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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onbusin May 06. 2019

블루보틀에 가는 것의 의미

사람들은 왜 3시간 동안 줄을 서서 커피를 마실까?


블루보틀 성수

성수동에 한국의 첫 번째 블루보틀이 오픈했다. 미국을 제외하고 세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생긴 매장이다. 블루보틀을 오픈한 첫날 새벽부터 줄을 섰다는 기사가 줄지어 나왔다. 마치 쉑쉑버거가 오픈했을 때의 인기와 비슷하다. 몇 해 전부터 블루보틀이 한국에 상륙한다, 삼청동에 생긴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으나 결국 한국의 브루클린이라고 불리는 성수동에 오픈했다. 마침 건대에 볼일이 있던 나도 오픈 당일 방문했다. 퇴근을 하고 갔으니 7시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블루보틀에 열광하고, 새벽부터 줄을 설까. 단순히 커피라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성수동 블루보틀은 당분간 줄이 끊기지 않을 것이다.


블루보틀 도쿄


내가 블루보틀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SNS 때문이었다. 일본을 다녀온 사람들이 푸른 병의 로고를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고 나는 지속적이고 꾸준하게 보이는 그 로고 때문에 가보지도 않은 블루보틀에 관심과 호감이 생겨 일본에 가면 꼭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결국 일본에서 여러 블루보틀을 방문했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브랜드 경험과는 조금 달랐다.


블루보틀 도쿄


우선, 블루보틀 로고 환상적인 터키블루색과 어울리는 차분하고 멋진 공간, 블루보틀에 방문하면 여유롭게 최상급 커피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며 바리스타들은 스페셜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공간이 그렇게 멋있지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실 수 있지도, 커피맛이 엄청 대단한지도, 바리스타들의 퍼포먼스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루보틀은 나에게 여전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고민해 보았다.





1. SNS에서의 블루보틀: 인스타그램적인 공간

블루보틀을 방문한 사람들이 업로드한 정갈하고 여유로운 공간과 그 속의 블루보틀 로고.

우선 한국 사람들이 블루보틀 사진을 올리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일본을 가야 한다(성수점 오픈하기 전) 남들이 모두 쉽게 갈 수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여행이라는 환상 속 연장선이다. 인스타그램 사진속에는 '커피 한잔의 여유'가 사진 한 장에 편집되어 녹아있다. (현실은 인스타용 사진을 찍기 위해서 여유롭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블루보틀은 2012년부터 인스타그램 맞춤 마케팅에 힘썼다. 사람들이 인스타에 올릴만한 로고가 잘 보이는 스팟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멋진 뷰가 생길 수 있도록 공간 디자인을 한 게 틀림없다. 이제 블루보틀의 마케팅은 고객이 스스로 한다.







2. 나는 아무 커피나 마시지 않는다.

커피 한잔 가격으로 나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나의 가치.

일단 블루보틀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한 젊은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특징(나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크고 넓고 쾌적한 공간의 집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제3의 공간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게 보통은 카페다. 스타벅스를 자주 가는 것도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라기보다는 우리 집에 없는 공간을 찾기 위해 커피 한잔 값을 지불하고 공간을 점유한다. 월세를 내는 것보다 훨씬 가성비가 좋다.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할 때 사용할 수 있다. 블루보틀을 방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집에는 없는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여유롭게 마신다. 그것도 그냥 커피가 아니라 최상급의 스페셜티 커피.

명품백을 살 여유가 없는 나지만, 커피 한잔은 명품으로 지불할 만은 돈은 있다. 블루보틀을 마시는 것은 비록 나는 10평도 안 되는 좁은 원룸에 살지만 내 가치와 내 취향의 안목은 높다는 이미지를 다른 사람에게 심어 줄 수 있다. 스스로 자기위안과 함께!


3. 블루보틀의 철학과 스토리

교향악단의 클라리넷 연주자 출신의 창업자

커피 전공자가 아닌 연주자 출신의 창업자가 만든 커피에 대한 애정과 철학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간결한 여덟 가지 메뉴, 하나로 통일된 컵 사이즈, 향 내는 첨가물을 넣지 않은 순수한 커피, 최고급 에스프레소 머신, 로스팅 48시간 이내의 원두.

브랜드 철학을 유지하며 매장을 확장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쿨한 브랜드라는 인식이 박힌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에는 핵심 가치를 활용한 원두 납품이라는 캐시카우 가능한 사업모델이 있었기에 브랜드 철학을 지킬 수 있었다.


4. 커피를 제대로 마시는 경험

요즘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다른 경험에 흥미를 느낀다. 어느 정도 소득 수준이 비슷해지면서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정신적인 가치에 비중을 두는 것 같다. 새로운 경험은 가치관을 확장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블루보틀 커피를 마시는 것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커피를 마실 거라면 블루보틀을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 동네에서도 맛있는 커피집이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지만 정성 들여 내리는 드립 커피와 그 커피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 블루보틀이라는 브랜드가 제안하는 '전문가가 좋은 재료를 가지고 개성을 살려서 제조한 커피'라는 타이틀은 커피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 것이 핵심이 아닐까. 마치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보는 것처럼, 커피를 마시는 행위에 집중하게 된다. 블루보틀은 오로지 하나의 목적으로 모든 것이 기능을 한다. 재밌는 경험이라 생각한다.


사실 인터넷 뉴스나 주변 반응을 살펴보면 상반된 평가가 많다. 블루보틀 성수점이 오픈했으니 호기심에 얼른 가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까지 기다리면서 마셔야 하나 생각하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나 역시 두 종류의 시각 모두 이해가 된다. 단순히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찍기 위해 가는 것도 브랜드 철학과 상반되는 행동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Instagram_ noonbusin

http://noonbusin.weebly.com/


참고자료

북저널리즘 / 블루보틀에 다녀왔습니다_양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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