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단어 중에 COOL이 있다. 시원하고 차갑다는 1차원적 뜻 말고 멋지다는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영어를 잘 모르는 나지만 미드나 영화를 봤을 때 맥락적으로 COOL의 조건에는 이것이 있다. 바로 "꾸안꾸". 멋져 보이려고 차려입거나 행동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멋진 것. 본인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드러냈는데 그것이 멋졌다면? 그것이 바로 COOL이다.
화제의 인물 어도어 대표 민희진이다. 기자회견장의 그녀 vs 화보의 그녀
며칠 전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의 사진이다. 왼쪽은 기자회견 당시 꾸민 것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고 오른쪽은 한껏 꾸미고 예쁘게 찍은 사진이다.
사진이 바뀐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자회견 TPO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깔끔하고 격식 있는 어두운 옷차림이 기자회견의 정석
#눈으로 보이는 것
기자회견은 세간의 궁금증이 많은 사안에 대해 대중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하게 된다. 언론사 기자들이 사진이나 영상을 찍기 때문에 예를 갖추어 어두운 정장을 입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 그런데 이번 민희진 기자 회견에서는 모든 것이 예상 밖이었다. 그리고 COOL했다.
기자회견장에 들어오는 순간 올라온 유튜브 채팅
기자회견은 유튜브에서 라이브로 진행되었고 시청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채팅을 올렸다. 첫 등장부터 민희진의 외모에 대해 지적을 하였다. 인신공격성 메시지들이 많은데 결국 요는 TPO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확실한 것은 민희진이 옷이 없거나 꾸밀 줄 몰라서 안 꾸민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평소에 그녀는 패셔니스타였으니까...
과하지 않게 편안한 스타일이 돋보이는 민희진의 패션. COOL.
민희진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무려 18년을 일하면서 대한민국 KPOP역사에 남을만한 멋진 비주얼 디렉팅을 해온 사람이다.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에 의미를 담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녀의 작업물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어도 될 정도라고 생각이 든다. 나도 나름 뮤뱅 피디 출신이다.
그렇다. 민희진은 야구 모자, 헝클어진 머리, 헐렁한 티를 괜히 입지 않았다. 내 생각엔 이렇다. 이 외모가 기자회견장이라는 단어에는 맞지 않는 외모였을지 몰라도 그녀가 처한 상황에는 맞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처한 상황에는 맞는 모습이다
뉴진스 새 앨범 발매를 얼마 앞둔 시점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고 온갖 루머가 쏟아지고 거대회사 하이브는 법적 조치에 들어간다고 예고했다. 민희진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중
워커홀릭으로 유명한 그녀는 밤낮없이 일했을 것이고 하이브가 주장하는 것들에 대해 반박 증거를 모으며 또 날밤을 샜을 것이다. 두어 시간이 걸리는 강남샵 메이크업은 불가능하다. 쌩얼은 당연하고 머리도 감을 수 없었고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라 편안한 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 혼자 상상이다
민희진의 현재 상황에 맞게 입고 왔을 뿐이다. 꾸밈없이 COOL하다.
변호사들이 제지하기는 했지만 할 말은 다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기자회견인 만큼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이었다. 이제 디자인이 아니라 콘텐츠를 볼 차례다. 내용은 얼마나 COOL했을까?
단어 선택이 일단 COOL했다.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면서 개저씨, 시ㅇ새ㅇ, 맞다이.... 등의 단어를 쓰며... 물론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대중들에게 아주 쉽게(?) 상황을 이해시켰다. 그녀는 하이브 대형 자본의 횡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벌레로 세팅되었다. 대중들은 그녀의 연수입이 수십억이 넘는 것을 알면서도 "월급쟁이" 사장이라는 말에 감정이입을 했다.
내가 골프를 쳤어? 기사 딸린 차를 탔어? 법인 카드가 다 배민이야!
마치 친한 친구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술자리에서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회사 욕을 하는 것 같았다. 딱 그런 느낌이었고 격이 없었다. 그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 하는 것은 친구가 아닌 회사 감사팀이나 직장 관계자가 하면 그뿐이다. 나는 이 불쌍한친구를 위로해줘야 한다. 그게 바로 친구 된 도리 아닐까?
이것은 억울한 일을 겪은 친구의 푸념이랄까?
민희진의 기자회견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법적 다툼은 아주 건조하게 감정이 배제된 채로 진행된다. 여론전과는 또 다른 양상이다.
기자회견 후 기자의 명함을 받고 웃으며 인사하는 민희진
#무심하게 무질서하게 그러나 효과적
제가 그렇게 똑똑하지 못해서, 제가 그렇게 말을 잘 못 해서...라는 말을 무심하게 중간중간 내뱉으며 두서없이 무질서하게 진행된 기자회견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민희진에 매료됐다.
기자회견은 토크쇼가 되었고 세바시 강연이 되어있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그녀에게 명함을 건네는 기자들은 민희진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법적 용어를 쓰며 하이브 주장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반박하였다면 이런 흥행은 없었을 것이다. 하이브와 민희진을 각각 옹호하던 양쪽 의견도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비슷한 예로 미국에서 최초로 진행된 <대선 토론회 케네디 VS 닉슨>이 있다. 신문과 라디오 시대에 정치에 머물러 있던 늙은 꼰대 같은 닉슨과 TV에 아주 적합한 잘생기고 말 잘하는 케네디의 토론 대결은 뻔한 결과를 낳았다.
1960년 최초로 TV 중계된 미국의 대선 토론 케네디와 닉슨
민희진은 TV를 넘어 유튜브와 SNS 시대에 적합한 방법으로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유튜브와 SNS의 가장 큰 장점은 COOL한 메시지에 아주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맥락이 없어도 재밌으면 열광하는 틱톡의 유행이 요즘 사람들의 COOL함을 대변해 준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무심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줘서 COOL하게 인정받았다는 논리에도 허점은 있다. 정말 악마 같은 계획으로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유도했다면? 잘 짜인 각본에 모두가 놀아난 거라면? 카이저 소제가 경찰서 밖을 나서며 담배를 입에 물고 똑바로 걷기 시작할 때 관객들의 탄식이 생각난다.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누가 더 나쁜 놈인지 판가름은 법적인 다툼이 끝나야 해결될 듯하다. 이미 둘 사이의 양보는 없다는 것이 명확하다.
관객 모두를 속인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악마는 디테일에 있고 악마와 천사는 원래 한 몸이다
알고 보니 뉴진스 민지 착장 스포였던!
일밖에 모르는 민희진은 기자회견장도 홍보의 장으로 썼던 걸까? 우연의 일치일까? COOL하게 차려입은 옷이 사실은 HOT한 무기였던 것?기자회견이 끝나고 릴리즈된 뉴진스 멤버 민지의 의상이 똑 닮아있었다. 그리고 이 제품들은 모두 품절되었다.
넌지시 무심하게 던진 그녀의 메시지에 많은 이들이 환호했고 동조했다. 아이돌이라는 순수함과 거대 자본의 양면성이 불편하게 공존한 이번 기자회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