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꽃 Jun 18. 2024

반려견 롱롱이에게

롱롱이의 9살 생일을 축하하며


두 번째 유산으로 아이를 보내고 몸과 마음이 망가져버린 나에게. 거짓말처럼 사랑스러운 네가 왔어. 아빠가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지. 이제 와서 말하지만. 나는 네가 내가 보낸 그 애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내 품에서 꼬물꼬물, 말랑말랑, 천사 같던 네 모습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지.


너는 역시나 주방을 제일 좋아했어. 주방에서 고소한 냄새가 날 때마다 뭐에 홀린 것처럼 따라 들어오곤 했지. 나는 그런 너를 교육한다고 주방 문 앞에서 못 들어오게 했는데. 거기서 짖던 네가 얼마나 귀여웠는지. 너는 네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어. "엄마, 나도 나도, 먹고 싶어요. 왜 못 들어가게 하는 거예요."라고.



잠을 자도 주방문 앞에 널브러져 자는 걸 좋아했던 너. 마치 네 언니 어릴 때처럼 누가 업어가도 모를 것처럼 잠들곤 했었지. 배를 까고 꼼짝없이 드러누운 팔뚝만 한 네 모습은 영락없이 '걸레'처럼 보일 때도 있었지만. 저 코를 좀 봐봐. 앙증맞은 까만 코랑 요정귀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대자로 뻗은 팔다리는 또 어떻고.



우리 집에 온 지 몇 개월이 지나자 라떼색의 곱슬 털이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더라. 아직 어려 미용은 무리일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어느 날 눈을 찌르던 '앞머리'가 불편해 보여 미용을 감행했던 나. 미안해. 실패하고 말았지. 정말 미안해. 한동안 가족들이 너를 두고 '부엉이'라고 놀려댔었지. 엄마도 그럴 생각은 없었어. 미안한 마음에 새 신도 사주고 간식으로 달래도 봤지만. 네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어.



너에게 특별한 어떤 날. 나는 너에게 파란 속옷을 선물했어. 그런데 너는 여전히 기뻐 보이지 않더라. 혹 색상이 맘에 안 들었던 거니? 그날 이후 나는 네게 옷 입히기를 포기했어. 반려견 훈련사님이 그러시더라고. "강아지는 옷이 필요 없습니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견주가 옷을 사 입히는 것이죠."라고. 잠깐이었지만 그 후로 나는 네게 좋은 것과 내게 좋은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지. 나는 네가 최고로 행복한 반려견이 되었으면 했어.



호기심 많은 너는 종종 새 친구를 사귀곤 했는데. 도치를 만났을 때만큼은 화들짝 놀라더라. 뾰족한 가시를 드러내고 있지만 색상은 너와 꽤 어울리던데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가지 않기를 잘했어. 하마터면 동물병원에 갈 뻔한 거잖아?



나는 너의 풋풋했던 청년기를 잊을 수가 없어. 내가 너에게 거품 목욕을 해 주면 너는 그저 한 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온몸으로 반신욕을 즐겼었지. 씻고 말리고 나면 뭐가 그리도 흥분되던지 온 방 안을 뛰어다니곤 했어. 목욕 후면 나는 네게 수고했다고 네가 제일 좋아하는 '개껌'을 주곤 했지. 너는 개껌을 정말 사랑했어. 내가 개껌을 주면 너는 온몸을 바닥에 바짝 깔고선 긴 두 발로 개껌을 요리조리 돌리며 만끽했지. 내가 봐도 넌 즐길 줄 아는 반려견이야.



종종 더운 여름날이면 집안에 모기가 들어오곤 했는데. 엄마가 요리조리 모기를 잡으러 다닐 때면 너는 놀아주는 줄 알고 함께 뛰어다녔지. 그러다가 '짝' 소리와 함께 찰나의 난투극이 끝나면 나는 재미로 네게 모기 사체를 보여줬었어. 사뭇 진지했던 네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너 정말 엄마가 무서웠던 거니?



너를 데리고 다니면 주변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만 같았어. 너의 총명한 눈동자와 길고 쭉 뻗은 다리, 보드랍고 매력적인 곱슬머리. 앙증맞던 동그란 꼬리 그리고 알잖아. 천재견 롱롱이. 내 눈에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멋졌고 제일 사랑스러웠어.

 


너를 만나고 내가 가장 많이 흥얼거리던 노래가 뭐였는지 아니? 드라마 상속자들로 유명해진 '말이야'라는 노래야. 밤에 잠들 때도, 아침에 깨어서도 너는 언제나 나의 처음이고 마지막이었어. 밤이면 포근한 잠자리 놔두고 굳이 엄마 냄새나는 슬리퍼를 베개 삼아 자는 너. 엄마만 쫒고 엄마 곁에만 맴돌던 너를 보면 자연스레 이 노래가 흘러나왔지. '너만 보인단 말이야. 널 사랑한단 말이야. 눈을 감아도 너만 보인단 말이야~' 어쩌면 그럴 수 있니? 어떻게 네 눈엔 엄마 밖에 없니. 세상에 너만큼 나를 사랑하는 존재가 또 있을까?



작년에 한국 다녀올 땐 언니가 '물고기' 선물도 사 왔지. 내가 뼈다귀가 아니고 왜 물고기냐고 하니. 롱롱이는 다르다고 하던 네 언니. 언니 눈에도 네가 특별한 게야. 역시 너는 물고기 인형을 좋아했지. 인형이어도 좀 비려 보이지만. 그래도 너만 좋다면야!



곧 다가올 너의 생일을 위해 내 브런치에도 네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아봐. 특별했던 날 마법처럼 나타난 너의 존재가 나에게는 얼마나 큰 위안이고 희망이었는지 모른단다. 롱롱아. 9살 네 생일을 축하해. 늘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고. 말 못 한다고 섭섭한 때도 많았을 텐데 한결같이 엄마 바라기인 너에게 나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너의 세상이 다 하는 날까지 나도 네 곁에 있어줄게 롱롱아. 건강하게 매일매일 행복하게 지금처럼 즐기는 반려견이 되어주련. 사랑해 롱롱아.








매거진의 이전글 반려견 상담 4회기: 카밍 시그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