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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Aug 30. 2020

이시국에 퇴사한다는 것은

Bravo, My Life!




에릭남, Bravo, my life! 가사



에릭 남의 노래를 들으며 버텼다. 

그러다 소심하고 간땡이 작은 내가, 드디어 사직서를 던졌다. 


구성원과의 협의 없는 조직장 주도의 갑작스러운 전환 배치(거의 모든 실 전체 인원이 전환 배치 되었다), 이로 인한 업무 변경(업종 및 광고주가 완전히 변경되었다), 변경된 팀 팀장님의 비합리적 업무 분배 및 처사(직장 내 괴롭힘으로 해석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내가 어떻게 대처하고 적응해나가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에, 결국 극복하고 개선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생각했다. 


나름대로의 의미 부여로 정신 승리를 하고 있을 때 즈음, 제안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IMC 전략을 요구하는 RFP에는 STP 분석을 요구하는 사항도 들어있었는데, 팀장님께서는 "STP가 뭐야?", "타겟이랑 포지셔닝 차이가 뭐야?"라고 질문 하셨다. COVOID-19 이슈로 우리 나라 모든 산업군이 힘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온라인 광고대행사인 우리 회사가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진 데에는 명징한 사유가 따로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는 실력으로 말해야 한다. 정치는 '실력' 이 갖추어진 후에 부가적으로 달려야 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만의 확고한 개똥철학일 수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제대로 실력을 갖출 수 있고, 인정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던 방향성과 맞는 회사로 이직을 결심했다. 몇 달 안 남았지만 아직 20대이니까, 한 달 좀 넘는 기간 동안 신입/경력 구분 없이 이력서를 10군데 제출했고, 그 중 3곳에서 면접 제의가 왔다. 이 즈음 사랑제일교회 확진자가 폭발했다. 다행히 면접 일정이 밀리지는 않았지만 혹여 채용 취소가 되지는 않을까 엄청나게 마음을 졸였다.


이제 적응 잘 해서 친한 동료 분도 생겼고, 업무도 손에 익어 두려움이 없어진 지금, 좀 익숙해지려니까 다시 새로운 출발을 찾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300인 넘는 재직자를 보유한 마당에 분기 영업이익 (0.01 x n)억이라는 빛나는 실적을 낸 현 회사, 업무에 대한 회의감, 팀장님에 대한 분노를 '현실적인 문제'에 대입하여 생각한다면 간단하게 소강될 '변명 거리'였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어두운 미래에 대해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게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무작정 퇴사는 애초에 선택지에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치열하게 고민했다. 퇴사가 '부적응의 결과'가 아닌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때까지, 온갖 상황에 대해 귀납적으로 추론하고 결론지었다. 우선 '질문'부터 정리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충족해야 할 요소(기준)들을 정립했고, 최종적인 답변 후보들을 정리했다. 


왜 퇴사 하려는가? 그 대안이 이직 뿐일까?

어떤 곳으로 이직해야, 내가 무엇을 얻어야,
새로움이라는 불확정성을 감수할 가치가 생길까?


이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세웠다.

첫째, 연봉을 높일 수 있고,
둘째, 회사의 비전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셋째, 회사도, 나도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력서도 위 기준에 부합하는 회사를 중심으로 넣었다. 진심이 통해서일까, 코시국 와중에 정말 운 좋게도, 연봉도 만족스러울만큼 올리고, 나의 인사이트와 광고 방향성과 맥을 같이 하는 회사에 이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분명 그 새로운 회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실력이 없어서 '출근 지각 체크'를 중요 업무로 삼는 상사가 없을 리 없고, 업무 강도도 팀 바이 팀이렷다. 그나마 현 회사에서 배운 점이 있다면, "회사에 크게 기대를 안 해야 한다는 것, 회사 이전에 개인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점을 명시하고, 내가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미래에도 꾸준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만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해야 할 것이다.



** 추가: 이직 시 도움 된 한 가지 - 현직자 모임

이번 이직 시, 회사를 알아보는 정보의 깊이는 신입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취업 하자마자 들어간 '현직자 모임'에서 정보를 얻으며, 소개를 받으며, 뒷담화를 들으며 회사를 보는 안목을 키웠던 것이 이번 나만의 기준 정립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연식이 많으신 선배님들로부터 "이내 씨는 이런 방면을 잘할 것 같은데? 보니까 아이디어가 아주 좋아." "이내 씨는 실행력이 좋은데 끈기가 없네. 그걸 좀 보완해야겠어." 등의 통찰을 들으며 나의 위치와 실력을 명확히 파악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인 점이 매우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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