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직군의 변화와 진화, 나는 어디에 해당될까?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다층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UX, UI, UX/UI, 그리고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직함은 모두 디자인과 관련이 있지만, 그 실제 역할과 책임은 다릅니다. 이 글에서는 제 경험 속 각 직무들 간의 차이와 각각의 의미에 대해 담았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시장의 정의와 다를 수 있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디자인’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특정 맥락과 결합해 의미를 발휘하는 형태로 변화합니다. 건축 디자인, 보석 디자인, 가구 디자인처럼 무언가와 결합할 때 비로소 디자인은 기능적이고 의미 있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건축 디자인에서는 물리적 형태와 기능을 조화롭게 결합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건축가는 사용자가 공간을 어떻게 경험하고 상호작용할지를 예측하고 설계하게 됩니다.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Less is more" 디자인 철학은 이러한 접근의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그는 건축에서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간결함과 기능성을 중시함으로써 공간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반면,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브랜드 드비어스(De Beers)의 디자인 철학은 다이아몬드의 본질적인 빛과 우아함을 최대한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다이아몬드가 지닌 내재된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불필요한 장식을 최소화합니다. 이를 통해 다이아몬드의 광채와 정교함이 그대로 드러나며, 감성적인 연결을 경험하도록 유도합니다. 드비어스의 디자인 목표는 미적 감각과 감성적 경험을 결합해, 다이아몬드의 진정한 매력을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디자인은 단순히 미적 요소에 국한되지 않고, 어떠한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의미와 역할이 달라집니다. 디자인 경영은 기업의 전략적 성장을 도모하고, 디자인 싱킹은 혁신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하며, 디자인 수도는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역할을 합니다. 디자인은 다양한 분야와 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그 맥락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도구로서 기능합니다.
그런데 유독 UI 디자이너, UX 디자이너, 그리고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구분이 어려운 이유는 개념들이 각각 독립적인 역할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위 개념들은 모두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고, 제품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경계가 겹치거나 흐릿해지기도 합니다. 결국, 각 직함은 서로 다른 초점과 전문성을 지니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경험한 바를 토대로 각 직무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주니어 시절을 UI 디자이너로 보냈습니다. 당시 Adobe XD(현재의 Figma)와 같은 디자인 툴을 사용하여 시각적 요소를 완성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주된 역할은 기획자가 제시한 설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기획자가 다음 살펴볼 UX 영역까지 담당했습니다. 제 작업은 디자인이 실제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시각적 완성도를 높여 핸드오프 하는 것이었습니다. 화면의 버튼, 아이콘, 이미지 등의 인터페이스 요소를 통해 심미적이고 기능적인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것이 무척 중요했죠.
UX 디자이너의 주된 업무는 사용자 인터뷰(IDI)와 리서치 작업을 통해 사용자 목소리를 서비스에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각적인 작업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 사용자로부터 얻은 인사이트를 문서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팀 내 공유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대기업 인하우스 UX 디자이너가 유독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대기업은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 라인을 운영하기 때문에, 일관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UX 디자이너의 역할과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용자가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를 UX 방법론을 통해 파악하고 가장 적절한 솔루션을 제시한다.
제 기억 속 UX 디자이너는 훗날 스타트업에서 만난 UX 리서처 분들과 유사한 이미지입니다.
UX/UI 디자이너는 말 그대로 앞 선 UX와 UI 역할을 모두 수행하는 제너럴리스트입니다. 사용자의 전반적인 경험을 직접 설계하면서도 보기 좋게 시각적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합니다. UX/UI 디자이너로 근무할 때는 기획자가 따로 없었습니다. 초기 기획부터 디자인 핸드오프, 데이터 협업까지 업무 범위가 눈에 띄게 넓어진 시점이기도 합니다.
최근 UX/UI 디자이너라는 직함은 채용 과정에서 다소 관용적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직함 자체에서 제너럴리스트 성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회사 내부적으로 역할과 책임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회사 도메인이나 성장 단계에 따라 그 역할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 UX/UI 디자이너라면 회사에서 진행할 업무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처음 받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문제해결을 위해 디자인 솔루션이 왜 나왔고, 비즈니스 지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넷 중 매출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된 포지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위해 디자인 소양은 물론 도메인 지식과 데이터 능력도 요구하기 때문에, 스스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개념은 전통적인 산업 디자인(Industrial Design) 분야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 다루는 디지털 속성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는(Digital Product) 페이스북, 스포티파이 같은 실리콘 밸리의 애자일 팀에서 상당 부분 정의가 되었습니다.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린 사이클에 속한다: 최소 기능 제품(MVP)을 빠르게 출시하고 시장 테스트를 바탕으로 피드백을 받고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선합니다.
목적 중심 팀에 주로 속한다: 프로덕트 오너, 엔지니어, 데이터 과학자, 콘텐츠 전략가 등과 한 팀에 소속돼 지속적으로 협업합니다. 목적에 따라 팀 구성이 달라지며 스쿼드, 사일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e.g. 결제 스쿼드, 검색 기능 스쿼드...)
제품의 모든 단계에 관여한다: 초기 아이디어 구상부터 디자인, 개발, 테스트, 출시까지 제품의 모든 단계에 관여합니다.
제가 경험한 프로덕트 디자이너 역할 역시 제품의 모든 단계에 참여하며 제품 관리자, 엔지니어, 데이터 분석가와 협력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비즈니스와 사용자 경험을 모두 고려하고, 출시 후 반복-개선할 수 있는 '측정 가능한 기능'을 디자인한다.
제가 경험한 UX, UI, UX/UI, 그리고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각기 다른 역할과 책임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서두에 밝혔지만 제 개인적인 경험이라 시장에서의 정의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직함이 시장에서 어떤 맥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관심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디자이너를 부르는 직함은 빠르게 변화해 나갈 것입니다. 벌써 인공지능과 결합한 AX(AI Transformation) 같은 개념들이 등장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런 변화를 디자이너의 진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디자인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특정 맥락과 결합해 의미가 발휘하는 형태로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디자이너로서 중요한 것은 직함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적응하며, 자신의 역할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는 언제나 다양한 맥락에서 변화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변치 않는 디자인 본질에 기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 변치 않는 디자인의 본질은 어떤 것인가요? 저는 이 질문에 대한 자기만의 해답을 고민하는 것으로 진짜 디자이너로의 성장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UX, UI, UX/UI,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차이?'(끝)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