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는 나르시시스트 엄마를 경찰에 신고했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찾아오고, 기다리고, 불쑥 나타나는 그 사람을.
밤 10시쯤 배달원과 함께 1층 로비를 통과하고
나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열려고 하는 그 사람을.
인터폰에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알 리가 없는 내 집 비밀번호를
그 사람이 마구잡이로 누르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서웠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참지 못하고, 결국 경찰을 불렀다.
39년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경찰을 부르겠다는 경고를 수없이 했고,
부른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야 겨우 첫 신고를 했다.
"가정 폭력 피해자입니다. 가해자가 집 앞에서 문을 열려고 해요. 도와주세요."
이런 맥락이었다.
솔직히 뭐라고 말했는지 정확한 문장들은 생각나지 않는다.
횡설수설, 우왕좌왕, 바들바들. 뭐 그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에 경찰차가 보였다.
그 사람이 여전히 집앞인지, 경찰들이 데리고 가는지.
도대체가 절차가 어떻게 될 지를 몰라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5분, 10분, 15분, 20분...
30분이 다 되도록 경찰차에 그 사람이 함께 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당장 그 사람이 내 거주 공간에서 사라져주길 간절히 바랐다.
띵똥-.
인터폰이 울렸다.
낯선, 하지만 안심할 수 있는.
경찰관 두 사람이었다.
-
경찰관과 대화할 때 첫 시작은 이 문장이었다.
왜 자신의 딸을 경찰이 만나지 못하게 하는지.
그 사람은 그저 자신이 한 맛있는 음식을 전달하고,
대화를 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했다.
"저희가 엄청 난처합니다.
그래서 신고자분 이야기를 들어보려고요."
50대정도로 보이는 경찰관은 짐짓 단순한 '모녀 다툼'정도로 생각하는 듯 했다.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젊은 경찰관은 너무 놀라 반쯤 넋이 나간 나를 걱정하는 듯 했고.
솔직히 막막했다.
'난처'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는 이해받을 수 없는 불효녀> 였다.
"어떤 이야기요?
내가 여태 받은 폭행, 폭언, 착취 이런 거?
뭐부터, 어떻게, 어떤 걸 말하면 알아주실까요.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어요."
겁에 질린 채로 할 수 있는 말을 주절주절 말했다.
그러다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그 사람이 뛰쳐올라온 줄 알았다.
소스라치게 놀라고, 순간 주저앉을 뻔 했다.
내 개인적인 '투정' 정도로 듣던 경찰관은
그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난처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여성청소년계에서 다뤄야 할 문제'라는 말을 반복했다.
"근데 왜 여태 신고하지 않았죠?"
"참았어요. 참는 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가족이잖아요. 모친이잖아요. 가정 교육인 줄 알았어요."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내 말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청계에 사건을 접수하러 팀장급 경찰관이 사라졌다.
젊은 경찰관이 내게 말로 괜찮다고 다독였다.
그 사람이 내가 지역을 옮겨도 쫓아온다고 했다.
집 앞, 비상계단, 회사, 학교, 친구들과 노는 곳, 어디든.
내가 차단을 해도, 그 사람은 폰 번호를 바꿔가며 연락한다고 했다.
정말 미치겠다고, 만나지 않겠다고, 수십번 발악을 해도 좀비처럼 온다고.
내 얘기를 들어줄 것 같아서였는지,
공권력을 가진 그 사람이 알아주면 내게 도움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이었는지.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겪은 힘든 일을 그에게 호소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경찰관이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님이 뭐 때문에 그러시는 거 같아요?"
"저도 몰라요."
아니, 나는 알고 있었다.
이유가 없이, 그냥 '나여야만 한다'는 것.
ATM기, 감정 쓰레기통, 시녀, 하녀, 심부름꾼
남편이자 남자친구이고 절친이자 라이벌인 세상 유일무이한 '그 사람의 것'
나는 하나의 객체가 아니라, '그 사람의 것'으로만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근데, 이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못 한다. 할 수 없다.
처벌. 어떤 처벌?
생각해보니, 처벌까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아니, 처벌까지 생각을 안 한 게 아니라
어떻게 '감히 내가' 모친을 처벌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처벌은 오로지 그 사람이 내게 할 수만 있던 것이 아니었나.
"처벌 하면 어떻게 되나요?"
"모르죠. 그건 이제 법원 소관이라..."
젊은 경찰관이 말을 흐렸다.
내 마음도 흐려졌다. 혼탁했다.
- 이게 그렇게까지 할 일이야?-
-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 해야지. 네가 살려면, 처벌해야지-
-가족이잖아. 엄마잖아. 처벌, 할 수 있겠어?-
현장에서 바로 진술서를 쓰는 그 잠깐 동안
수없이 많은 생각에 휘감겨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번호를 차단했건만,
그 사람의 음성메시지가 두 개 와있고.
또 전화가 걸려와서 머리 속이 더욱 캄캄해졌다.
"어? 번호가 두갠가?"
중간급 경찰관이 내 휴대폰 액정에 뜨는 그 사람의 번호와
자신의 수첩에 메모한 번호를 비교해봤다.
달랐다. 번호가, 두 개였다.
공포감이 다시금 몰려왔다.
단 두 단어만이 머리 속을 가득 메웠다.
'처벌, 처벌, 처벌, 처벌, 처벌, 처벌-'
나는 당장 그들에게 내 선택을 말해야만 했다.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마음 먹고,
진짜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
그런 내가 '처벌'이라는 선택을 앞두고,
어떤 선택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게
나를 위한 가장 베스트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