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넷플릭스를 통해 'Abstract' 이안 스폴터 편을 감상했다. 현재 그는 인스타그램 사용자 경험을 총괄하고 있다. 영상은 인터페이스에 관한 다양한 견해를 다루지만, 디자이너가 가질 수 있는 윤리 의식에도 관심을 가진다. 인터페이스 디자이너에게 윤리라니, 생소한 접근일 수 있다. 이 글은 Abstract로 시작한 글이지만, 게이미케이션(Gamification), 긱 이코노미(Gig Economy), 허상 지표 등의 사회적 이슈들과 디자이너의 윤리 의식을 연결 지어 쓰고자 했다.
아래는 Abstract 한 장면이다. 인스타그램은 프로필 화면 상단 UI를 대대적으로 리뉴얼했다. 영상에서는 인터페이스가 변화하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언 스폴터팀이 인터페이스 리뉴얼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은 시각적 아름다움이 아닌 '이 화면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에 가까웠다. 디자이너들은 좌측 디자인에 대해 '팔로워 수가 강조된 디자인'이라고 정의 내렸고, 사람들이 나의 인기와 숫자를 기계적으로 연결 짓는다는 점을 문제시했다.(팔로우 버튼의 시각적 위계도 높게 설정되어있다.) '허상 지표'라 불리는 이 영역은 실체 하지 않는 어떤 것에 몰입하게 만드는 자성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많은 팔로워 수를 보유한 사람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압도되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지 않은가.
우측 인터페이스 속 위계질서는(hierarchy), 조금 더 사람에 집중하게끔 디자인되어있다. 유저의 이름이 가장 크게 쓰여있고, 직업, 사는 곳 다음에야 팔로워와 팔로잉 수가 위치한다. 이전 디자인에서 위계가 가장 높았던 요소와 가장 낮은 요소의 역전 현상이 일어난 셈이다. 또한, 정보성 텍스트를 좌측에 정렬함으로써, 원형으로 디자인된 사진 영역 주위로 많은 여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로 유저를 대변할 수 있는 사진이 돋보이게 된 셈이다. 디자이너의 자연스러운 개입(Nudge)을 통해 유저들이 팔로우 버튼을 이전보다 덜 누르게끔 선택 설계된 것이다.
사실 인스타그램 피드는 삶의 진실이 아니라, 뽐내고 싶은 삶의 작은 일부를 확대한 것에 가깝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화려한 타인의 숲을 거닐다 보면 자주 그 사실을 까먹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만들어진 자아를 베끼며 확산해 나가는 이 세계는 한편으로 환상적이긴 하다. 이러한 흐름에서 인스타그램(페이스북)은 수익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팔로워 수'의 지위를 낮추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트위터나 유튜브 역시 허상 지표의 시각적 중요도를 내리는 방향으로 인터페이스가 리디자인 되었다.
https://www.netflix.com/watch/80237097?trackId=200257859
영상에서는 무한 스크롤 UI를 디자인한 '에이자 래스킨'이라는 디자이너를 짧게 조명한다. 생각해 보면 바닥이 없는 스크롤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한 스크롤을 접한 것은 아마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에이자 래스킨은 '스크롤하고 있다는 건 이미 화면을 더 보고 싶다는 증거인데, 굳이 바닥에 버튼을 배치해 눌러서 더 보게끔 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한때는 바닥에 버튼이 있는 UI가 일반적이었다. 어쨌든 에이자 래스킨의 가설은 들어맞았고, 그의 무한 스크롤은 현대 UI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가 만든 UI를 보며 일종의 윤리적 경각심을 내비친다. 정지신호가 사라진 이 UI가 이미 인류의 수억 시간을 앗아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호모 루덴스라는 개념이 몇 해전 유행했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놀이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루 종일 놀잇감을 찾아다니는 어린 아이나, 설날에 모인 어른들이 펼치는 화투판을 예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본능 때문에 인간은 게임에 빠지게 되고, 더 나아가 게임적 요소가 가미된 UI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한때 구글에서 ‘디자인 윤리학자’로 일했던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는 대부분의 소셜 미디어 화면에서 사용하는 ‘당겨서 새로 고침’ 방식이 실은 슬롯머신의 기발한 구조를 닮았음을 역설했다. 즉, 이용자는 자신이 언제 ― 열몇 개의 ‘좋아요’나 리트윗 같은 것들로 ― 만족감을 느끼게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이런 예측 불가능성이 계속 새로 고침을 누르게 하는 중독을 만든다는 것이다. 행동 심리학자들은 도박이 불확실성, 기대감, 피드백의 예측할 수 없는 요소를 통해 도박꾼을 계속 한 판만 더 하겠다고 하는 상태로 길들인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북 저널리즘 '긱 이코노미의 게이미피케이션' 중 발췌>
위의 글을 살펴보면, 에이자 래스킨의 무한 스크롤뿐 아니라 소셜 미디어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인터페이스 요소는 리텐션(Retention) 즉, 유저가 페이지에 머무는 시간을 최대한 지속하게끔 설계되었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동 심리학자들이 말한 세 가지 요소. 기대감/불확실성/피드백 등은 인터페이스를 다루는 디자이너에게 유용한 지침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UI 대부분은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기보다, 인류를 오랫동안 유혹에 빠트렸던 게임 룰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포켓몬 고는 걷기를 유도하는 만보기와 닮아있고, 듀오링고의 언어 학습은 롤플레잉 게임와 유사하다. 적립형 만보기 어플인 '캐시 워크'는 걸은 수를 적립하기 위해 보물상자를 걸은 수만큼 클릭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유저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광고에 노출되지만 그것마저 게임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예로 틴더와 게이미피케이션을 연결 지어 생각해보고자 한다.
1일 스와이프 횟수가 10억 건을 기록했다는 틴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 수치는 단순히 인터페이스를 아름답게 디자인해서 나올 수 있는 수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틴더 인터페이스는 포커 게임과 닮아있다. 카드를 받았을 때 타인의 시선을 피해 엄지 손가락 끝으로 내 패를 조용히 움직이는 것이나, 안 좋은 패를 받았을 때 바닥에 버리는 행위 등이 연상된다.
틴더는 앞서 언급한 세 요소, 불확실성/기대감/피드백 요소를 아주 훌륭하게 수행한다. 사진을 보고 이성이 마음에 들면 우측, 마음에 안 들면 좌측으로 넘겨 버린다. 어떤 사람이 등장할까라는 불확실성과 기대감이 동시에 충족되는 셈이다. 틴더 인터페이스는 기본적으로 무한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Y축 무한 스크롤링이 Z 축 깊이감으로 전환된 셈이다.
무한한 인터페이스는 사람의 욕망을 파고든다. 틴더는 이성 모두가 우측(Like)으로 상대를 넘기지 않으면 대화조차 할 수 없는 '게임적 요소를'가지고 있다. 상대로부터 좋은 피드백을 얻기 위해 유저는, 자신을 가장 솔직히 나타낼 수 있는 정보 대신, 틴더에서 먹힐 법한 사진으로 메인을 장식해야 한다. 인스타그램의 높은 팔로워 수로 표상되는 '허상 지표'를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에 자극도가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첫 사진으로 섹시한 신체나, 비싼 차를 과시하는 사진들이 인기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틴더의 유료 아이템 중 하나인 'Super Like'를 누르면 화면 위로 이성 사진이 날아가 버린다. 인기 있는 사람은 당연히 Super Like로 자신을 선택한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때 유료 아이템으로 호감을 표시한 그룹은, 단순히 우측으로 스와이프한 그룹보다 높은 시각적 위계를 띄며 대기 명단에 들어가게 된다. 호감을 표현한 사람에게 채택될 확률이 높아지는 셈이다. 이러한 틴더의 게이미피케이션적 요소는 인스타그램보다 더 높은 자극성을 띤다. 인류가 하룻밤 10억 번 스와이프 하는 것이 놀랍지 않은 이유다.
인도 사회는 남녀의 야외 데이트가 거의 금기시 되어있다. 실제로 인도 여행을 3개월간 다녀왔는데 야외에서 데이트하는 남녀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여성의 낮은 문화적 지위와 보수적인 가부장 제도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인도는 핸드폰을 소지할 수 있고 여성 지위가 높은 '브라만'계급을 중심으로 틴더 문화가 전파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올라가는 데이팅 앱 특성상, 이성을 고르는 것이 역전된 셈이다. 그로 인해 인도의 야외 데이트 비율은 예전과 비교도 안될 만큼 상승했다고 한다. 인도의 오래되고 보수적인 문화적 관습들은 폭발적 경제 성장이 아닌, 핑크빛 검지로부터 붕괴되고 있는 셈이다.
"이제 디자이너들은 내 제품을 사용하는 한 사용자의 제약만 생각해선 안돼요. 앞으로 디자이너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해요. 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다뤄야 하죠."
사실,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며 인터페이스와 윤리를 연결 지어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다. 적어도 내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카카오톡 채팅창과 네이버 메인 화면의 변화가 삶에 미친 영향을 나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물며 그것은 한국에 국한된 문제지만, 인스타그램 같은 프로덕트의 레이아웃이 바뀌는 것은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예컨대 자아가 견고해지기 전 청소년의 경우, 인스타그램 상단 레이아웃의 변화만으로 가치관이 흔들릴 수 있다.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아날로그를 경험하지 않고 곧바로 디지털을 겪은 세대의 자아상은 인터페이스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다듬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단 레이아웃의 변화만으로 팔로워 숫자로부터 사람의 이름으로 초점을 바꿀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스타트업에서 인터페이스를 다루는 대부분의 초점은 고객을 모으는 것과, 어떻게 그 고객을 유지할 것인가로 대부분 해석할 수 있다. 나 역시 어떻게 하면 고객 입장에서 더 쉽고 오래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게 할 수 있을까를 매일 고민한다. 자극성을 높이기 위해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를 사용 하기도 한다. 미시적 관점에서 이는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며 지금 윤리를 말하기에 한국은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자 래스킨의 말이 잔상으로 오래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끔 살다 보면 실현되지 않더라도 가슴에 담아 두고 있는 것만으로 가치가 생기는 말이 있는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저 말은 그런 종류에 가깝지 않을까.
'게이미피케이션과 인터페이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