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나야 할 건 엄마가 아니라, 나였다.

3화.

by 김우연


2화를 올리고 난 후, 나는 늪으로 빠져들었다.


당연하게도 '자기 검열'이라는

무수히 많은 생각이 나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가족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게

얼마나 대가를 요구하는 일인지 깨달았다.


5주, 글을 쓰지 않았던 기간동안 나는

또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만들어 준 빅이벤트를 겪었다.


멘탈이 나가고,

마음이 부서지는 와중에도

'괜찮다'며 곁에 있어준 <타인>들이 있었다.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주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었다.


글을 쓰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런 우울함을

굳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게 맞나?'와

'나보다도 힘든 사람이 많은데,

내가 너무 나약한가?' 라는 두 가지였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깨달았다.

이 글을 읽는 것은 누군가에게 선택이지만,

나에게는 생존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기록하는 일이라는 것.


벗어나야 할 건 엄마가 아니라,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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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동생과 통화는 내 결의를 다지게 했다.


엄마는 누나를 포기할 생각이 없대. 계속 찾아갈 거래.

가족이니까, 자기 딸이니까, 잘못된 생각은 바로 잡아줄 거래.

그냥 처벌까지 해. 누나가 그렇게 싫으면 그게 맞아.


막내와 통화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처벌은 하지말까? 고민하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지 않아도 됐는데,

나는 막내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너 결혼에 더 영향주게 생겼네."


막내는 아니라고 대답하지도 않았다.

뭐, 어쩔 수 없지.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장녀인 내가, 열두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대단한 지원을 해주지는 못할 망정

발목을 잡았다는 생각이 들어 자괴감이 들었다.

전부 다, 내 탓 같았다.


하지만 이젠 안다.

그 모든 걸, 내가 감당할 이유는 없다.


*



부부 싸움이 일어나는 날 꼭 나는 그 둘의 한가운데에 있어야했다.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당신들의 인생을 망쳤다고 온갖 폭언을 퍼부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죽으면, 두 사람이 갈라설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내가 아홉살 때였다.


내가 그때 죽었다면,

두 사람의 인생은 달라졌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동생들의 존재가, 이미 답이었다.


나는 삼남매의 장녀다.

차남은 나보다 여섯살이 어리고, 막내는 열두살 어리다.

부모님은 매일 동네가 떠들썩하게 싸우면서도 띄엄띄엄 자식을 낳았다.


그러니까 내가 그때 죽었어도, 두 사람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당신들과 그들의 애증이 빚어낸 남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세뇌했다.


열네살, 무엇이 되고 싶나? 라는 미래를 계획할 때

나는 어떻게 이 가정을 책임지고

부양하는 '가장'이 될 수 있는지를 중점으로 생각했다.


연애를 할 때도 나와 결혼한다는 건 풀세트로

내 가족을 책임지는 거라고 상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좋든 싫든 가족은 내 세상이었고, 내 전부였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 나는 매사 필사적이었다.

내게 선택지는 없지만, 그들에겐 선택권이 있었으니까.


"그때 해외입양 보낼 걸."

"누가 너 달라고 할 때 줄 걸."


실제로 어릴 때 내내 들었던 말이 이거였다.

그러면서 입양 가서 학대 받는 아이들의 뉴스를 종종 보여줬다.

나는 내가 살고있는 지옥이 천국이라고만 생각하고 자랐다.



*


그렇게 꾹 참고 10대를 보냈다.

20대부터는 반항도 해보고, 독립도 해보려고 했다.

그 발악은 무의미했고, 30대 중반까지도 마찬가지였다.


40대를 코앞에 두고서야 겨우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지옥 속에서 살아온 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두려웠다.

사람들은 너무 당연하게 행복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존경하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렇지가 않다.


물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부모님'이나 '가족'에 대해 물으면,

거짓말을 할 줄 모르도록 자란 나는 '설명'을 해야만 했다.


그러면 시베리아 벌판처럼 싸늘해지는 분위기가 싫고,

혼자서도 잘 자랐구나 녀석. 이라는 동정이 싫어서 선수를 쳤다.

'콩가루'라는 단어를 써서 더 이상 묻지 않게 방어진을 펼쳤다.


그게 상대에 대한 또 다른 무례라는 걸 깨닫게 된 건,

30대 중반이 되어서였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실체없는 두려움으로 바꼈다.


내가 유난이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날 보면?

내가 사회에서 배척 당하면?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하면?

나는 괜찮을 수 있나?


걱정이 많은 나는 경찰에 신고한 그 순간,

'사람들이 이상하게 날 보면?'이라는 난관에 가장 먼저 맞닥뜨렸다.


그리고 경찰서에 사건 진술을 하러 간 날,

나는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하면?'이라는 난관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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