루이스는 식당종업원이다. 로살바도 권위적인 남편을 둔 인물이고 페르난도도 식당종업원이다. 인물의 뒷배경이 동일해 보이지만 델마와 루이스는 해방의 방법으로 죽음을 택하고 로살바와 페르난도는 해방의 방법으로 사랑을 택한다. 역시 이탈리아답다. 전쟁의 참혹함을 게임으로 가르쳤던 ‘인생은 아름다워’의 아빠처럼 ‘빵과 튤립’ 역시 실존의 고뇌를 해학적으로 헤아리고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Che carino questo film…”


그 대단했던 ‘델마와 루이스’에 전혀 꿀리지 않을 영화, 그러면서 이탈리아 색채가 잘 묻어난 영화, ‘빵과 튤립’은 이탈리아의 ‘여성주의’ 영화의 대표작으로 오랫동안 언급될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엔 페르난도의 립싱크에 맞춰 아주 멋진 탱고리듬의 노래가 나온다. 이탈리아의 영화음악 작곡가 베노스타의 곡인데 제목은 ‘장미와 카네이션’이다. 물론 가사는 구구절절 사랑의 고백록이나 다름없다. 이전 칼럼으로 몇차례 언급했던 것처럼 토르나토레와 모리코네는 영화감독과 음악감독으로서 단짝이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감독인 솔디니와 베노스타도 함께 여러 영화를 작업한 단짝이다. 이러다 제 2의 토르나토레와 제 2의 모리코네가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덧붙여, 조금 덜 코믹하고 조금 더 진지한 여성주의 영화로 ‘창문을 마주보며(La finestra di fronte)’라는 영화가 있다. 아주 좋다. 그리고 마지막 사족, 이번만큼은 영화이야기를 하면서 이념(특히 페미니즘에 대한 사견) 이야기는 피하고 싶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매년 미모사가 보이는 여성의 날 즈음부터 꽃가루가 보이는 내내 알러지를 달고 사는 놈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피아니스트의 전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