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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자극점

보고, 듣고, 느끼던 것들이 전부가 아니였구나.

by 김혜진

20250130.목 / 눅 6:1-11


> 묵상

바리새인들은 오늘도 예수님과 무리들을 고발할 증거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손이 마른 자를 치료한 일 같은 거는 너무 눈에 띄는 일이니까 그렇다 해도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1)’같은 세밀하고 작은 움직임들

밀밭 사이로 지나가는 길에 잘랐으니 이삭을 뭘 얼마나 잘랐겠으며 먹어도 얼마나 먹었겠는가?

밀밭을 지나가면 밀이 무성할텐데 그 사이로 지나가면서 이삭 몇 개 잘라 비벼 먹는 것까지 관찰했다는게 놀라웠다.


이전 교회에 대한 상처가 해석되지 않았고 기도하고 있었다.

가장 의문은 공황이었다.

자매들 사이에 들어가는 문턱이 힘들긴 했지만 그들도 나를 반겨주었고 사이도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교회를 갈 때 종종 차안에서 공황이 왔다.

교통사고 트라우마로 인해 공황이 생긴건가? 생각했고, (시점도 이상했고 사고도 약했는데 왜이러지? 싶었지만)

작년까지도 그 생각으로 교인과 관련있는 운전은 무서워 피하고만 싶었다.

그 뿐 아니라 자매모임은 주로 자매들 집을 돌아가며 했는데

차안에서 오는 공황은 자매모임을 하러 들어가서도 유지되었었다.

당시 리더였던 선교사님에게 느끼던 불편감이 있었는데 그 분으로 인한게 아닐까? 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분의 어떤 행동, 말, 그런 것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의 이삭 몇 개를 잘라 비비는 것까지 관찰하며 딴지를 거는 것처럼

내 마음에도 그런게 있었다.



그렇지만 뭐랄까 충분치 않은 느낌이었다.

이전에는 없던 증상이었기 때문에 난 그때의 일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기도했지만 별반 응답도 없고 잘 모르겠는 것들의 연속이었는데

몇 일전 자매모임의 공간과 인원수 그리고 그 무리들끼리의 연대

어릴적 내가 보던 빵개판의 모습과 인원의 밀집 그리고 그들끼리의 연대

그 두 장면이 차례로 겹쳐 보였다.

그리고 '아! 그것 때문이었구나.'하고 알게 되었다.


난 자매모임을 가기 싫었던 게 아니라 어린 시절 그 광경이 힘들었던 거다.



어릴적 우리집은 쉽게 도박장이 되었었다.

도박장을 보고 자란 것이 크게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을거라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그곳에 오시던 아줌마, 아저씨들이 도박은 했을 지언정 험악하시지 않으셨고 내게 다정하셨다.

다른 사람 집에 없던 모습이기 때문에 보고 싶지 않았지만 나의 힘으로 어쩔 수 없기도 했고,

아빠의 연약함과 연결되어 있어서 사랑하는 아빠를 이해해야 했기 때문에 그 모습 모두를 부정할 순 없었다.

정말 보고싶지 않은 장면 이었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살 수 없었다.


어쩜 그때의 그 광경이 내 무의식에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을 수 있었고, 그게 떠나온 교회의 자매모임에 영향을 미친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까 난 의식도 못한채로 어떤 감정만 느끼니 불편하고 왜 불편한지에 대한 것들을 왜곡된 판단(사고 후유증이라거나 리더에 대한 불편등)만 하고 있었던 거다.

전혀 다른 구성원 전혀 다른 집단의 성격이라는걸 알지만 내 깊은 곳은 힘들어 했던 거다

비슷한 숫자의 구성원, 집과 같은 한 공간에 모여 둘러 앉아 있는 것, 그리고 그들끼리의 연대같은...

어떤 요소가 날 자극하고 있었던 거다.


그때 강렬하게 든 생각은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는 것들에 엄청난 오류들이 있을 수 있겠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제자를 안식일을 범한 악인쯤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처럼

훨씬 더 교묘하고 은밀하게 삶 속에 그런 오류들이 침투되어 있겠구나.

지금 내가 깨닫고 느낀 것도 오류중에 하나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쥐고 있던 오만의 조금은 빠져 나가는 거 같았다.

그리고 오늘은 청소를 하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전혀 연관 없을 거 같았던 과거와 현재가 연관이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자유함과 해방감 같은게 느껴져서 감사해서 울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내 모든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끝도 없이 쉬지도 않고 안실일에도 나의 마른 손, 마른 기억, 마른 사고와 감정들을 치유하고 계셨던 거다.


> 삶

오늘 목장준비 잘 하겠습니다.

어떤 현상을 보고 드는 생각을 너무 확신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신 것에 감사기도


> 기도

주님, 제가 보고 자란 어린 시절의 안좋은 환경이 지금의 제게 영향을 이런식으로 미칠거라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주님, 그런데 전 제 내면을 다 알 수 없으니 외부로 시선을 돌려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는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를 검열하며 딴지를 걸고 있었습니다. 주님, 이런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주님께서 저를 처음 만나시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제 기억과 감정, 정서와 사고를 치유하고 계심을 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의 마른 부분을 치료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회복해 가실 영역들을 기대하며 소망을 품고 제가 받은 그 사랑으로 타자를 섬길 수 있길 기도하오니 성령님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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