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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최재훈 Feb 21. 2024

낡고 해진 사랑, 그럼에도 삶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리뷰

<우리도 사랑일까> 스틸 컷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만하면 됐다고 믿는다. 적당히 웃고,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사랑받고, 적당한 사람들과 그만하면, 이만하면 된 거라고 살아간다. 자매 같은 시누이와 오빠 같은 남편, 웃음을 나누는 동네 친구와 괜찮다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그리워진다. 내가 처음 사랑했던 날씨, 그 날의 감정, 그리고 그 날의 냄새, 내 살갗에 닿았던 바람의 향기, 그리고 그 설레었던 나 자신을 다시 사랑하고 싶어진다.


낡은 사랑의 거리

사라 폴리 감독의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는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 속에 있지만, 각자 다른 기억과 감정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때는 서로가 세상의 모든 것 같았던 뜨거운 사랑이 지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났을 때, 자신의 감정을 저울질하느라 자신의 진심이 뭔지 들여다 볼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쓸쓸한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혼 5년차 프리랜서 작가 마고(미셀 윌리엄스)는 요리책을 쓰는 다정한 남편 루(세스 로건)와 행복(해 보이는)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일로 떠난 여행길에서 만난 대니얼(루크 커비)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 남자 앞집에 사는 이웃 주민이다. 만날 기회와 시간은 많아졌고, 감정을 숨길 시간과 기회는 점점 줄어든 셈이다. 사라 폴리 감독은 섬세한 시선으로 마고의 감정을 뒤흔드는 감정의 격랑을 바라보고 쓰다듬는다.


흔히 앞뒤 가리지 않는 격정적 사랑을 기대하지만, 마고와 대니얼의 사랑은 더디게 진행된다. 마고는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루에게 자신을 잡아달라는 신호를 보내지만 루는 변하지 않는다. 루는 장난스럽게 자신의 사랑을 전하고, 마고는 그가 조금 더 진지하길 바란다. 대니얼에게 육체적으로 끌리지만, 마고는 루를 놓치고 싶지 않아 주춤거린다. 그리고 다그치는 법 없이 그녀를 기다리던 대니얼이 지쳐 떠난 후에야, 그제야 마고는 루를 놓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죄의식과 후회 사이의 줄다리기를 하던 마고가 대니얼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면, 영화는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한다. 레너드 코헨의 ‘take this waltz’가 흐르는 동안 왈츠를 추는 것처럼 마고와 대니얼을 빙글빙글 돌아가는 카메라는 뜨거운 욕정의 순간과 사랑이 점점 낡아가는 순간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보통의 영화라면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는 시점에서 또 다른 해피엔딩을 위장하며 끝을 맺겠지만, ‘우리도 사랑일까’는 뜨거웠지만 다시 낡아가기 시작하는 사랑을  묵도한다.  


삶, 혼자 추는 왈츠

나를 치유하는 방법이 상대방의 따뜻한 심장이 아니라, 계속 되짚어가야 하는 나의 기억과 감정이란 사실은 공허하다. 각자 다른 기억과 바람은 빈틈이 되어, 삶의 공허함을 키워간다. 그리고 반짝인다고 생각하는 짧은 사랑의 기억은 뚝 멈춰서는 순간 현실을 각성하게 하는 놀이기구처럼 삶에 균열을 만든다. 같은 시간을 지나면 함께 있는 거라 생각하지만, 명쾌한 답이 없는 각자의 기억과 태도는 두 사람을 다시 갈라놓는다.


영화 속에서 마고가 저지른 것은 명백한 불륜이지만, 사라 폴리 감독은 그녀를 꾸짖지 않는다. 관객들도 갈팡질팡하는 그녀의 마음에 굳이 편을 들진 않더라도, 그 마음의 모서리 정도는 동의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미셀 윌리엄스의 내밀하고 섬세한 연기 덕이다. 세스 그린은 유머러스하지만 섬세하지 못한 루가 비난받거나, 동정 받지 않도록 단단하게 중심을 끌고 간다. 그래서 관객들은 버려진 루가 일상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으로 상처를 극복하는 시간을, 새로운 삶이 낡아가는 것을 묵묵히 견디는 마고의 시간을 함께 응시한다. 


프롤로그에서 마고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데, 남자는 실루엣으로 등장한다.  흐릿해서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이 장면은 영화를 맺는 에필로그가 되어 영화를 동그랗게 말아 하나로 뭉친다. 영화의 끝, 마고는 남자의 뒤로 다가가 그를 껴안는다. 그 남자가 대니얼인지, 또 다른 남자인지, 어쩌면 과거의 루였는지 알 수가 없다. 마고는 남편인 루에게 늘 그랬던 것처럼 남자를 뒤에서 끌어안는다. 


마고는 자신이 껴안았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의 표정이 무서웠던 걸까? 그녀는 늘 뒤에서 남자를 안는다. 서로를 바라보지도, 같은 방향을 보지도 않는 백 허그는 그처럼 서로의 표정을 숨긴, 고독한 사랑 같다. 낡아가는 사랑을, 허물어지는 관계를, 달라진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이런 마고의 사랑법은 어쩌면 혼자 추는 왈츠 같이 쓸쓸하다. 그리고 마고의 마음처럼 우리도 빙글빙글 흔들린다.  


명대사 

인생엔 당연히 빈틈이 있기 마련이야.

그걸 미친 놈처럼 일일이 다 메울 순 없어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 (2012)

•감독 : 사라 폴리

•출연 : 미셸 윌리엄스(마고), 세스 로건(루 루빈), 루크 거비(대니얼)

•국내개봉일 : 2012.09.27.

•관객수 : 74,000명

•볼 수 있는 곳 :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왓챠, U+모바일, 네이버 시리즈온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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