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스토커랑 같이 삽니까?

4화.

by 김우연


나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고,

처벌까지 하겠다고 집 앞에서 진술을 마친 다음날.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사건이 접수되었다는 내용이었고,

혹시 도움이 필요하다면 지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지원이라는 것은 상담같은 것들이었는데,

솔직히 내게 어떤 효용이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 * *


며칠 후, 담당 경찰의 연락이 왔다.

진술을 하러 오라는 약속을 잡고,

어떤 내용을 말할 지 며칠을 고민했다.


하지만 허탈하게도 진술 당일, 몇 시간 전.

담당 경찰의 스케줄 문제로 취소 되었다.

일정을 바로 다시 잡긴 했지만, 예민한 마음이 펄펄 끓었다.


내 사건을 담당하는 관할서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시내가 속한 곳이라

온갖 위험하고 다양한 사건들이 많은 곳이다.


그에 비해 내 사건이 가벼워서 홀대 당하는 건가 울컥했다가,

오죽하면 당일에 취소하게 됐을까 이해도 됐다.

감정이 널뛰는 건지, 기분이 널뛰는 건지.


일주일 뒤로 미뤄진 진술 날짜를 바라보며,

나는 내 마음에게 질문했다.


이게 억울한 일인지,

아니면 또 내가 예민한 건지.

정답은 언제나 헷갈렸다.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내 감정을 기반으로

"괜찮은 일"과 "괜찮지 않은 일"의 분간이 어렵다.

나는 여전히 대부분의 괜찮지 않은 일이 괜찮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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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많은 고민과 달리 막상 경찰서에 도착했을 땐,

복잡한 생각의 실타래가 꼬여서 머리 속이 새카매졌다.

차라리 백지가 됐다면 나았을텐데.


담당 경찰관은 최소 40대 중후반 이상으로 보였다.

신분증을 건네고, 작은 방으로 이동해 앉았을 때

책상 위에는 내 사건에 관련된 조서가 올라와져있었다.


조서 위에 적힌 이름을 보는 순간,

이 방 안에서만큼은 숨을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조서의 표지에는 나와 모친의 개인정보가 기재되어 있었다.

스토커 사건이라서 이렇게 부주의한가?

가족 간 신고라서 이런 건가?


하지만 이런 의구심을 뛰어넘는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모친의 주거지 주소가 바로 나의 집 인근이었다.

도보로는 20분 내외 거리로 언제 이사왔지?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고?


하지만 길게 생각을 할 순 없었다.

바로 진술이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담당 경찰관은 시종일관 건조했다.

목소리에서 적당한 귀찮음과 번거로움이 느껴졌다.

아동학대 수준이었던 과거는 물론 첫 절연 선언 이후,

계속 찾아오던 때의 자료가 없으니 모두 무시되었다.

기록 가능하고 명확한 '사실'만을 요구했다.


질문이 '언제부터 스토커 행위가 시작되었냐'가 아니라,

스토커 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첫 시점이 언제냐라고 물었으면

어떤 설명에도 '그건 됐고.', '그건 아니고.' 라는 대답을 듣지 않았어도 됐을텐데.


모친을 진짜 신고하는 일이 발생하게 될 거라고 예상을 못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길 바랐기 때문에 자료는 없었다.

고향을 떠나 지역을 이동한 후로 이사를 2번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3번의 이사를 거쳤다.


경찰과 나의 대화는 창과 방패처럼 날카로웠다.


'언제 만남을 거부했습니까?'

-다른 지역으로 이사 후, 절연 선언을 했습니다.

그때도 강제로 집에 들어와서 살기 시작했었고,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어서 절연 선언하고 이사했어요.

그 뒤로도 이사한 곳을 계속 찾아왔고요.


모친은 평생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이사를 하면, 경계심이 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불쑥 찾아와 죽는 소리를 하며 자신의 살림을 조금씩 풀었다.


'아이참. 그러면 스토커가 아니지.'

-네?

'누가 스토커랑 같이 삽니까?'


말이 아니라, 숨이 먼저 막혔다.

겨우 힘을 끌어내서 답했다.


-아뇨. 모친이잖아요. 어떻게 같이 안 삽니까.

'아이, 그래도 같이 살면 스토커 아니지.'


가장 듣고 싶지 않던 말 중 하나였다.

경찰은 스토킹이 입증 가능한 자료를 달라며 말을 돌렸다.


인터폰에 찍힌 모친의 얼굴,

듣지 못했지만 나를 힐난했을 음성메시지,

차단 문자까지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모친의 얼굴이 찍힌 영상을 보고

공황장애 증상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대한 의연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상태가 이상했나보다.


경찰은 그제야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조금 심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듯 했다.

하지만 태도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조서를 어느 정도 작성하고,

급하게 생각이 나서 증거자료를 추가로 주자

'이런 걸 처음부터 주셨어야지.' 라며 조서를 수정했다.


불쾌했다.

하지만 온몸을 잠식하고 있는 불안감때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 어떤 반응도 힘들었다.


그가 안전조치에 대해 읊었다.

접근 금지, 연락 금지를 비롯해 CCTV 설치와 스마트워치,

거주지 인근 순찰 강화 등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CCTV 설치처럼 눈에 띄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거주지 인근 순찰처럼 경찰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더 요구하면, 정말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조서를 정리하면서, 그는 '스토커랑 같이 살면 안 되지.' 라고

다시 한 번 중얼거리는 걸 들었다.


그래, 나는 왜 스토커랑 같이 살았을까.

그 순간만큼은 내가 가해자같았다.


*


경찰서를 나와서 터덜터덜 걸었다.

이런 기분을, 이 경험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한다니.

억울했다.


막내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라도 막내가 걱정이라도 하고 있을까봐.

어떻게 진행되는지 공유하고, 걱정을 덜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힘없이 상황을 공유하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한 마디 툭 던지며, 감탄하며 웃었다.

"와, 미쳤네."


그 말이 위로인지, 확인인지,

아니면 이제야 누군가 믿어준다는 신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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