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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긍정 Jan 05. 2022

우리집 척척 박사

긍정의 서재 영화 리뷰 <백 투 더 퓨쳐>

쓰당 향령 언니의 추천으로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봤다. 1985년에 개봉한 영화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완성도 높은 퀄리티에 놀랐고, 배우들의 패션이 레트로 스타일임에도 촌스럽게 여겨지지 않아 두 번 놀랐다. 이야기는 고등학생인 마티가 브라운 박사의 작업실에 들어서면서 시작하는데, 박사의 작업실은 이런저런 발명품으로 너저분하다. 캔을 자동으로 따서 강아지 밥그릇에 부어주는 기계가 있는가 하면 빵을 굽는 토스트기, 초대형 스피커 등 당시 현실에서는 찾기 어려운 특이한 아이템으로 가득하다.  


 영화를 보면서 남자 친구 엽이가 떠올랐다. 그의 의정부 집에 들어서면 현관문에서부터 희한한 물건이 눈에 띈다. 현관에 조그마한 카메라 같은 게 달려있는데, 모자를 벗고 카메라를 응시하면 문이 자동으로 스르륵 열린다. 안면인식 잠금장치다. 아이폰의 AI 비서 '시리'에게 '문 열어줘'하면 문을 자동으로 열 수도 있는데, 현관문 뒤쪽을 살펴보면 전선을 주렁주렁 달아놓았다. 건전지는 다 빠져서 비어 있고, 도어록은 분해되어 작동하는지 의심스러운 모습이다.

지난번에는 우리 집에도 이 기술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면서 며칠 내내 나의 성남 자취방에 오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현관 앞에서 연구하듯 들여다보고, 컴퓨터를 만졌다. 혼자서 '시리'에게 문을 열고 닫으라며 명령을 해댔다. 설치가 끝났는지 내게 "명령어를 뭐라고 할까?" 하며 신이 난 얼굴에 "딩동댕!" 하고 말하니 정말 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아직은 목소리를 구별할 정도의 기술은 아니고, 명령어를 실행시키면 작동하는 모양이다.


 그의 집안에는 방안과 거실마다 '오케이 구글'이 벽 한쪽면에 붙어있다. 그가 "오케이 구글! 불 꺼줘"하면 불을 꺼주고, "음악 틀어줘"하면 음악을 틀어주는 말 그대로 집안의 비서로서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 덕분에 같이 사는 어머니도 종종 "오케이 구글"부르시고, 구글이 틀어주는 음악에 맞춰 모닝커피를 내리신다. 가끔 그의 핸드폰이나 목소리가 잘못 인식되어 그가 그의 집 전등을 끄려고 했는데 우리 집 불이 꺼진다거나, 우리 집의 문이 자동으로 잠기거나 열리기도 하는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기술과 동떨어진 삶은 살아온 나와는 다르게, 그는 대체로 빠르게 회전하는 두뇌를 활용해 늘 재미난 궁리를 하는 모양이다. 최근에는 집에서도 이더리움을 채굴해서 돈을 벌 수 있다면서 신이 나 있었다. 집에서 계속해서 컴퓨터를 돌리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채굴을 한다면서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 늘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전기를 쓸 수 있는 곳이라면 노트북을 돌렸다. 오늘은 2달러 정도 벌 었다고, 한 달이면 60불을 벌 수 있다고 자랑했다. 

 얼마 전부터는 그는 쓰당에서 '소설'을 써보기 시작한 뒤로 소설 쓰는 재미에 푹 빠졌다. 메타버스를 소재로 2080년에 사는 인물 '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중이다. 1인 가구가 살 공간이 없어지자, 서울 외곽의 'M-서울'이라는 불리는 공간에 1인 가구를 이주시키면서 생겨나는 미래의 이야기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실제로 이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현실감각이 더해져서 그런지, 매일매일 2장씩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좋아하는 건 어쩌면 만족스럽지 않은 '현재'에서 한결 나은 상태로 '변화'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의 자취방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서 좋은지, 만난 지 1년 만에 이전에 방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바꿔놓았다. 처음에는 습기 때문에 얼룩지고 갈라지는 장판이 보기 싫다며 카펫으로 바꿔 깔았고, 그다음은 침대를 옮기는가 하면 부서져가는 하부장을 버리고, 나무를 주문해 튼튼하고 깨끗한 부엌을 만들어주었다. 그 덕분에 처음으로 인터넷을 통해 싱크대 개수대를 주문하는 생경한 쇼핑을 해보기도 했다. 이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부엌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부엌에 가서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이 집을 나가는 날에는 아주 아쉬울 것 같아"라고 말을 반복했다. 


 어쩌면 발전이란 건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는 엽이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 해내는 것일지도 몰랐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에는 어렸을 적 "저런 기계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던 물건들이 잔뜩 나온다. 신발 끈을 자동으로 조여주는 스니커즈나, 입으면 몸에 자동으로 맞춰지는 재킷, 스마트 안경 등 모두 세련된 모습이다. 그런데 그런 물건들도 브라운 박사 같은 인물들이 초기에는 전선을 주렁주렁 달고, 그의 차 드로리안처럼 여러 장치들을 덕지덕지 붙였던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기술의 발전은 그런 어설픈 모습에서 시작했으리라. 마치 남자친구 엽이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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