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의 집을 계약한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더라
일본의 부동산 임대법은 임차인과 비교해서 임대인에게 확실히 유리한 입장에 있도록 정해져 있다.
임차인은 집을 임대하기 위해 임대인에게 개인 신용정보까지 제공해야 하며, 임대인은 모든 조건이 만족하더라도 주관적으로 그 임차인을 평가해 임대를 거절하기도 하며 받아들이기도 한다.
심지어 집을 빌려줘서 감사합니다요.라는 의미로 사례비를 임대인에게 지불하는 관습도 남아있다.
이 금액은 레이킹(礼金)이라고 하는데 법적으로는 지불할 의무가 없는 금액이지만 임대인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거절하는 것에 대해서는 위법이 아니니 실질적으로 레이킹이 지정되어 있는 집을 임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인 것이다.
덕분에 일본으로 유학 오는 외국인 학생이나, 일본 기업으로 내정된 외국인들은 집을 구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더라.
하지만 우스운 건, 그 대상이 외국인이 아니라 일본인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연락하고 지내는 일본인 중에서는 최대 6번까지 거절당해서 기존 집에서 계약이 만료된 이후 네 식구가 2달 동안 호텔에 돌아다니며 집을 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독일의 경우에는 임대인이 임차인을 줄 세워놓고 실제로 면접까지 본다는 글을 읽고 피식한 적이 있었지만 남일이 아닌 모양이다.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008023664i
특히 직업이 없으면 심사 자체도 못 보는 경우도 있었으며, UR(우리나라 주택공사 같은)의 경우는 1년 치 집세를 지불해야 입주할 수 있으며, 흔치는 않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집주인이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월급에 따라 월세의 가격도 대충 정해져 있는 모양이다.
이런 부분에서는 일본이란 나라는 참 차갑게 느껴진다.
아래는 보증 심사 기관의 일반적인 연봉별 최대 월세 가격을 나타낸 표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체로 해당 연봉에서 정해진 월세의 가격을 넘게 되면 심사에서 떨어지는 확률이 크다는 이야기이다.
뱁새의 다리가 찢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대책이기도 하겠지만 썩 유쾌하지는 않다.
몰랐다.
아니 몰라서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난 그냥 부동산에 멋대로 연락해서 마음에 드는 집 보여달라 했고 마음에 들면 계약하자고 했고, 심사에 대해서 걱정도 하지 않았는데 멋대로 통과해서 삿포로의 집이 결정이 되었다.
몰라서 걱정하지 않았던 거다.
알았다면 2주의 기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불속에서 온갖 잡다한 상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일본인도 뚝뚝 자주 떨어진다는 글을 읽고 난 뒤에는
나중에 옆에 있던 친구가
너가 장미꽃을 따려고 고개를 숙였을 때 총알이 한 10개 정도 지나갔었어.
라는 소리를 들은 기분이었다.
일본 월세 계약 능력 평가 고사
1교시 : 마음에 드는 집 결정 (summo, homes 등등)
2교시 : 해당 페이지에 있는 부동산에 전화. (이미 계약된 집이라면 또는 소득 검사 이후 미달이면 다시 1교시로.)
3교시 : 직접 방을 볼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계약을 진행할 것인지 판단. (직접 보기로 했다면 부동산으로, 계약 진행한다면 4교시로)
4교시 : 보증 심사 신청 (떨어지면 1교시로 또는 부동산 아저씨와 보충수업 이후 1교시로)
5교시 : 관리 회사 심사 신청 (떨어지면 1교시로 또는 부동산 아저씨와 보충수업 이후 1교시로)
6교시 : 임대인 심사 신청 (떨어지면 1교시로 또는 부동산 아저씨와 보충수업 이후 1교시로)
7교시 : 계약서 작성 (부동산 또는 우편, 온라인)
7교시까지 무사히 마치면 돈 달라는 우편이 날아온다.
마치지 못하면 무한 반복.
수많은 관문을 만들어 놓으니 돈 달라는 우편을 받아도 기뻐하게 되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TMI)
일본의 경우는 summo나 homes 등이 우리나라의 직방, 다방 같은 사이트다.
그곳에서 이사를 가려는 지역과 조건을 입력한 후 찾아보면 원하는 집을 구할 수 있게 된다.
내 경험상으로는 100% 사진과 실제의 집 모습이 일치했었다.
그래서 나는 해당 사이트의 사진을 상당히 신뢰하는 편이다.
정말 다 쓰러져가는 방이라면 해당 페이지에도 다 쓰러져가는 사진을 그대로 올린다.
일본에서는 기존 임차인이 아직 퇴거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새로운 임차인이 그 집을 보러 갈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진만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따라서 방의 모습을 직접 보지 않아도 사진이나 구조도로만 확인하고 계약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부동산에 전화를 했을 때,
그 매물은 방금 전 다른 사람이 계약을 했습니다. 비슷한 방으로 제가 몇 개 보내드릴 테니 확인해주시고 이야기해보시겠습니까?
라고 했던 경우에는 바로 거절하고 다시 사이트를 뒤적거렸다.
그 집은 집주인이 별로예요
약 일주일에 걸쳐 여러 부동산과 연락하며 방을 찾은 결과 한 곳의 부동산과 계속 상담을 하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집을 알려주며 가능 여부를 확인하니,
부동산 아저씨 : 아 그 집은 오늘 바로 나온 집인데 아마 금방 빠질 거야. 아직 그곳에 사시는 분들이 퇴거하지 않아서 XX일 이후에나 볼 수 있는데 괜찮겠어?
SEON : 어차피 XX일 이후에나 갈 수 있을 거야. 그날 볼 수 있어?
부동산 아저씨 : 아 그날이면 아직 청소는 안 한 상태지만 볼 수 있어. 그날 보자. 그리고 그동안 혹시나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또 알려줘. 보여줄게
며칠 뒤 또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 보냈더니,
부동산 아저씨 : 아... 음... 그러니깐. 이 집은 좀.. 음.. 추천하지 않아.
SEON : 왜? 꽤 좋은데. 집도 깨끗하고
부동산 아저씨 : 그 집주인이 좀 사람이 이상해. 들어가면 고생할 거야.
요 사람 마음에 든다.
참고로, 그 집은 아직도 그 사이트에 임차인을 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꽤 괜찮은 집들은 개제 된 후, 약 3일 정도면 사라지곤 하는데 이 집은 3개월째 개제 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외국인이라고 특별히 잘 대해주는 것도, 차별하는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영업하고 대응해주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든다.
이후에도 마음에 드는 부동산 아저씨는 이 집은 이렇게 내놓긴 해도 결론적으로 공무원만 심사에 통과시키는 집이더라, 이 집은 계약까지 했는데 멋대로 계약을 취소 해버 리더라 라는 식의 업무상의 사정이 아닌 실제 사정을 알려주며 많은 조언을 해줬다.
그 후, 3번의 심사가 있었고 통과될 때마다.
신나는 목소리로.
オッケー です! 次に行きます〜!
(오케이입니다!! 다음 진행하겠습니다!)
라는 메일이나 전화를 걸어주면서 일일이 보고해주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
백과사전만큼 두꺼운 계약서를 우편으로 보내주면서 주요 페이지마다 테이프를 붙여주고 적어야 할 곳에 연필로 소심하게 표시해주기도 하고, 중요한 내용은 밑줄까지 그어주면서 참 친절하게 대응해주었다.
그리고 돈을 송금했다.
했다...
運:うん:운;운명;운수
운이 좋은 거라 생각한다.
지금 구한 집도 그랬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 또한 아무 문제없이 계약까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었고, 비교적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앞서 말한 레이킹에 대해서는 그들의 관습은 이해하지만 나 스스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므로 항상 집을 구할 때 레이킹이 없는 집을 구한다.
보통 큰 집이나 지은 지 5년 이내의 건물들이 레이킹이 걸려있는 경우가 많은데 현재 살고 있는 이 집도 3년 된 건물이었음에도 레이킹은 지불하지 않았고, 앞으로 갈 집도 전용면적만 37평짜리의 큰 집임에도 레이킹을 지불하지 않고 계약하게 되었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사를 가게 될 그 집은 집을 보러 갔던 그날만 4팀의 대기자가 집을 보러 예약을 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4팀의 대기자는 일정이 캔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심사의 결과에 관계없이 심사 기간 동안은 해당 집은 임대 사이트에 노출되지 않는다.)
부동산 아저씨에게 압도적인 감사.
아무리 홋카이도의 집세가 싸다고는 하지만 현재 살고 있는 집의 크기에 2배 이상이고, 2년마다 지불해야 하는 갱신료(일본은 계약 갱신마다 1달 월세를 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도 없이 자동 갱신 계약임에도 월세는 현재보다 약간 오른 정도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일본의 부동산 수수료는 월세의 약 1개월치를 지불하게 되는데, 이는 법적으로 임대인 또는 임차인이 부동산에게 지불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대부분은 임차인이 그 1개월분을 지불하게 되지만, 경우에 따라서 집주인인 임대인과 임차인이 반반씩 내는 경우도 있다. (1개월분 이상의 경우는 법적으로도 인정되지 않고 있으므로 혹시 그런 부동산이 있으면 지불하지 않아도 되거나 신고해도 된다는 일본인의 조언도 있었다.)
나의 경우는 이것도 무료였다.
집주인 아저씨에게 무한 감사.
비상연락처로써 일본의 국적을 가진 사람의 연락처가 필요하다고 해서 조금 당황했지만
일본인 친구가 선뜻 자신의 정보를 건네주고 이후에도 심사 관련하여 전화 대응도 잘해줘서 큰 문제는 없었다.
이 번 글은 그냥 삿포로의 집을 찾았을 때 기억났던 일들을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보았습니다.
유튜브에서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Vlog나 워킹홀리데이로 와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는 영상을 보면서 (물론 직장인들도 포함) 보이지는 않지만 고생을 꾹꾹 참아가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지만 슬프기도 했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일본으로 넘어오는 과정부터 비교적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감사해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위의 글이 어찌어찌 쓰다 보니 [난 대충 하더니 다 되던데?]라는 식으로 자랑 글의 모양새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걱정이 듭니다만, [일본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케이스 중 이런 케이스도 있습니다.]라는 의도로 적어보았습니다.
물론 저 역시 위의 계약을 진행하기 전에 많은 조사를 한 뒤에 진행한 결과입니다.
일본어로 된 부동산 법도 조사해보고 일본인 블로그나 뉴스 기사에서 영어로 된 영국인 블로그(일본에 살았던)까지 찾아가며 사전 준비를 한답시고 흉내는 냈지만요.
일본은 우리나라 면적의 거의 4배(정확히는 3.78배)라고 합니다.
그런 넓은 곳에 살아가는 인구수도 우리나라의 2배가 넘어가니 그들의 성향을 파악하기에는 표본의 크기가 너무나 크다고 생각합니다.
표본의 종류도 더 다양할지도 모르겠네요.
따라서 일본의 부동산 법은 악법이고 집을 구하는 일은 헬이야.라고 단정 짓기에는 경험해야 하는 경우의 수가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또 다른 색다른 경험이라 재밌었습니다.
도쿄에 회사가 있는데 왜 삿포로로 오는 거냐, 무슨 일을 하고 있냐, 생년월일 대봐라 등의 질문도 받기도 하고, 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나 비상연락처로 적어준 친구에게도 두어 번 전화해 질문을 했다고는 해도 기분 나쁘다는 느낌보다는 재밌었고, 연락을 받아준 친구나 회사에게도 새삼스레 고마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좋지 않은 부동산 업자 및 임대인을 만나 고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의 경우처럼 좋은 부동산 업자나 융통성 있는 임대인도 참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경우는 집주인이 앞집에 살고 있는데 가끔 출근할 때 만나면 인사를 합니다.
SEON : 좋은 아침입니다~ おはようございます〜
주인아저씨 : 여~ 잘 다녀와~ よ〜いってらっしゃい〜
며칠 뒤면 그리운 추억이 될 테지요.
PS : 과연 그리운 추억이 될까요?
2020년 11월 6일 그들이 온다!
어떻게든 밝혀내야 한다!! - 관. 리. 인 -
어떻게든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튀어야 한다! - S.E.O.N -
숨기는 자와 밝히려는 자!
그들의 숨 막히는 브레인 서스펜스 스펙터클 재피니즈 반전 스토리!
타. 치. 아. 이.
(11월 초순 개봉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