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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mono Dec 27. 2019

단편소설 장강명 <알바생 자르기>


나도 한때는 알바생이었다.


소설 <알바생 자르기>의 알바생의 이름은 '성혜미'이다.  


회식 자리에서 우연히 알바생 이야기가 나오자 직원들은 하나둘 알바생에 대해 한 마디씩 한다.

 문 앞에 앉아서 들어오는 사람한테 인사도 안 하고 눈길도 주지 않는다, 뚱한 표정으로 뮤지컬 사이트, 여행 사이트 같은 거 보고 있다, 점심시간에도 혼자 먹고, 커피숍에서 혼자 앉아 책 읽는다 등 각자 싹싹하지 않은 알바생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는다. 사장도 평소 뚱하게 앉아 있던 알바생이 마음에 안 들었던 차에 바로 자르라고 한다.

그 아가씨 그거 안 되겠네, 잘라! 자르고 다른 사람 뽑아!

평소 은영이 알고 있던 알바생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1. 인천에서 1호선을 타고 출근한다.

2. 전에 중학교에서 서무를 했다.

3. 못 사는 집 아이이다. 다시 말해 가난하다.

4. 영어 실력이 독일 본사 매니저 메일에 답할 수준은 아니다.


위의 정보는 알바생과의 짧은 대화에서 은영이 알게 된 것이거나 추측한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은영은 여자아이를 소녀 가장처럼 불쌍하게 여기고 있다.

사실 은영은 알바생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회식 후 한국인 사장을 비롯해 직원들의 의견을 들은 후부터 알바생의 행동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팩트 체크나 비판 의식 없이 여러 사람의 판단이나 의견을 따라가는 군중심리에다가 평소 여자아이에 대해 갖고 있던 '없는 집 아이에 대한 편견'까지 더해져 은영은 알바생을 자를지 말지 고민하게 된다.


지금은 그만둔 박 차장이 자신의 출산휴가 빈자리를 메우려고 뽑았는데 알바생의 업무는 다음과 같다.


1. 독일에서 브로슈어 오는 것들 정리하기

2. 울산이나 포항으로 부품 보내기

3. 청소 아주머니들한테 청소할 곳 알려 주기

4. 교육 교재들 제본하기

5. 음료수랑 커피 캡슐 채워 놓기


외국인 사장이 있을 때나 한국인 사장이 있을 때나 알바생은 위의 업무를 해 왔다. 지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주 해 왔고, 문 앞에 앉아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이나 손님이 오면 차를 내오지 않는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알바생은 변함없이 하던 일을 계속해 왔을 뿐이었다.


한국인 사장으로 바뀌고 알바생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지면서 결국 은영은 '조직 생활을 하려면 붙임성이 있어야 한다'는 충고를 하고 알바생은 눈물을 보인다. 은영은 오전 근무만 하고 월급을 덜 받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다. 알바생은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으나 은영은 눈물을 포함해 모두 변명이라고만 생각한다. 그 후 알바생은 인사도 어색하게 해 보고 손님이 오면 차를 내가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얼마 후 알바생은 잘렸다.


잘린 후, 알바생은 해고에 대한 서면 통보를 하지 않은 것, 퇴직금 지급에 대해 은영에게 말한다.

은영은 몰랐다.

알바도 주 15시간 이상, 1년 이상 일을 했다면 30일 전에 서면 통보를 해야 하고 퇴직금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결국 권고사직의 형태로 석 달 치 월급을 준다. 두 달 후 알바생은 4대 보험에 가입이 안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서 회사를 고소하고 싶지는 않고 그 액수만큼 알바생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한다.


은영은 알바생을 자르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갈까 생각한다. 은영의 표현대로 '소녀 가장인 것 같은 불쌍한 알바생'을 자르면서 자신의 연봉 협상을 계획했다. 또 알바생을 자른 후에는 자신에게 어떤 피해가 갈까 전전긍긍하고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알바생에게 자신의 돈 150만 원을 주며 합의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가난해서 순진한 줄로만 알았던 알바생'의 행동을 보고 은영은 알바생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하고, 사람이 제일 무섭다며 한숨을 쉰다.


해고를 통보 받은 알바생은 은영에게 이렇게 말한다.

결국 싹싹하게 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네요


외국인 사장이 계속 한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한국인 사장이 아니었다면 태국인 바이어들과의 전체 회식은 없었을 것이다. 알바생에 대한 의견을 나눌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은영도 알바생에 대해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알바생을 뚱하다며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장도 없고 직원들이 자신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이야기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렇게 몇 개월이 더 지나 근로법에 맞게 알바생을 정규직으로 채용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력보다는 처세를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고 알바생처럼 계급이 낮은 사람은 윗사람에게 싹싹하게 굴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한 한국의 조직 문화에서 알바생은 2년이 지나기 전에 잘려야 하는 운명이었다.


소설 <알바생 자르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단락을 제외하고는 사장과 은영, 직원들의 알바생에 대한 편견과 군중 심리, 자신보다 사회적으로 약자라고 여기는 사람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마지막 단락에 와서야 알바생의 속마음과 진짜 현실이 처음으로 나온다. 학자금 대출을 못 갚아서 독촉을 받고 있었으나 오늘 받은 돈으로 갚을 수 있게 되었다. 인대 수술로 얼마 전 받은 퇴직금을 다 썼지만 여전히 다리 상태는 좋지 않다.


밖으로 나온 혜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한국의 조직 사회에서 <싹싹하게> 살아남아 남편과 치맥을 먹으며 알바생을 자를지 말지 고민하는 은영이 될까? 아니면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외국인 사장, 본사 직속 상사와 소통을 잘했던 사내의 숨은 권력자 박 차장이 될까? 우리 사회에서는 은영이 되어야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고 혜미는 잘리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미가 그 누구도 아닌 혜미 자신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싹싹하게>가 아닌

<씩씩하게>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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