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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za Jun 17. 2024

108배 수행 그거 고행 아니야?

수행과 고행은 한끝 차이!

절을 다니지 않는 사람도 108배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108배는 몸을 굽혀 절을 하는 오체투지 수행법. 내 몸의 이마, 양 팔꿈치, 양 무릎을 땅바닥에 대어 나의 몸과 마음을 낮추어 다스리는 수행법이다.      

내가 중학교가 되던 해에 엄마는 자신의 힘든 마음을 좀 내려놓고자 절에 다니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엄마가 한창 열심히 절에 다니면서 기도를 하던 때에 나도 좀 변해야 한다며 새벽 기도를 따라가자고 했다. 몇 번 안 간다고 했지만, 5시 30분만 되면 나를 깨운다. 그럼 억지로 따라갔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절에 가기 싫었던 이유는 절에 가면 무조건 108배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새벽에 일어나기도 힘든데, 거기다가 108배 기도라니. 나는 가끔 속으로 차라리 엄마가 교회를 다녔으면 이렇게 고통받지 않아도 될 텐데 데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교회에는 성경책 읽고, 찬송가 부르며 즐겁고 재미있는 활동만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엄마를 따라 새벽에 법당에 가면 고요하다. 그럼 나랑 엄마랑 둘이 방석을 펴고 앉는다. 


그럼 나는 부처님 불상 앞에서 미간에는 인상을 쓰고, 입은 툭 튀어나온 채 성질을 내며 기도를 한다. 108번뇌가 더 올라온다. 나의 번뇌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고, 그 기운은 엄마에게 전해진다. 그럼 엄마도 자신의 발작 버튼을 눌러 나에게 화내기 시작한다. ‘어떻게 시키는 것마다 인상을 쓰면서 하냐?’고 화를 낸다. 그럼 나는 ‘엄마는 그렇게 수행하면서 왜 그런 말을 해? 절해도 별거 없네!’라며 우리 모녀의 싸움이 시작된다.     

나에게 수행은 가깝고도 멀게 느껴졌다.


가끔 마음이 힘들 때, 절에는 가고 싶지만, 절은 하고 싶지 않은.

뭔가 수행이 아닌 고행인 것 같은 108배.


나에게는 정신적 스승님이라고 생각하는 스님이 계신다. 힘이 들 때마다 스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럼 그때마다 스님은 명상하거나 절을 하는 것을 추천해주신다. 그러나 생각이 많을 때는 생각을 가라앉혀야 명상을 할 수 있어서 108배를 하는 게 좋다며 기도를 추천해주신다. 그럼 나는 또 며칠은 108배를 열심히 해본다. 


몸이 힘들면 생각이 사라진다고 해서 108배를 하는데, 어떨 때는 생각이 더 많이 일어날 때가 있다. 그럼 어떤 이유를 만들어서든 기도를 안 하는 이유를 찾는다. 기도를 안 할 이유는 수백 수천 가지다. 다리가 아파서, 어제 일이 너무 많아서 등 번뇌에 휩싸인다. 그럼 나는 결국 절은 나랑 안 맞아! 라고 결론을 내린다.     


수행이라는 것은 고통을 참기 위해 고통을 주는 행위가 맞을까? 나는 그런 것이라면 108배 수행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도 현실에서 온갖 번뇌와 분노에 휩싸이면 붓다처럼 온화하고, 어느 것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108배 수행을 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대체 수행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깨닫는 자가 될 수 있긴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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