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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nger Jun 22. 2024

이방인이 되어보시렵니까?

Prologue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를 타고 다른 언어의 표지판이 나를 반기는 곳으로 향했다. 인천공항에서 존 F. 케네디 공항까지, 약 14시간의 비행 끝에 나를 아는 사람도 내가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나라로. 결단코 나에게, 내가 태어난 이래로 자행된 가장 파격적인 결정 중 하나였다.




이방인이 되러 가는 길. 

한국에서의 나는 죽었던가,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가. 잘 모르겠다.








도피에 대한 변명


 캠퍼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해가 다가올수록 '나는 어른이다. 인가..?' 같은 불안감은 더 이상 외면하기 힘들어졌다. 3학년을 마치고 더 이상 무언가를 만들어낼 것이 내 안에 남아있지 않았다고 느꼈기에 결정했던 휴학기간 동안에도 마찬가지였고, 그 1년은 비 휴학생일 때보다도 더 바쁘게 일해야 했던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쓰였다. 휴학을 마치고 돌아온 캠퍼스는 더 이상 학교라기보다는 곧 나를 떠나보낼 무언가처럼 느껴졌고, 그 이후에 어디로 가야 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성실하게 수업을 듣고, 좋은 학점을 내고, 어학시험을 보고, 대외활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규칙적이고 성실한 생활로는 메울 수 없는 졸업 이후에 대한 불안감이 코앞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떠나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르고 닳도록 읽었던 어느 여행 에세이집들처럼, 힘든 일을 겪고는 어딘가로 떠나는 소설책의 주인공들처럼, 정말로 거짓말처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솔직해지자면 처음으로 떠올린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줄곧 외국생활을 동경하던 아이였고, 청소년이었다. 성실해 마지않는, 어쩌면 재미없어 보이지만 책에 파묻혀 사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놀랍게도 모험적인, 말하자면 '모험적인 너드'라고 조금 미화시켜 본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낯선 이방인이 되는 것. 여행객이 바라보는 환상의 세계는 아니지만 사소한 부분에서 문득 느끼는 새로움과, 모험심을 요구하는 부분 부분들. 그것은 어린 내가, 그리고 내 안에 아마도 남아있을 내가 꿈꿔오던 모든 것들이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지만 늘 그리워하던 어떤 것.


 그러므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는 순간부터 나는 온갖 교환학생 제도, 유학생 프로그램, 해외 연수에 관한 정보를 대학 홈페이지, 장학재단, 스폰서 등 온갖 곳에서 휩쓸고 다녔고, 나름의 계획도 있었다. 유명한 밈처럼, 계획은 언제나 그럴듯하다. 뭔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한 단어로 형용하기 힘든 캠퍼스에서의 첫 학기를 보낼 때에, 코로나가 찾아왔다. 두 번째 학기즈음에는 상당히 불안한 시기였고, 세 번째 학기에는 전면 비대면수업으로 전환되었다. 어떤 측면으로 보아도  1학년을 마치고 떠나겠다는, J형 인간의 야심이 담긴 계획답게 여러 상황에 대비한 PlanA to Z로 세워져 있었던 내 계획표는 실행될 수 없었다. 더 촘촘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지만, 모든 것이 하루이틀새에 변경되고 수정되고 또 수정되는 그런 때였다. 계획형인 누군가는 공감할지 모르겠지만 플래너 위에 수많은 계획들이 지워지고 생겨나는 일들이 일상이었다.


 이미 내 손을 떠난 문제이니 틀어진 계획을 만회하기 위해 나는 정말로 열심히 살았다. 교내활동, 대외활동, 아르바이트까지. 다행히도 곱절은 바빠진 하루하루는 해외생활에 대한 동경을 착실히 구석으로 밀어냈다. 대개는 그렇듯, 남은 4학기의 대학생활을 마무리하고 곧바로 취준생이 되는 생활이 앞에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3학년이 되었고, 한 해 동안 휴학생이 되었다가, '아직도 여기 있어?' 하는 시선을 받는 학번이 되어 강의실로 돌아갔고 4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꼭 여덟 번째 학기를 마친 후에, 열두 시를 알리는 종소리로부터 도망치던 신데렐라처럼 대학생 신분 만료일로부터 도망친 이방인이 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를 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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