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 이름만 불러 보아도 가슴이 저미는 이유.

《밤이 낮으로 변할 때》, 아트선재센터, 이혜인 작가 外

by 정미

아트선재센터《밤이 낮으로 변할 때》

2019.12.28-2020.02.09.

강은영, 송민정, 안초롱, 윤지영, 이혜인.



며칠 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밤이 낮으로 변할 때》 전시를 다녀왔습니다. 효자동 근처에 좋아하는 카페를 갔다가 산책을 심산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니 문득 이곳에서 젊은 작가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습니다. 저녁 약속까지 남은 시간도 보낼 겸 편안한 마음으로 전시장을 찾았습니다.


아트선재센터 2층 전시실에 도착하면, 다섯 명의 여성 작가들이 각 작업을 통해 “시간”에 관한 사유를 전달합니다. 작가들은 어떤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전시장을 거닐었습니다. 잠깐의 틈을 이용하여 전시장을 찾았기 때문에 길게 머물진 못했지만, 생각지 못했던 질문들을 던지는 흥미로운 작품들이 꽤 있었습니다.


《밤이 낮으로 변할 때》 포스터


전시를 다녀온 지 하루가 지나고, 한주가 지났습니다. 전시에 대한 기억은 점차 희미하게 사그라드는데도, 한 작품이 오랫동안 제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그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혜인, <Mom_looking inside> , 2019, 린넨에 아크릴과 잉크젯 프린트, 200 x 190 cm.



이혜인 작가의 <Mom_looking inside>는 제목 그대로 '안을 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아마, 이 작품에서 inside는 장소의 내부라기보다도, 사람의 내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어머니의 모습이거나, 어머니가 마음을 들여다볼 때 마주하게 될 어머니의 내면을 담은 그림일 것입니다.



형태를 알 수 없는 선들과, 다 붙여지지 못한 마스킹 테이프, 정체를 모르겠을 이미지들, 그리고 마구잡이로 칠해진 붓질들이 모여 작품을 이루고 있습니다. 작품 앞에 서면, 미처 정돈되지 못한 복잡한 마음을 안고 '어머니’로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한 여성의 삶이 읽히는 것 같습니다.


이혜인, <알베르틴>, 2017, 캔버스에 유채, 200 x 190 cm.



한 번은 ‘엄마 되기’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는 어머니를 주제로 잘 팔리는 책을 쓰고 싶다면, 세 가지 주제 중 한 가지를 선정하면 된다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살림하는 법 같은 현명한 엄마의 역할을 해내는 전략을 쓰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어머니이지만 전문 영역에서 성공하는 방법을 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가정도 잡고 일도 잡는 99가지 비법’ 같은 책을 쓰는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요즘은 "괜찮아" 혹은 "엄마가 처음이라" 이런 식의 위로하는 책들이 유행입니다. 요즈음 엄마들도 현대인은 현대인인가 봅니다.


이 글을 읽으며, “도대체 왜 엄마들은 왜 이런 주제에 열광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살림을 잘 못한다거나 멋진 엄마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혹은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과 자신만의 전문적인 영역에서도 성공하고 싶은 분열적인 마음이 동시에 그들을 괴롭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겠죠. 아버지가 되기 시작한 순간, 아내와 아이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부담과, 자아실현보다는 아버지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 아이와 놀아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일이 끝나면 쉬고 싶은 분열적인 마음이 무의식 중에 아버지들을 짓누를 것입니다.


캔버스에 딱 붙어있지 못하고 힘없이 풀려있는 마스킹 테이프.


이혜인의 그림은 엄마가 된 후 시끄럽고 격렬한 마음 하나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여성의 복잡한 내면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림을 바라보며 엄마들은 얼마나 자주 이 미안한 마음과 부족하다는 마음을 뒤로한 채 의연히 아이의 욕구에 먼저 반응하고자 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캔버스 중간에 떨어져 나온 마스킹 테이프는 차마 그 마음 하나 제대로 추스르거나 돌아보지도 못한 채 바쁘게 살아온 부모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혜인, <Mom_ looking outside>, 2019, 린넨에 아크릴과 잉크젯프린트, 200x 190 cm.


<Mom_looking inside>의 옆에는 한 쌍으로 그려진 <Mom_looking outside>가 놓여 있습니다.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Mom_looking outside> 속의 어머니는 시끄럽게 울려대는 마음의 소리들을 묻어둔 채, 아스라히 멀어지는 풍경을 그저 바라봅니다.


가정을 이루고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은 나를 잃어가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포기하고 잃어가는 만큼, 딱 그만큼 아이는 건강하게 자랄테니까요.


주변에서는 잘나가던 직장이나 학위를 포기하고, 육아 전쟁에 돌입한 친구들이 하나 둘 늘어갑니다. 좀처럼 추스러지지 않는 마음과 몸으로, 아이를 조금이라도 잘 키우고 싶어 분투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인간은 이토록 지난한 과정을 통하여 길러는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내가 오늘 이 자리에 그렇게 왔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작가의 의도는 그렇지 않을 수 있는데, 필자 자신이 작품 앞에서 너무 처연한 생각만 한 것일까 싶기도 하지만, 작품 앞은 언제나 평소 지나쳤던 사유들을 쏟아내기 좋은 장소인 것 같습니다.


전시는 이번주 주말까지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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