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 리뷰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 본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사랑인지 이별인지, 그 기억의 감촉이 행복인지 불행인지 감동인지 아픔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 시절은 불투명 유리 뒤에서 아른거리는 그림자처럼, 형체는 있지만 또렷하지 않다. 분명 칼날에 벤 것처럼 아팠던 기억은 아주 많이 뭉툭해져 있지만, 여전히 아프다.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와 오토(기리시마 레이카)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부다. 하지만 가후쿠는 우연히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갑자기 준비하지 못한 채로 맞은 아내의 죽음. 따져 물어야 했던 이야기를 마치지 못했다. 2년 후,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초청되어 체홉의 『바냐 아저씨』를 연출하게 된 가후쿠. 그곳에서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미우라 토코)를 만난다. 조용한 차 안에서 두 사람은 마음을 열고, 서로의 슬픔을 토닥인다.
우연히 불쑥 솟아오른 기억이 사랑을 기억하는건지, 이별을 기억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불쑥 찾아온 이 미안함이 비겁함 때문인지 미련 때문인지, 사실은 원망 때문인지도 잘 모르겠다. 2014년 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 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젊은 거장이라 불리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죄의식처럼 떠도는 기억이 사랑을 기억하는 건지, 이별을 기억하는 건지, 끝내 떨쳐내지 못한 감정이 원망인지 죄의식인지 묻는다. 그리고 무거운 추처럼 마음을 가라앉히는 복잡한 감정을 등장인물을 따라 되짚어 본다.
가후쿠는 비에 젖은 낙엽처럼 축 늘어진 무기력함과 외로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해 무거운 사람이다. 물기 없는 목소리처럼 어떤 순간에도 감정의 진폭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늘 눅진눅진한 중력으로 가라앉아버리고 만다. 반면 미사키는 차갑고 건조한 사람이다. 그녀의 고독은 단단하게 보호막을 만들어 딱 그 거리만큼 사람들을 밀어내고 곁을 주지 않는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순간, 그것을 겪는 사람들의 태도는 다 다르다. 발길질을 하고 포악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딱 그 자리에 발이 묶인 채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고 그 빈자리를 확인하고 상실감에 젖지만 그들은 먹고, 일하고, 학교에 다니고 그리고 또 웃고 화내고 울면서 또 살아간다.
시간은 느리고 더디다. 시간 속을 유영하듯 흘러가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끊임없이 휘적대느라 종종 헛발질을 하기도 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날카롭게 베인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그저 시간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생존법으로 다른 시간 속에서 묵묵히 살아간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각각의 상처를 홀로 웅크려 핥고 있는 두 사람이 다시 손을 맞잡는 과정을 보여주며 시간과 거리라는 우주와 사람의 배려에 관해 이야기 한다. 텅 빈 사람이 안타까워 부지런히 물을 길어 나르기 전, 그가 앞서 깨어져있음을 인정하는 배려. 그리고 더디고 느린 걸음을 가진 사람의 팔목을 드잡이 하거나, 이제는 벗어나라며 떠밀지 않는 배려.
그렇게 존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상대방의 한숨이 의미하는 것, 그때의 침묵 사이에 놓였던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허무함과 공허함 속에서 다 털어내지 못한 슬픔을 가진 두 사람은 묵묵히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손을 꼭 잡아준다. 그저, 그거면 됐다, 이걸로 됐다, 하는 작은 위로가 둘을 감싼다. 정말 그거면 오늘도 살만하다 말하는 것 같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영화가 시작한 후 40분이 지난 후에 비로소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의 이 요상한 시작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진짜 이야기는 정작 시작하지도 않은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그렇게 삶은 우리에게 아직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로 길고 긴 꼬리를 남긴다.
명대사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고 솔직하게 타협해야 해요
<드라이브 마이 카>(2021)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 니시지마 히데토시(가후쿠), 미우라 토코(마사키), 오카다 마사키(다카츠키)
개봉일 : 2021.12.23.
관람객수 : 8만 7천명
볼 수 있는 곳 : 왓챠, U+모바일tv, 씨네폭스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