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0. 프롤로그
장강명 작가의 강의를 들었었다. 두 달간의 강의가 끝나던 날, 그의 책 중 하나인 <한국이 싫어서>를 들고 쭈뼛쭈뼛 사인을 받으러 갔다. 딱히 이 책이 제일 좋아서는 아니었다. 그의 등단작인 <표백>은 최애는 아니었고, 그의 작품 중 제일 좋았던 건 <그믐,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지만 읽은지 얼마 안됐었다. 그때쯤 나온 그의 신간은 <당선, 합격, 계급>이라는 그다지 소장하고 싶지는 않은 책이었다. 그래서 그의 대표작이면서도, 아직 안읽은 책 <한국이 싫어서>를 사들고 간 것이었다.
"이름이 뭐예요?" 그는 물었다. 수업 마지막 날인데 학생의 이름이 뭐냐고 물을만큼 수업은 친밀감 형성은 어렵고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강의를 하는 형태였다. (학생도 수십명에 달했다) 슥슥슥. 사인이 끝나고 받아든 책에는 한 줄이 써 있었다. "행복하세요~" 아무리 친밀감이 없어도 너무 단순한 거 아닌가.
1. 우리를 위한 나라는 없다
한국이 싫어서. 직관적이고 명료하다. '나라가 싫다고 떠나면 돼?' 라고 묻는건 구시대적이다. 이미 국가 간의 경계는 희미하다. 경제, 사회, 문화 어떤 분야에서건 말이다. 다만 정치는 그 속성상 아직 국가 안에서 행해지지만, 더 이상 하나의 국가가 풀 수 없는 세계적 문제들이 많아지면서 이를 풀기 위한 세계기구나 단체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국가 간 경계가 희미해지며 최근에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새로운 형태의 세대가 등장했다.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 라고 불리우는 도시를 여행해보면, 그곳에 살고 있는 로컬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유입해온 사람들을 너무나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동안 그 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주로 성지로 일컬어지는 도시들은 디지털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있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곳들이다.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최소 조건을 갖춘 곳들이다. 생계를 유지할 일을 하기 위한 기반. 인터넷과 언어.
우리가 한국을 (아직도) 뜨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언어적 제약 때문이다. 만약 한국도 영어를 쓰는 국가였다면, 이미 한국인의 대다수는 그런 국제적인 도시로 떠났을 거다. 일을 더 잘하면 잘했지, 능력이 딸릴게 뭐가 있나. 재능, 학습능력, 일처리 능력, 사람들과 사귀는 능력 등등. 다만 말이 안되니까..... 나갈 수가 없는거다. 세계적으로 국가의 경계는 물리적, 정서적으로 허물어졌고 한국은 아직 언어의 한계 때문에 물리적으로 떠날 수가 없어서 그 경계가 굳건하지만, 정서적으로는 허물어진지 오래다.
2. 나라를 떠난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는 그런 언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떠나기로 한다. 한국이 싫어서. 언어의 한계를 감수하고서까지. 무엇이 그렇게 싫었냐고 한다면, 콕찝어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모두 어렴풋이 느끼지 않는가. "아 진짜 다른 나라 가서 살고싶다" 고 생각해본적이 한번쯤 있을 것이니 말이다. 계나는 인서울 대학교를 나와서 세번째 정도로 좋은 금융권에서 일하는 30대 여성이다. 사실 평범하고 평균적인 삶이다. 그녀에게는 기자 준비를 하는 (그래서 기자가 된) 남자친구 지명이 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소소하게 행복한 삶을 꾸리고 싶은데, 그 소소하게 행복한게 참 어렵기만하다.
내가 아는 건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쪽이야. 일단 난 매일매일 웃으면서 살고 싶어. 남편이랑 나랑 둘이 합쳐서 한국 돈으로 1년에 3000만 원만 벌어도 돼. 집도 안 커도 되고, 명품 백이니 뭐니 그런 건 하나도 필요 없어. 차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돼. 대신에 술이랑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에는 돈 걱정 안하고 먹고 싶어. 어차피 비싼 건 먹을 줄도 몰라. 치킨이나 떡볶이나 족발이나 그런 것들 얘기야. 그리고 한달에 한번 씩 남편이랑 데이트는 해야 돼. 연극을 본다거나, 자전거를 탄다거나, 바다를 본다거나 하는 거. 그러면서 병원비랑 노후 걱정 안하고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내가 그런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지명이는 자기가 주말에 쉴지 안 쉴지도 모르는 생활을 하고 있었어. 데이트 계획 같은 건 세울 수도 없었어. 그러다 보니 얘가 주말이면 눈에 띄게 피곤해 보이는 거야. 그러면서 내 앞에선 또 과장되게 씩씩한 척을 해. 오히려 주말에는 내가 그냥 집에 있자고, 잠이나 자자고 했고 개가 밖에 나가자고 고집했지.
우리는 뭐랄까, 전래 동화의 의좋은 형제 같은 처지에 빠져있었지. 지명이는 나를 아껴. 나도 걔를 위하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우리 사이에 개선되는 건 아무것도 없고, 밤에 서로 상대 몰래 볏짚을 나르느라 몸만 피곤한 상황이었지. 언젠가는 우리가 딜빛 아래 볏짚을 든 채 마주치게 돼 있었어.
이 곳에선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 계나는 그래서 한국을 떠나 호주로 간다.
3. 탈출 후 기다리는 것은
탈출만 하면 행복할줄 알았겠지만 그 역시 쉬운가. 오히려 더 큰 우여곡절을 겪는다. 평론가 허희는 작품해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결단해야 한다고 했다. 탈출은 어디인가로 도피하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상 한국 사육장의 외부에는 외국 사육장이 있을 따름이다. 달아나도 가축으로밖에 생존할 수 없다.
오히려 그나마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이었던 한국이 나을 지경인 정도로. 바닥인줄 알았던 곳은 사실 지상이었고 더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로 가득찬다. 싫어서 탈출한 것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계나는 생각해본다. 자신이 왜 한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렇게 떠나서 원하던 삶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아마 이 책의 모든 독자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어떤 힌트를 얻는다.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어떤 사람은 그런 행복 자산의 이자가 되게 높아. 지명이가 그런 애야. ‘내가 난관을 뚫고 기자가 되었다.’는 기억에서 매일 행복감이 조금씩 흘러나와. 그래서 늦게까지 일하고 몸이 녹초가 되어도 남들보다 잘 버틸 수 있는거야.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그게 엘리야. 개는 정말 순간순간을 살았지.
나한테는 자산성 행복도 중요하고, 현금흐름성 행복도 중요해.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나한테 필요한만큼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하기가 어려웠어. 나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지. 나는 이 나라 사람들 평균 수준의 행복 현금으로는 살기 어렵다. 매일 한 끼만 먹고 살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는 걸.
결국 탈출 그 자체가 정답이 아닌 것이다. 무엇으로 내가 행복한가에 대한 고민과 거기에 대한 방향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계나가 선택한 길은 그나마 그녀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었다. 만약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에만 머물러 한국에서 지명과 함께하는 삶을 택했다면, 그 개고생(!)은 안했을지몰라도 영영 한끼만 먹고 살아야했을 것이다.
계나의 친구들 중에는 한끼만 먹고 사는 친구들이 있다. 컴퓨터를 못하는데 IT기업에 취직한 친구와 결혼 후 시댁살이가 힘든 친구. 그 둘은 계나가 호주로 떠나기를 결심했을 때, 호주로 떠났다가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모두 등장한다. 그리고 그녀들은 언제나 한결같이 회사와 시어머니 욕을 한다. 읽으며 사실 뜨끔했다. 나의 3년 전 불만을 떠올려보면, 결국 지금의 불만과 같다. 3년의 시간이 흐를 동안 나는 그냥 그 문제에 대해 불평 불만만 해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계나처럼 휙 떠나버릴 수 없다. 하지만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영영 한끼만 먹고 사는 건, 또 괜찮은가.
미연이나 은혜한테 이런 걸 알려주면 좋을 텐데. 걔들은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고 있어. 시어머니나 자기 회사를 아무리 미워하고 욕해 봤자 자산성 행복도, 현금흐름성 행복도 높아지지 않아.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 놓지. 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집 사느라 빚 잔뜩 지고 현금이 없어서 절절 매는 거랑 똑같지 뭐.
4. 행복하세요~
그래서 이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야한다. 탈출을 꿈꾸기만 하는 당신, 그러니까 나에게 말이다. 장강명 작가가 무심하게 쓴 행복하라는 말이 이렇게 무겁게 다가오다니. 왜 하필 나는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을 들고 갔나. (그는 다른 책을 들고 온 모든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행복하라고 썼다.) 책을 산 게 5월, 읽은게 2주전, 그리고 이제서야 리뷰 글을 쓰며 다시 맞딱들인다. 내 삶의 방향에 대해서. 이미 시간은 자정을 향해가서 오늘도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에 취해 고민을 내일로 미루고 잠이 들 것 같기는 하지만. 행복하라는 저 말을 조금은 무겁게 마음에 새기며.
행복하세요~ 모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