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조각들에 베이더라도 나는.

6화.

by 김우연


남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나의 위치를 인식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며 삶을 버텨왔다.


"나는 왜?"


나는 왜 태어났지? 내가 태어난 이유가 뭐지?

나는 왜 살아야 하지? 왜 살아남아야 하지?

나는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왜 살고 싶어 하지?


7살부터 시작된 나의 질문은 최근에야 답을 알았다.

<나는 존재해도 된다.>라고.


어린아이는 부모로부터 '존재의 허락'이 오기 마련이다.

그들의 감정적 편의에 의해 조건부적 사랑을 받은 아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며 성장할 수밖에 없다.


나의 자기 검열, 그것의 근원이 거기에 있었다.






2021년 여름날, 절연을 선언했다.

처음은 아니었지만, 마음가짐이 달랐다.

더 이상 얽히면, 끝없는 나의 투쟁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무력감과 우울감으로 인해 내가 위험할 것 같았다.


나르시시스트 모친과 부친의 연락처 완전 차단.

그리고 집을 옮기는 것으로 내 결심을 다시금 보여줬다.

물론,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도 그들은 심드렁했다.

으레 그랬던 것처럼, 또 허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듯했다.


회사도 그만두고,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지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기약이 없는 일이라 막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인생은 불안했지만, 삶은 불안하지 않았다.

일상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안전지대에 들어섰다는 인식이 생기자,

나의 질문이 달라졌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지?

살면서 처음으로 나는 내가 궁금해졌다.


중요한 건, 스스로 온갖 공포와 불안을 먹고 자라난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저 '생존'이라는 것에만 집중했다.

10대는 가족에게 매달려 생존하기에 급급했고,

20대는 가족을 지탱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하지만 30대는 좀 달랐다.

가족에게서 벗어나기를 실패하고 낙담했다가,

또 벗어나기 위해 온갖 몸부림을 쳤다.


그들을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나는 나를 상처 주는 일을 택했다.

비겁하게 그저 도망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나를 궁금해하고 나서야,

그들의 통제와 진정으로 맞서 싸우게 된 것이었다.

40대를 코앞에 두고서야 용기가 났다.




용기의 시발점은, 나의 '꿈'이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모든 걸 잃을 각오로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에 몰두했다.


통제와 간섭이 없는 환경에서

나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처럼 모든 것이 서툴렀다.

자아는 전혀 자라지 않고, 몸과 사회성만 자란아이었다.

잘못된 판단과 선택들로 인한 결과가 휘몰아쳤다.


너무 아프다. 너무 힘들다. 너무 괴롭다.

상황은 꽤 버티기 힘들 정도로 흘러갔다.

말로는 죽는소리를 했지만, 자아는 별로 타격을 입지 않았다.


타인이 아닌 내 선택에 의한 결과니까, 수용이 됐다.

그들과 살았을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강하게 키워준 그들에게 고맙기까지 했다.


그랬다.

나는 내가 강하고 센 인간인 줄 알았다.

그 착각은 어느 날,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깨졌다.



"너 왜 그런 가정사를 웃으면서 이야기해?

그거 이상한 거야. 상대방 입장이 난처할 거 몰라?

이혼이니 절연이니, 콩가루 집안이니.

너 할 말만 하고 그렇게 깔깔 웃으면 듣는 난 어쩌라고."


충격이었다.

온 정신이, 온몸에 금이 갔다.

아니라고 반박하지도 못했다.


그 말이 맞았다.

며칠을 곱씹고, 생각했다.


자괴감이 몰려왔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의 부모처럼 무신경한 인간'이라는 힐난 같다는

생각까지 미쳤을 때, 나는 브레이크를 걸어야만 했다.

절친에게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밑바닥을 모두 드러냈다.

감정적 위로가 아닌 논리적 위로가 이어졌다.


절친의 말처럼, 나는 종종 너무 과하다.

이렇게까지 깊고 어둡게까지 갈 일은 아니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그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들켰을 때 감당해야 할 감정의 폭풍을

이미 너무 많이 겪어봤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관계가 시작되면,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걸 꺼내놓았다.

대부분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꺼내는 주제인 '가족'이 나오면,

자극적인 단어를 쏙쏙 골라 파격적인 내용을 웃으며 말했다.


결코 나를 희화화하고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존재를 부정당하며 자란 아이의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다.




몇 달 후, 나에게 큰 충격을 줬던 사람은

두 번째로 돌직구를 날렸다.


덕분에 나는 완전히 박살 났다.


"너만 모르는 거 같은데, 사람들 다 알아.

웃으면서 밝은 척 하이텐션으로 철벽치고 있는 거.

그거 진짜 아무것도 아닌 투명 유리라는 거, 다 안다고."


진짜? 정말로?

그날도 앞에선 아무 말도 못 하고,

10년, 20년 오래도록 알아온 친구들에게 물었다.


"알고 있었지."

"말을 못 했어. 말하면 너 잘못될까 봐."

"말한다고 달라질 게 없잖아. 안 그래도 너 힘든데."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

트루먼쇼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나름대로는 진취적이고 독립적이며, 야망 있는 사람으로

보이리라 생각하며 의연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나만 몰랐다.

모든 사람은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 상자 속에

전혀 자라지 않은 나의 '내면아이'가 있었다니.


빼곡한 실금으로 불투명해진 유리 철벽이 박살남과 동시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눈물꼭지가 고장 났다.


정해진 루틴대로 생활은 다 하는데, 계속 울었다.

지금이야 이런 글을 쓸 여유라는 게 생겼지만,

그땐 정말 멘털이 다 나갔다.


살면서 울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외할머니의 발인날이 마지막이었다.

'나의 감정'이라는 게 뭔지, 어떤 건지,

나는 인지가 안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음이 늦게 왔다.

아주 늦게, 그리고 오래갔다.




그날을 기점으로

나의 거울이 깨졌다.


나의 내면아이와 마주한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 아이가 나도 모르게 있었다는 것이,

그리고 이제 와서 존재를 드러내며 나를 흔드는 것이.

당혹스럽고 화가 나고, 어이가 없었다.


눈물에 푹 절여진 스펀지처럼 늘어져있을 때,

애써 괜찮은 척하던 나를 덤덤한 말이 살렸다.


"부끄럽고 창피할 일이냐. 그게?

저마다의 생존법이 있는 거야.

넌 그냥 살고 싶었을 뿐이었고,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 살아있는 거야."


바닥에 널브러진 깨진 거울 조각들이 다르게 보였다.

그제야 해방감이 찾아들었다.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조각들이 애틋했다.

결코 의미가 없지 않았던 시간들의 파편이었다.

삐죽 대고 위험한 조각들을 다듬기로 했다.


분명 시차가 존재하지만,

내면아이와 나는 이제부터라도

같이 자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은 몰랐다.


다만, 적어도 이제부터는

다시는 그 아이와 내가 서로를 혼자 두지 않겠다고,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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