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먹방의 두 얼굴
한동안 먹방이 인기였다. 아니 여전히 인기다. 음식 자체에 대한 호기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있었다. 하루 3번을 먹어야 하는 사람에게 음식 관련 콘텐츠는 공기와도 같은 존재다.
배달 음식 시장 확대, 1인 가구 증가, 유튜브 시청 증가. 코로나로 인한 인간관계 단절 등이 합쳐지면서 먹방의 지위는 공고해졌다.
그리고 또 나타난 것이. 술방이다. 코로나 시기에 외식과 모임이 금기시되면서 삼삼오오 소규모로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사회적 관계를 이어나간 것이다.
이영지의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이 아마도 연예인 술방 장르를 개척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연예인이 호스트가 되어 연예인 지인을 초청해 함께 술을 마시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술방의 전형이 되었다.
연예인들의 취기 오른 볼 빨간 모습과 혀 꼬인 발음. 어디서도 말하지 않았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콘텐츠는 단숨에 인기 영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술을 마시는 영상이나 사진이 공개되면 큰 곤란을 겪던 아이돌들이 이제는 술방에 전격 출연하며 천지개벽의 시작을 알렸다. 그야말로 인식의 대변환이다.
인기 있는 술방은 아이돌과 배우들이 자신들의 앨범, 영화 등을 홍보할 수 있는 주요 창구가 되었다. 많은 구독자를 무기로 한 술방에 홍보를 담보로 한 출연. 상부상조하는 윈윈 전략이다.
앨범 발매를 앞둔 아이돌은 이영지의 <차쥐뿔>에, 드라마나 영화 개봉을 앞둔 배우들은 <짠한형>에 나가서 홍보를 하는 것이 암묵적 룰이 된 듯하다.
유튜브 채널의 성공 판가름은 지속적인 영상 업로드에 있는데, 이렇게 유명한 출연자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니 아주 완벽한 생태계가 구축된 것이다.
PPL과 협찬 등은 차치하고 단순 수익 예측만 찾아보면 이 정도의 수치가 예상된다(https://kr.noxinfluencer.com/)여기에 각종 PPL과 협찬까지 더해지면 꽤나 괜찮은 사업 모델이 아닌가 싶다.
세상의 이치일까? 사람이 몰리면 돈이 되고, 돈이 되는 곳에 다른 돈이 몰리고 또 사람이 몰리고, 반복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이 다 합리적이고 도덕적이고 준법정신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난무하는 술방이 2030 세대들의 알코올 중독에 영향을 끼쳤다거나, 술방을 찍다가 이상 행동을 한다거나, 미성년자 음주를 조장한다거나 하는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TV 방송과 다르게 유튜브 방송은 음주 장면에 대한 규제가 없어서 청소년도 쉽게 음주 방송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 제기가 가능한 것이다.
유튜브의 필터링은 과도한 성적 표현, 혐오 표현, 폭력, 사실 왜곡, 아동 학대 등의 문제를 주로 다룬다. 음주에 대한 가이드는 사실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술 마시는 행위 자체로는 시청 제한이나 영상 삭제가 없다. 단, 술을 먹여서 기절한 사람을 폭행한다거나, 물건을 훔친다거나 하는 것처럼, "술 + 나쁜 짓" 조합이 되었을 때 제한이 가능한 것 같다. (YouTube 커뮤니티 가이드 - YouTube 고객센터)
개인적으로 내가 술방의 모범이라고 보는 채널은 신동엽의 <짠한형>이다. 술 마시는 행위 자체보다는 술을 진솔한 대화를 끌어내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도 호스트 신동엽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는듯하다. 술을 강권하지 않고, 원하는 주종을 편안하게 마시게 해주고, 짓궂은 질문을 잘 조율하고, 생각해 볼 만한 좋은 조언을 해준다.
MZ 세대들이 직장의 회식을 기피하는 이유는 자기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상사가 좋아하는 음식점에서 상사가 좋아하는 주종을 마셔야 하고 상사가 주는 술은 다 받아 마셔야 한다. 자기 이야기보다는 상사의 일방적 훈시를 들어야 한다. MZ들은 회식에 회의적이다.
<짠한형>은 이와 정반대다. 물론 협찬 때문에 특정 술을 광고하기는 하지만 다른 술을 원하면 바꿔주고 (그래서인지 게스트가 오기 전에 협찬 술을 미리 광고해버린다) 술을 강권하지 않는다.
편안한 대화로 진솔한 대답을 이끌어내고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잘 들어주기도 하면서 술자리가 즐거울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런 진행 방식은 배우들을 만나서 빛을 발한다.
예능 경험이 없는 배우들은 대본이 없는 곳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어찌해야 할 바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신동엽은 능수능란하게 이들의 매력을 잘 끌어낸다. 약간의 취기를 빌려서...
드라마, 영화 개봉을 앞둔 배우들이 줄을 서서 출연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편안함.
술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술이지만 어느 사람과 마시느냐에 따라 독주가 되기도 약주가 되기도 한다. 우리도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이 두 경우를 경험해 봤을 것이다.
"내가 다시는 너랑 술 마시나 봐라!"
"그래 담에는 여기 가서 마시자!"
술은 대화를 위한 좋은 도구다. 도구는 쓰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결과물을 천차만별로 만든다. 시쳇말로 똑같은 식칼이어도 누구는 사람을 찌르는 데 쓰고 누구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데 쓴다.
음주 행위 자체를 내세우는 채널은 섬네일만 봐도 알 수 있다. 술을 많이 마실 수 있다는 주량을 내세우거나 만취했을 때 망가진 모습을 강조한다.
약주가 아니라 독주가 된 경우다. 술을 많이 마셔서 무슨 대화를 했는지도 모른 채 다음 날 데면데면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친해지려고 상대방을 더 잘 알아보려고 마셨던 술이 건강만 상하게 한다.
먹방, 술 먹방... 모두 사람이 그리워서 많이 찾는 콘텐츠다. 함께 밥 먹으며, 술 먹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사람 사는 이야기가 듣고 싶은 우리들이다.
내 생각엔 술 먹방은 술 냄새보다는 사람 냄새를 남겨야 한다. 술 먹방을 보고 호스트와 게스트의 관계에서 나온 찐한 사람 냄새를 맡고 싶고 나도 저 틈에 앉아서 같이 술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술 먹방의 주인공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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