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호기롭게 다짐은 했지만,
'나'는 <나>를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알던 나는, 내가 만들어 붙인 콘셉트에 가까웠다.
꽤 오래전부터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걸었다.
그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자아 찾기' 사색을 했다.
전부 다 착각이었다.
헛되고, 무의미하고,
그래서 더 허무했다.
내가 고민했던 건 자아에 대한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까에 대한 방법이었다.
그랬다.
내 안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생각은 많았지만, 정체성은 비어 있었다.
겉보기엔 비대해 보여도,
속은 텅 빈 공갈빵처럼.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자 마음먹고 나니,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뻔뻔해졌다.
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 상태가 어때 보이는지."
"네게 난 어떤 사람인지."
처음엔 다들 조심스럽게 답했다.
내가 다시 한번 박살 나서 망가질까 봐.
또 무너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몇 번이고 물었고,
결국 그들은 작정한 듯 대답했다.
그들이 지켜본 나는
강하고 독립적이지만, 약하고 외로움을 많이 탄다.
대인관계가 어렵다면서, 누구보다 잘 챙기는 사람.
일은 잘하지만, 그 외적인 부분에선 완전 허당인.
그 외에도 많았지만, 나는 솔직히 안도했다.
80년대생인 내가 체감하는 세상은
해가 갈수록 관계는 건조해지고,
외로움은 점점 진해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나만 유난히 외로운 건 아닐 것이고,
나만 유독스럽게 상처가 많은 것도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이 생각을
정신승리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정답이었다.
그렇다고 내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내 감정을 인식하는 법을 몰랐다.
모든 힘든 일을 대할 때
나는 늘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때의 나는, 정말로 괜찮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다.
너무 오래 참던 습관 때문이었다.
그저 괜찮다는 말로 다 넘어가던 삶이었다.
그런 나와 달리, 몸은 제법 솔직했다.
머리로는 괜찮았는데, 몸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스트레스성 질환들이 몸에 차곡차곡 쌓였다.
확실히, 생존법을 개선해야만 했다.
내 주변엔 오랜 세월 동안 뜨뜻미지근하게
나에게 온기를 나눠주는 존재들이 많았다.
끓지 않고, 덥지 않게, 그렇다고 식지 않게.
펄펄 끓던 시절도, 숨 막히게 덥던 계절도,
서로가 서로의 일기장처럼 오래도록 지내온 세월 속에서
나는 그들의 기억 속에 어떤 사람으로 남아 있는지를 계속해서 들었다.
이상하게도 내 곁에 오래 남은 사람들은
나를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고치려 하지도, 방향을 정해주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옆에서 온도를 유지해 줄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런 사람들 곁에서만
나 자신을 지워버리지 않고 버텨왔다.
그리고 늘 이야기 결론은 하나였다.
"그거 하나는 확실해. 넌 또 이겨낼 거야.
그게 어떤 방식이든, 너만의 방식으로 말이야."
처음엔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나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도대체 어떤 걸 보고 날 믿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처음엔 그들의 말을 선뜻 믿지 못했다.
타인의 말은 언제든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해 왔으니까.
그래서 그 말들이 위로라기보다는
잠시 기분 좋은 평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대쪽 같은 나무처럼 보여도,
나는 사실 갈대 같은 사람이랬다.
작은 바람에도 마음이 요동칠 만큼 늘 불안했다.
그래도 꺾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하는 사람이랬다.
물론 그들의 말이
나를 완성해주지는 않았다.
다만 분명해진 건 하나였다.
나는 혼자서 나를 찾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조금씩 나를 회복해 가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들의 말이 나를 완성해주지는 않았다.
문제는,
내가 그런 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늘 안전한 관계에서 배운 방식으로 모든 관계를 대했고,
그게 나의 배려이자 공감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어떤 관계에서는 그 방식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 아니라,
나를 내어주는 방식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