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이라는 불효를 선언했다.

2화.

by 김우연


살면서 겪었던 모든 결정적인 순간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던 듯 하다.


처음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순식간에 분해가 되고 있는 기분이었다.


오롯이 내 결정을 기다리는 시선들을 감내하던 순간에,

몸과 마음, 머리, 입, 손이 전부 자기 주장을 했다.


오늘 겪은 사실을 현장 진술서에 쓰고 있는 손

경찰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입

벌벌 떨리는 몸


몸들이 마음에게 명령했다.

'엄마를 처벌하겠다고 해.'


그러고 싶었다.

그 사람을 처벌하겠다고,

처벌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뒷통수가 싸늘했다.

'자기 의심'이라는 스위치가 켜진 것이었다.

처벌을 해도 되는 이유가 없었다.

아니, 이유는 많았는데

확신이 없었다.


옆통수에선 걱정으로 펄펄 끓었다.

하찮은 내가 나의 창조주에 대해 처벌을 운운한 탓에

어떤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잠식 당했다.


이 와중에 연민이라는 꽃봉오리가 심장 한복판에 피었다.

그 꽃다운 세월을 '나 때문에', 오직 '내가 태어난 이유로'

삶이 망가져 너덜너덜 낡아버린 그녀를 처벌하기에는

내가 지독하게 나쁘고, 못되고, 은혜를 모르는 이 같았다.



그녀와 나의 루틴이 다시금 반복되고 있었다.

어느새 나르시시스트 엄마를 또 용서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런 말, 함부로 해선 안 되지만,

처벌하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에요."


시종일관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던 젊은 경찰관이었다.


'방법'이라는 단어가 딱 꽂혔다.

그래, '처벌'은 단죄가 아니라, '나의 생존 방법'이다.


"거절 의사를 명백히 밝혔는데도,

몇 년동안 반복되는 거면 다른 방법을 쓰셔야죠.

어떻게 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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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의심으로 분주한 뒷통수 위로

파노라마처럼 과거들이 지나갔다.


스물 일곱, 벗어나보려고 독립했지만 완전 망했었다.

쭉 혼자서, 이사하고 도망갈 때마다 집요하게 찾아와

내 영역과 삶에 기어코 발을 걸치던 나르시시스트.


전부 무르게 허용하고 말았던 내 탓이었고,

그게 스스로에 대한 자기의심을 눈덩이처럼 키웠다.


2021년 여름, 나는 완전한 절연을 선언했다.

뒤이어 5년의 도피 끝에 경찰에 신고를 한 지금.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원만한 해결을 바랐다.


스물여섯때부터 갈망하고 바랐던 독립.

13년간 이어진 나의 최선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내가 생각했던 유일무이한 방법은 단 하나였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것>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다면 해보고 싶었다.

그 사람이 당장 죽지 않는다면, 내가 죽어야 끝날 텐데.

나는 살고 싶었다. 살아남고 싶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처벌, 하겠습니다."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몸을 낮춘 채 창밖을 바라봤다.

경찰차에 그 사람이 타는 걸 봐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먼저 차량에 탑승했던 건지, 바라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차가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단짝들에게 연락했다.


내 공포감, 불안감을 오롯이 나누어 들어준 이들에게

깊은 걱정을 심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함께 삶을 나눴지만,

좋지 않은 순간을 공유하고 걱정을 받는 것은

내게 황송한 일이었다.


사랑도, 관심도, 진심도 받아본 적이 없으니

그걸 받았을 때 어떻게 받아야하는지가 너무 어려웠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지만, 한참 멀었다.


응원과 걱정을 뒤로 하고 가장 먼저 할 일은

처벌 수준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막상 입밖으로 처벌 하겠다고 내뱉아놓고,

쿨하지 못하게 나는 또 궁상을 떨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라는 단어를 알고난 후,

내 안에서도 아주 미약한 결심이 일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세상은 분명 달라지고 있었다.


이제 부모의 폭언과 폭행은

‘가정교육’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가족 간 스토킹도 판례가 쌓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변화를 보고 있었으면서도,

내 마음은 신고도, 처벌도 결심하지 못했다.


그리고 왜 나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그 사람의 고통을 먼저 걱정하고 있을까.


신고를 한 나보다,

처벌을 받을 그 사람이 먼저 걱정되는 나.

이 모순이 나를 이토록 오래 붙잡고 있다.






심란한 새벽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막내 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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