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여 가자. 요 앞에 바로 가는 버스오니라.”
“네.”
해주는 할머니와 보조를 맞추며 따라나선다. 10분 남짓 걸었을 때쯤 허름한 버스 정류장과 많은 이들의 시간이 쌓여 반질반질해진 벤치가 보인다. 벤치 중간에 앉은 할머니 옆에서 우물쭈물하던 해주는 벤치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맞춰 앉는다.
“여는 시골이라 버스가 자주 안 오니라. 그래도 사람 보모 꼭 멈추니까 버리고 갈 일은 없데이. 인자 시내 갈 일 있으모, 일로 오니라.”
“아…. 네.”
“병원에선, 별말 안트나?”
“네, 그냥 감기래요….”
어색한 공기가 흐르려던 차에, 두 사람 사이로 바퀴 멈추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무릎이 좋지 않은 할머니의 느린 걸음을 따라 천천히 버스에 오른다.
“기사님요, 두 명이예.”
“아니에요.”
“아이고! 가만있으래이.”
“할매, 손년가 비네예.”
“하모, 우리 손녀지. 안 예쁘나.”
“참~하네예.”
“고맙…. 습니다…. 하하….”
손녀라는 말이 싫지 않았다. 해주가 양 손바닥으로 노약자석을 가리키며 여기 앉으시라는 자세를 취하자, 할머니는 피식 웃었고, 해주 역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얼마 만에 피어오른 간지러움인지, 낯설지만, 아련한 행복마저 느꼈다. 할머니 뒷자리에 앉아 버스 노선을 살핀다. 장에 간다고 하셨으니, 시장이 들어가는 이름일 거고…. 찾았다. 12정거장이면 도착하니 긴장을 놓지 말고, 귀를 쫑긋 세워야 한다.
“할배, 할매들 다음이 장이니까, 내릴 준비 찬찬히 하이소.”
저 친절함은 어디에서 온 걸까. 지방이라서? 진항의 특성인가? 아니면 기사의 유별난 성격인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덕분에 바짝 솟아오른 승모의 긴장이 풀렸다. 이내 버스가 멈추고, 느릿느릿한 노객들의 움직임에 답답할법한데도 조금의 재촉 없이 한명 한명 눈 맞춰 인사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다. 해주의 일상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진심’ 같았다.
“손녀분! 또 봐요!”
해주도 깊이 숙인 인사로 진심을 보였다. 고개를 들어 돌아보니 할머니는 어느새 성큼 앞서 있다. 노인들의 직진 본능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제법 당황스럽다. 장날 인파 속에서 혹여 잃어버릴까 싶은 마음에 재빨리 뒤를 따랐다. 은행 앞에 도착한 할머니는 힐끔 뒤를 돌아보더니 여기서 기다리라는 손짓을 보낸다. 해주는 눈을 맞춰 끄덕이고는 은행 앞 계단에 털썩 앉았다. 한숨을 돌리려는데, 눈앞에 보이는 종이상자에 병아리 2천 원이라는 글씨와 ‘삐악삐악’ 어미를 찾는 노란 생명의 소리가 들린다. 해주는 보송보송한 모든 것을 사랑한다. 그것이 살아있다면 더욱. 홀리듯 상자 앞에 쪼그려 앉아 안을 들여다본다.
‘삐악삐악’
“어머, 어떡해…. 몇 살이에요?”
“뺑아리가 몇 살이 어딨노~ 하하. 귀얍구로.”
“그래도…. 아마 한 살 아닐까요….? 헤헤.”
“와, 사주까?” 어느새 주인 할머니가 곁에 와있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귀여워서요.”
“귀여우마 하나 키아라. 할미가 사줄게. 제일 예쁜 놈으로 한 마리 주이소.”
“100살까지 마 잘~ 키우시소. 하하.”
“고맙심더.”
“너무 귀여워요…. 이것 보세요.”
“우리 구름이도 친구 생깄다고 좋아할끼다. 저짝에 좀 같이 드가재이.”
“네….?”
할머니가 가리킨 곳은 젊은 여자들이 즐겨 입는 브랜드. 시장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저곳을…? 가게에 들어서자, 할머니 옷을 보러온 게 아니란 건 분명했다.
“여그 겨울 돕바 있능교?”
“하모예. 신상 많이 들어왔지예.”
“우리 손녀가 겨울옷이 없어가. 돕바 선물 좀 해줄라꼬.”
“아니에요. 할머니! 괜찮아요.”
“아이고~ 참~ 아가씨~ 할매가 선물해 준다는데 그렇게 바로 거절하면 쓰나~”
“그게 아니라….”
“함 입어봐라. 여가 금방 추워져가 그런 옷으론 하루도 몬 지낸다.”
“그래요. 이쪽에 예쁜 거 많으니까 입어나 봐요.”
“네….”
아무래도 할머니는 해주에게 이런저런 선물을 해주려고 장에 함께 오자고 한 모양이다. 사주겠다고 하면 따라나서지 않을 성격인 걸 쉽게 간파당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점점 쌀쌀해지는 날씨에 겨울옷이 필요했던 터라 못 이긴 척 걸쳐본다.
“딱 맞네. 뽀얘서 그런가? 얼굴이 확 산다!”
“그네. 참하다~. 이거랑 우아래 입을 거도 함 봐라.”
“할머니…. 괜찮아요.”
“내한테 원래 너만 한 아들이 있었거든. 근데, 내가 가를 놓칬다. 가 아픈 줄도 모리고, 그렇게 보내삤다. 내는 아무것도 몬했다. 그게 이래 내 천추의 한이 됐다. 널 보는데 내 아들이 보이대? 넌 가가 보내준 선물이다. 그래서 곱게, 귀하게 그래만 해주고 싶다. 이제 알겠나?”
해주는 간밤에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떠올리니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순한 여행객이 아닌, 진짜 자신의 손녀처럼, 자식처럼 대해주는 할머니를 알아보지 못하고,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황망히 떠나버릴 뻔했다. 또 다른 아픔을 남길뻔했다. 못난 자기 행동이 한없이 부끄러워 그저 품 안에 작은 병아리를 폭 껴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띠링-
가게를 나서자, 갑옷을 두른 듯 냉기 하나 없이 따스했다. 종종걸음으로 할머니 뒤를 쫓으며, 검은 비닐봉지들을 건네받는다. 포항초, 버섯, 홍고추, 해초, 두부 등 한쪽 어깨가 내려 앉을 때쯤 장보기가 마무리됐다. 밖에 나온 김에 짜장면 한 그릇하고 가자는 할머니 말에 해주는 기뻤다. 내내 받기만 했기에 이번만큼은 자신이 사고 싶었다. 간판의 색이 바래 얼룩덜룩해진 노포 중국집이 보였다. 짜장면 한 그릇과 짬뽕 한 그릇, 군만두까지. 은근히 풍겨오는 기름 냄새에 해주의 배에서 난 우렁찬 꼬르륵 소리가 홀을 메웠다.
“아이고메. 배고팠나 비네. 애썼다.”
“헤…. 냄새 맡으니까 더 배고파졌어요.”
“참, 이름이 뭐고.”
“아, 저 박 해주예요. 할머니.”
“해주 니, 여행 온 거 아니제?”
“네….?”
“딱 보믄 안다. 내사 마 민박집 사장 20년이면 얼굴만 봐도 야가 어떤 생각인고. 딱 보인다.”
“제가 어땠어요…?”
“해주 니는…. 아팠다. 맴이. 눈이 애기였다. 애기. 엄마 찾는 아 같았다.”
“….”
“진짜 엄마 찾는 아 같았다는 기 아니라. 정처 없이 떠도는 혼 같았다. 이 말이다. 기댈 곳 없고, 보니까 연락하는 사람도 없는 거 같고, 그날 방에 청소 좀 해주러 드갔다가 옷이랑 돈봉투랑 내 다 봤다. 그라믄 안된다. 아무리 그래도, 그라믄 안 되는 기라. 살아야제. 살아야 진짜 여행도 하고, 사랑도 받고, 이 할매랑도 오순도순 살고, 뺑아리도 잘 키우고, 위로 하고, 위로받고 그라제. 안 그나?”
할머니는 다 알고 있었다. 해주의 상황도, 그날 밤 일까지 모두. 하지만 보고도 못 본 척, 이렇게 너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노라고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빨래도, 병아리도, 새 옷도, 살아갈 이유를 하나씩 늘려준 거였다. 해주는 고개를 떨구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떨어지는 눈물을 막을 수 없어 그대로 쏟아냈다. 떨어지는 대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식사를 마칠 무렵, 테이블 위로 흰 봉투가 올라왔다.
“내 이거 안 받는다. 아니? 못 받는다. 이라믄 니 따박따박 계산해서 다 받아낼 끼다. 대신 이걸로 니 진짜 하고 싶은 거 해래이. 내 안 받는다. 알았나. 여기서 못 박는 기다.”
“아니에요. 할머니…. 그럼, 제가 어떻게 있어요….”
“내가 말했제. 넌 내 아들이 보내준 선물이라꼬. 그라믄 됐다. 그기믄 된기라. 손녀한테 돈 받는 할매 봤나. 내 자슥한테는 돈 안 받는다. 아랐나?”
“그럼…. 이제 어떻게….”
“뭐가 어떻게고. 내캉 니캉 그냥 사는 기제. 넌 이제 내 손녀다. 내는 니 할매고. 우린 가족인 기라. 왜. 싫나?”
“아뇨…. 그게 아니라…. 좋아서요…. 정말…. 정말 좋아요….”
또 한 번 아이처럼 곪아온 마음을 비워낸다. 이전과는 다르게. 생전 흘려본 적 없는 기쁨의 눈물. 감히 꿈 꿔본 적도 없는 가족이라는 따뜻한 이름. 죽지 못해 꾸역꾸역 살아냈던 지난 시간이 창문 너머 풍경처럼 해주의 뒤편으로 사라져 간다. 생을 포기하려던 순간, 기적처럼 다가온 인연에 처음 느끼는 환희와 기쁨이 넘실거린다. 이 바다가 아니었다면, 그날 민석이 잡아준 생명의 끈을 놓쳤더라면, 품을 내어준 주인 할머니가 없었다면, 영원히 보지 못했을 담장 너머의 평야.
해주는 손을 뻗어 할머니의 따스한 손을 매만지며, 환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