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tPD Dec 10. 2020

치사하게 치약 갖고 그래

이기적인 친구를 판별하는 법

나이 마흔. 이제 사람을 가려 만난다. 그래도 될 사회경제적 배경이 생겼고 그럴만한 안목도 갖췄다고 믿는다. 사회 초년생 때는 모든 사람들의 의견과 요구사항을 다 들어줘야 했고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이익을 줄이더라도 싫은 사람하고는 부딪치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이 아니어도 큰 타격을 입지 않는 나만의 것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이 마흔. 자연스레 사람을 분류하고 정렬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나 역시 누군가의 인맥 리스트에서 그렇게 정리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인맥에서 정리 1순위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이기적"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것과 자주 혼동되는데 따지고 보면 엄연히 다른 것이다. "개인적"인 것은 호불호의 문제이고 "이기적"인 것은 선악의 문제이다. "우리"라는 공동체 생활을 중심으로 살아온 한민족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것이 다분히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이기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이 같은 성질인 양 쓰여온 것 같다. 


다음의 내용은 그냥 나만의 인간 분류법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고, 심심풀이로 읽으시길...


세상엔 MT에 치약을 가져오는 사람과 안 가져오는 사람 둘로 나뉜다. 


사실 별것 아닌 행동이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이나 MT에 가면 구성원의 8할 정도는 치약을 챙겨 오고 나머지는 챙겨 오지 않는다. 이를 닦지 않는 친구가 치약을 가져오지 않는 경우는 패스하겠다. 


문제는 칫솔은 챙겨 오면서 치약은 안 가져오는 경우다.


치약을 안 가져온 친구들의 정말 극히 일부는 까먹어서 안 가져온 친구들이다. 물론 이런 친구들도 예외로 하겠다. 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친구의 치약을 빌려 쓰면 되지 뭐~ 하는 생각을 갖는 부류다. 사실 치약 빌려 쓰는 게 무슨 대수인가! 그렇다 그냥 빌려주고 빌려 쓰면 된다. 


하지만 앞 서 말했듯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치약을 빌려 쓸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남에게 부탁하거나 빚지는 것에 무감각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여기서 개인적인 것과 이기적인 것을 구분하자면


내가 닦을 칫솔과 치약은 내가 챙겨가야지 남한테 빌려 쓰면 서로 불편해 >> 개인주의

무겁게 치약까지 챙겨? 딱 한번 쓸건데? 누군가 갖고 오겠지! >> 이기주의


그렇다. 엄연히 다른 것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다. 개인주의의 핵심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또 남의 침해도 받지 않고 싶어 한다. 이기주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의 이익과 권리를 침해하는 선 넘는 행위다. 


빌린 물건이 치약이 아니라 점점 사이즈를 키워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힘들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이 될 수도, 밤새워 쓴 리포트일 수도, 힘들게 찾아낸 예쁜 옷일 수도, 정말 아끼는 향수일 수도 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자기가 빌린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하고 다른 방식으로 갚아주는 기브 앤 테이크 친구들이다. 머릿속에 장부가 있어서 그 장부에 기록된 금전적, 심리적 빚을 갚으려고 노력한다. 작은 선물이나 이벤트를 준비하는 사랑스러운 친구들이 그런 경우다. 장부의 대차대조가 맞지 않으면 안절부절 못하는 귀여운 친구들...


찐은 이렇다. 자기가 빌려 쓰고, 부탁해서 얻어낸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다.


"친구끼리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나?"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쪼잔하게!"


이런 대답이 날아올 때 듣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내가 친구 사이에 너무 계산적인가?"

"내 성격이 정말 쪼잔한 건가? 내 우정이 얕은 건가?"


자기의 이기적인 면은 가린 채 착한 친구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안하무인이다. 대부분의 이기적인 사람들이 갖는 행태이다. 반복적으로 저런 패턴을 보이는 친구는 손절을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친구 사이에도 부탁을 들어주면 고마운 것이다. 고맙다고 표현하는 것이 친구사이라도 당연한 것이다. 아무리 작은 물질이나 사소한 행동이어도 그래야 한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돌려받으려 하거나 그 일을 언급하면  고맙기는커녕 불쾌해하는 친구들이 있다. 옛말에 틀린 것이 없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



지금 이 친구는 친구 인가? 그냥 지인인가?


인맥의 핵심. 친구라는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같은 학교를 나온 동창인지. 나랑 동선이 맞아서 자주 보는 동네 주민인지,  같은 취미를 가진 동호회원인지... 이 사람들은 모두 친구인지!? 혹시 따로 호칭할 단어가 없어서 다 "친구"라고 부르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친구의 정의나 분류는 너무 어렵고 케바케인 것이니 뒤로 미뤄두자. 그렇다면 적어도 이기적인 친구는 걸러내야 한다. 애먼 취급을 받는 개인적인 성향의 사람은 구제해줄 필요가 있다. 내게 도움을 기꺼이 주지도 않지만 내게 폐를 끼치지도 않는 중립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이기적인 사람을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 상대방이 나에게 부탁을 해올 때 내 기분이 어떤가? 기꺼운 마음인가? 이번엔 또 뭘 부탁하려고 그러지? 불편한 마음인가!


상대방이 나에게 부탁을 해올 때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순간 올라오는 감정이 가장 솔직한 답이다. 감정이란 사실 엄청난 데이터 값이다. 상대방의 누적된 행동 패턴에 대한 나의 가치 평가라 볼 수 있다. 엑셀 표로 정리해서 갖고 있지 않을 뿐 우리 마음속엔 그 사람에 대한 감정 데이터가 저장되어있다.


반복적으로 꾸준히 이기적이었던 사람이 부탁을 하면 우리는 어떤 기분을 느낄까? 귀신 같이 불쾌함을 느낀다. 반대로, 기꺼운 마음이 든다면 이 사람은 내게 어떤 사람일까? 예전에 내 도움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 사람이 아닐까? 혹은  언젠가 나도 도움을 받을 사람이지 않을까?


친구 수가 줄어드는 것이 걱정되어 인맥 정리를 두려워하면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없다. 방법도 별로 모질지 않다. 서서히 연락을 줄여 나가면 된다. 만나자, 놀자, 어디 같이 가자... 연락에 바쁘다고 다음에 보자고 몇 번 답을 주면 자연스레 멀어진다. 자주 만나지 않고 잊을만하면 만나는 것이 오래된 이기적인 친구와 절교하지 않고 영리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길이다.


세상은 넓고 좋은 친구가 될 사람들은 많다. 굳이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말하는 친구에게 절교의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우정은 일방적이지 않다. 이기적인 친구는 그릇된 우정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친구니까 네가 날 이해해줘야 한다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핵심이다. 이를 고치지 않는 한 좋은 친구라 할 수 없다.


한 두 번의 잘못으로 평가 내린 게 아니라는 가정하에, 상대에 대해 갖고 있는 나의 감정을 인정하고 신뢰해야 한다. 상대방이 나를 존중한다면 나에게 이기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 그 친구는 좋은 친구가 아니다.


그리고 항상 명심하자.

나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다. 

누구보다 나와 잘 지내야 한다.

나와 잘 지내는 것을 방해하는 친구는 좋은 친구가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5년에 한 번 만나는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