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경찰서 진술을 마친 그 날 이후로,
나는 막내와도 연락을 끊었다.
그 날 들었던 막내의 웃음소리,
그리고 그 감탄사는 완전한 타인의 것이었다.
가족이나 형제라는 인연의 것이 전혀 아니었다.
전부, 내 착각이었다.
*
막내와 난 띠동갑이라 가장 어색한 사이였다.
나이가 들면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같다는 걸 알게됐다.
하지만 그건 아주 사소하고 얕은 공통점이었다.
남동생들은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직접적인 피학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나와는 달랐다.
둘째는 장남이라서, 막내는 아들이라서.
둘은 부모의 애정과 양육을 받았다.
그들의 눈에 내가 받는 모든 학대는 일상이었다.
그냥, 오늘도 시끄럽네. 하고 외면할 수 있는.
막내가 성인이 되고, 군 제대 후에
"누나가 힘들었겠다" 정도의 공감을 얻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기뻤다.
그런 막내가 밤에 불현듯,
부친과 통화 한 번만 하라고 제안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답 했겠지만,
어쩐지 그날만큼은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동생을 위해서 누나인 내가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막내에게는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람이 있다.
내가 먼저 겪었던 것처럼,
상대 쪽 부모는 막내를 탐탁치않아 한다고 했다.
만약에 막내가 가장 먼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부모가 막내에게 어떻게도 할 수 없는 흠이라면,
적어도 나까지 얹어서 흠이 되지 않고 싶었다.
하지만 선뜻 전화를 해야겠다는 용기는 나지 않았다.
부친의 연락처를 수신차단 해놓은 지 십년은 훌쩍 넘었다.
부친은 내가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쓰러졌다.
병간호와 재활, 병원비와 생활비.
나는 학업과 노동을 동시에 붙잡고 살았다.
독립은 사치였다.
돈도 없었고, 무엇보다
‘나는 혼자 설 수 없는 아이’라는 말이
이미 몸에 박혀 있었다.
짐을 싸겠다고 했을 때, 나는 이유보다 먼저 맞았다.
어찌저찌 부친과 떨어지게 되자마자,
일련의 이유들로 나는 이십대 후반에 부친의 전화를 차단했다.
중간에 "나한테 왜 그렇게 잔인했냐"는 질문을 위해
통화를 한 번 한 이후로 연락한 적도 없었다.
*
동생이 부친과의 통화를 제안한 건,
그가 나에게 예전에 했던 일을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사과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의 내 기분을
나는 아주 선명하게 기억한다.
무감(無感).
그 어떤 기분도, 마음도, 들지 않았다.
'사과'라는 단어를 평생 듣게 될 거란 예상도 못했지만,
그의 사과가 전혀 궁금하지가 않았다.
나는 죽을 때까지 그를 용서할 수 없을 테니까.
오히려 명쾌했다.
그 어떤 말을 듣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더 고민하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
부친은 울고있었다.
막내 말로는 내 전화 직전에 친구와 통화를 하며 울었단다.
'나이가 들면 여성호르몬이 많이 나온다지. 감성적이네.'
이 생각만 들었다. 특별한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대화는 어색했다.
당신의 딸이라고 말하자,
"내가 딸이 있어요?"
라고 그가 답했다.
허탈해서 웃었다.
"아빠 장례식장에도 넌 오지 마라"
"넌 내가 옛날에 그렇게 좀 못되게 했다고,
지금 이렇게 아빠 마음을 아프게 하냐."
사과는 없었다.
그저 책망과 원망과 서운함뿐이었다.
전부, 내 탓인 듯 말했다.
그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무렴 어떠랴.
그 통화로 완전히 깨달았다.
나는 그가 불쌍하지 않았다.
늙고 힘없고 볼품없이 낡아버린 스스로가 애틋해서
외롭고 고독한 노년의 삶을 내가 따뜻하게 해주길 바랐던 거다.
정말로 두 번 다시 연락하지 않고,
장례식도 찾아가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
막내에게 부친과의 통화를 전달했다.
사과는 없었고, 내 각오가 어떤지를.
웬걸?
막내는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모친은 몰라도 부친은 미안해한다.
한 번만 찾아와서 얼굴 봐주면 안되겠냐.
2시간 가까이,
내가 왜 그럴 수 없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못지 않게 감정적인 호소와 논리로 부딪쳐왔지만
막내는 결국 내 논리를 이기지 못했다.
나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둘째와 다르게 깊은 대화를 했다고 생각했다.
내 입장을, 내 고통을, 내 마음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내 착각이었던 거다.
막내는 경찰에 신고하고, 처벌까지 가고,
또 그 일로 모친이 고초를 겪을 수 있다는 말에
'세상에 이런 일이'를 보며 감탄하듯 웃었다.
"와, 미쳤네."
그건 누나가 미쳤다도 아니고
모친이 미쳤다고 아니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흥미진진하다였다.
앞으로 이런 일로 더 이상 연락하지 않겠다고 했다.
막내는 "오키~"라며 가볍게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끊어진 전화가 내게 상처였다.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다치는 건 늘 나였다.
나는 도대체 막내에게 뭘 기대한 걸까?
자학의 시간에 빠져들었다.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내가 너무 순진해서.
*
번뜩, 깨달음이 훅 스쳐갔다.
지독한 자기검열을 겪는 이유는
내가 나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의심한다는 건,
누군가에게 내가 맞다는 걸 듣고 싶다는 거다.
혈연이 아닌 사람들은 내가 맞다고 하지만,
혈연인 사람이 내 편이면 했다는 걸 알았다.
'완전한 단절'의 길을 걷고 있는 내가 불안해서
혈연인 존재가 내가 맞다고 해주길 바랐던 거다.
내가 내 편이 아니었다.
모두가 내 편이어도, 내가 내 편이 아니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버렸다.
내 유난은 다른 게 아니었다.
내가 나를 의심하며 만든
외로움과 고독이었다.
나만은 내 편이어야 했다.
나만은 내 편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