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낯설게 보는 법 - 《그림자를 드리우고》 展

북서울 시립미술관. 레안드로 에를리치 개인전 《그림자를 드리우고》展.

by 정미

레안드로 에를리치, 《그림자를 드리우고》

2019.12.17-2020.03.31.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북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재미있는 전시를 소개합니다. 현재 북서울 미술관에서는 아르헨티나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개인전이 진행 중입니다. 이름부터가 어렵게 다가오시나요. 그러나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쉽고 재밌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에를리치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들을 소재를 선정하여, 그 익숙함을 인지하는 우리의 인식에 균열을 가하는 작업들을 선보여 왔습니다. 에를리치는 현실을 재구성하여 관람객들이 가지고 있는 공간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작품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에를리치는 공공예술 작품으로도 아주 유명합니다. 현재는 세계 여러 도시에서 작품을 의뢰받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레안드로 에를리치 (Leandro Erlich)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레안드로 에를리치가 낯설게 느껴지는 독자들을 위하여 에를리치의 작품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The Swimming Pool>(2004)은 에를리치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입니다. <The Swimming Pool>은 물이 가득 채워진 수영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빈 공간입니다. 작품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수영장 속을 걸어 다니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작품 속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물속에서 사람들을 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레안드로 에를리치, <Swimming Pool>, 2004.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작품은 <Building>(2004)입니다. 이 작품 역시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작업입니다. 사람들은 건물 곳곳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얼굴에 여유가 가득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이 작품은 수평으로 눕힌 설치물 위에 큰 대형 거울을 설치하여서, 마치 사람들이 건물에 매달려 있는 듯한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착시를 이용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레안드로 에를리치, <Building>, 2004.


전반적으로 에를리치의 작품은 위트 있고, 감상의 장벽이 낮아 현대 미술에 대해 전혀 모르는 미술 문외한들도 얼마든지 쉽게 다가가고 즐길 수 있습니다.




이번 시립 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에를리치의 개인전 제목은 《그림자를 드리우고》입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하여 그간 주로 작업의 중심 소재가 되어 왔던 “인식”이라는 주제를 넘어 “주체와 타자의 관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고 합니다. 말이 조금 어렵죠. 그렇다면 작품을 통하여 보다 쉽게 작가의 메세지들을 읽어봅시다.


2019월 12월 17일부터 시작되는에를리치의 개인전 포스터.


전시장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엘리베이터 미로>(2011)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미로>는 엘리베이터 4대를 이어 붙여 만든 설치 작품입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 엘리베이터 내부의 “벽이 있는 곳”, 그리고 “거울이 있는 곳”을 무의식적으로 예상합니다. 그러나 에를리치는 관람자들이 거울일 것이라 예상한 면에서 타인의 얼굴을 발견하도록, 그리고 벽일 것이라 생각한 면이 휑하게 뚫려 있도록 작품을 고안합니다.


레안드로 에를리치, <엘리베이터 미로>, 2011. 사진참조: 올댓아트


<탈의실>(2008)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탈의실이란 아주 개인적이고 사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에를리치의 <탈의실>은 조금 특별합니다. 관객들은 개개인이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폐쇄된 탈의실을 기대하고 작품 속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곧 탈의실의 벽면이 뚫려 있거나, 거울들이 마주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밀한 공간이라고 예상하고 탈의실에 들어섰던 관람객들은 타인의 존재 혹은 무한히 반사되는 자신의 존재를 마주하며 혼란을 느낍니다.


레안드로 에를리치, <탈의실>, 2008.


예상했던 ‘엘리베이터’ 혹은 ‘탈의실’이라는 공간은 없고, 좀처럼 정의 내릴 수 없는 혼란스러운 공간을 마주할 때, 그때 느끼는 기이한 가정은 아마 에를리치가 의도한 감정일 것입니다. 관객들은 뚫려있는 탈의실 옆칸에 팔을 집어넣거나, 서로 마주 본 거울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재미를 느낍니다. 필자가 전시장을 찾았던 날은 모든 관객들이 성인이었지만, 관객들은 어린이들의 얼굴에서 볼법한 호기심 어린 얼굴들로 연신 감탄을 내뱉었습니다. 이 낯섦은 우리의 인식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친숙한 것들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거리를 두게 합니다. 에를리치 작품에서 낯섦은 삶을 다르게 보는 시작점이 되는 감정입니다.



<더 뷰>(1997)은 에를리치의 초기작입니다. 관객들은 미술관에 설치된 블라인드 틈새로 다른 이들의 삶을 훔쳐보게 됩니다. 이 작품은 마치 남의 집을, 그러니까 타인의 내밀한 삶을 훔쳐보는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블라인드 틈을 통하여 보이는 것은 우리가 예상한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TV 화면들입니다.


레안드로 에를리치, <더 뷰>, 1997.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산업화 이후 이웃 간의 연결은 느슨해지고, 관계의 자리를 기술이 대체하기 시작하며 점차 고립되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현대인들은 사람과 사람 간의 교류를 통해 타인의 삶을 알아가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TV, 요즈음은 스마트폰을 통하여 선별되고 왜곡된 타인의 인생을 바라봅니다. SNS의 발달과 함께 타인의 삶을 엿보는 행위는 이전보다 훨씬 더 심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는 타인의 삶은 허상일 뿐입니다. 그것은 만들어진 찰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그들이 보는 이미지와 기호가 곧 세계의 실재를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더 뷰>는 이 전시에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는 작가의 메시지를 잘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층 전시실의 마지막에 만날 수 있는 작품은 <탑의 그림자>(2019)입니다.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하여는 2층 전시실까지 올라가야 하는 특별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앞서 소개한 <Swimming Pool>을 한 단계 발전시켜 선보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면 위에는 탑이 한 채 떠 있습니다. 수면은 이 고고한 탑을 선명하게 비춥니다. 이 탑은 “무영탑”으로 알려진 석가탑입니다. 무영탑이란, 곧 ‘그림자가 없는 탑’이죠. 그런데 에를리치는 탑의 그림자를 아주 선명하게 표현한 듯합니다.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물아래에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기이한 느낌이 드는 작품입니다.


레안드로 에를리치, <탑의 그림자>, 2019.


그러나 탑의 그림자도, 그리고 물속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허상입니다. 탑의 그림자가 아니라, 수면 아래는 탑과 상하 대칭이 되는 구조물이 하나 더 설치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물속을 거니는 듯 하지만, 실제로 탑의 하부에는 물로 채워져있지 않습니다. 투명한 유리창 위에 얇은 물이 흐르고 있을 뿐입니다.


<탑의 그림자> 앞에 서 있는 우리는 우리의 시각뿐 아니라, 그 시각적 기호를 읽어내고 해석하는 우리의 인식에 의문을 가집니다. 이미지로 점철된 이 세계에, 이미지가 마치 실재하는 세계를 대변하는 것 같은 이 시대에 에를리치는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이 그리고 우리가 내린 판단이 과연 실재인가를 묻습니다.




전시를 둘러보면 우리의 예상과 다른 공간이 펼쳐져버릴 때 느껴지는 기이함을 자주 느낄 수 있습니다. 에를리치는 '당연함'에 의문을 제기하고, 우리가 ‘실재’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상 ‘허구’ 거나, 혹은 왜곡된 실재의 반영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던지는 듯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각이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 될 수 있는지 물어보는 듯합니다.


시립미술관답게 이번 전시는 작품성뿐만 아니라 대중성까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자 한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는 누구와 함께 가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전시입니다. (필자 역시 미술 전시에 대해서는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친구와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에를리치의 작품을 공공미술의 맥락에서 만났을 때 느낄 수 있는 유쾌함이 미술관의 맥락에서는 다소 감소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광장에 설치되었던 작품이 미술관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그 장소와 상호작용하며 일으켰던 작품의 아우라와 힘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작품은 접근하기 어렵고, 엄숙한 느낌을 뿜어냅니다. 아마 미술관이라는 장소의 특성이 작품에게 권위와 품격을 부여하기 때문이겠죠. 필자는 에를리치의 개인전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고, 그 점이 작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북서울 미술관 야외에 위치한 넓은 광장을 활용한 야외 작업을 함께 선보였다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러나저러나, 전시 참 재미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추천합니다. :)



* 참고로 현재 시립미술관은 휴관중입니다. 전시장 방문과 관련하여 착오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사진 참조

- 커버
https://www.youtube.com/watch?v=dV-bxw3--pM

- 에를리치 portrait
https://www.24s.com/ko-kr/le-bon-marche/vu-au-bon-marche/leandro-erlich-

- 레안드로 에를리치, <엘리베이터 미로>, 2011.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7105087&memberNo=37451778&navigationType=push-

- 레안드로 에를리치, <탑의 그림자>, 2019.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7461576&memberNo=33157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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