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계를 구분하지 못했다

8화.

by 김우연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대인관계라는 건 참 어렵다.


하지만 나는 관계를 ‘어려운 것’이 아니라
‘버텨야 하는 것’으로 배웠다.


사람의 감정은 시시때때로 변하고,
그 감정의 책임은 내가 져야 하며,
관계가 어긋나면 그 원인 역시 내 몫이라는 생각.


감정적이고 불안정한 부모 아래에서
늘 버림받을까 전전긍긍하던 아이에게
그건 선택이 아니라 몸에 먼저 새겨진 생존 본능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대인관계가 서툰 아이였다.


늘 긴장한 채로 눈치를 보며 주눅 들어 있던 아이는
친구와의 관계에 과도하게 애를 썼고, 그만큼 쉽게 집착했다.


말로 사람을 무참히 도륙하던 부모를 보고 자란 나는
‘솔직함’과 ‘무례함’의 경계를 알지 못했고,
그 무지로 종종 친구들의 마음을 다치게 했다.


그런 내가 진절머리가 난다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과

용서해달라는 말만 반복 했다.


그 모든 말의 밑바닥에는

단 하나의 진심만 있었다.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


친구의 상한 마음보다
내가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먼저였다.


그래서 사과는 통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용서해줄 거야?"


그만큼 관계를 망가뜨린 내가 싫었고,

관계를 돌이키지 못하면

살아 있는 것조차 의미 없다고 느꼈다.


*


이처럼 나를 버리는 일은 쉬웠고,
남에게 버림받는 일은 지독하게 어려웠다.


친구는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그 말 이후 같은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
대신 친구를 향한 나의 레이더는 더 곧추섰다.


표정, 말의 속도, 숨의 간격.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몸이 먼저 긴장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부터 점검했다.


모든 관계에서 나는 그랬다.

겉으로는 밝은 척,
천진난만한 척,
그늘 없는 사람인 척.


온갖 ‘척’을 해대며
무르디무른 내 속을 들킬까
정신도 몸도 어느 곳에서도 쉬지 못했다.




대학교에서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면
그걸 그대로 믿는다는 이야기.


그러니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스스로 정하라는 수업이었다.


그때 내가 만든 나는 이랬다.

독립적이고 자주적이며,
강단 있고 밝은 성격의 100% 순도 T.


97%의 T 성향을 제외하면
거의 다 만들어낸 사람이었다.


마음이 완전히 박살난 후에야
이 문장들이 이렇게 바뀌어 보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

생각보다 내가.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고 ->

내 자아에 관심이 없다.

보여주고 싶은 걸 보여주면 ->

그렇게 나를 속이고 살았다.


그래.

나는 나조차 속이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내가 어떤 점이

어떻게 취약한지 볼 수가 없었다.


그걸 깨달았을 때
무척 슬펐고, 많이 속상했다.


내가
나 자신을
가장 속이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




집 안에서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었지만,
집 밖에서는
쓸모 있고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게 좋았다.

일 잘하고, 성실하고,

노력하는 나에 대한 인정.


그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해도 된다는
허락처럼 느껴졌다.


자라면서 나는 점점 더 많은

‘인정’을 필요로 했고,
스스로의 유능함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포식자들은
그 욕망을 기가 막히게 알아봤다.

그들의 말 몇 마디면
나는 온 성심을 다했다.


쓸모가 존재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걸

조금만 더 빨리 알았다면

나는 덜 지쳤을까.









나는 오래도록 몰랐다.

관계에 대한 분별력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치명적인 약점이 될 줄은.


겉으로는 새침을 떨면서도
나는 쉽게 마음을 열었다.


겉으로 강한 사람에게도,
겉으로 약한 사람에게도.


정정하자면,
약한 사람에게는
더 쉽게.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 앞에서
거절하는 법을 몰랐다.


내 쓸모가 생겼다는 사실이
기뻤기 때문이다.


관계가 ‘파탄’으로 끝날 때
내 역할은 늘 같았다.


이해하는 사람,
버티는 사람,
끝까지 남는 사람.


관계가 무너져 가는 와중에도 붙잡는 것이
잘 자란 어른의 태도라고 믿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남아
모든 이유를 떠안았다.




겉으로 드러난 상대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늘 같은 질문이 따라왔다.


이 행동을 유발한 건 혹시 나인가?


사람들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내게 인간관계는 너무 어려웠다.




매해,

다채로운 나르시시스트를 만났다.


그들은 나처럼 자라온 사람들을

정확히 알아봤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사랑받고 싶은 결핍을

필요 이상으로 오래 사용했다.


그들을 분별하는 데

나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보고 자란 관계가 비정상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관계를

남들보다 오래 버틸 수 있었다.


익숙했고,

그게 내가 아는 유일한 방식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사랑과 생존을

구분하지 못한 채 자랐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착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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