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원작 '하나레이베이' 영화 리뷰
[본 영화는 브런치무비패스 로 관람하였으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이별을 겪게 되면 다들 으레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라는 말들을 한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감정이라는 것이 희석되면서 점점 아픔의 빈도와 강도가 줄어들게 된다. 사람은 망각이라는 축복을 받았으니까.
그러나 어떤 이별은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무덤 위에 무덤을 쌓는 것처럼, 계속 쌓여만 갈 뿐이다. 그리고 이별을 겪기 전의 자신으로 더 이상 돌아갈 수도 없다.
영화 하나레이베이의 주인공 사치의 아들인 타카시는 하와이 하나레이베이에서 서핑 중 상어에게 물려 목숨을 잃는다. 소식을 들은 엄마 사치는 아들의 유골을 받고자 하와이를 방문한다. 그러나 사치는 슬퍼하기보다는 어쩐지 그 모든게 거짓처럼 느껴진듯, 아들의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를 보인다. 아이 때문에 본인의 꿈을 포기했지만 마약에 바람까지 핀 전 남편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에게 큰 유대감이 없어서였을까.
그녀는 유골만 들고 바로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갑자기 하나레이베이 해변에 앉아 일주일간 밀물과 썰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책만 읽다가 돌아간다.
하와이의 눈부신 해변에서 다들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역동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깔끔한 정장 차림에 하얀 피부의 사치는 낯설어 보인다. 인생에 하와이라는 계획이 없던 사람이라는 것을 누가 봐도 단박에 알 정도로 풍경과 사치는 이질적이다.
그 이후 매년 기일이 다가오면 하와이를 방문해 해변을 바라보며 늘 책을 읽거나, 바다를 바라보기만을 십 년째 하던 중 사치에게 죽은 아들과 비슷한 연령대의 서핑을 하는 청년 둘을 만나게 되면서 감정의 동요가 시작된다.
그동안 사치에게도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 더 이상 정장 차림이 아닌, 하와이에서 어울릴법한 가방, 신발, 의상들은 사치가 아들의 죽음을 약간은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알 수 없는 끌림으로 사치는 두 청년을 도와주다가 친해지면서, 일본인 외다리 서퍼를 보았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그 이후부터 사치는 외다리 서퍼를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아들이 죽었다는 것은 사실 거짓 아닐까. 일본인 외다리 서퍼는 자신의 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외다리 서퍼를 찾지 못했고 사치는 자신이 아들을 엄청 사랑했음을 그리고 사무치게 그리웠음을 그리고 아들의 죽음을 십년이 지나서야 그제야 받아들이며 엉엉 운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은 표현하고 충분히 슬퍼해야 하지 마모된다. 그러나 사치는 십 년이 지나서야 본인의 진짜 진심을 알게 된다. 어떤 슬픔은 시간이 마냥 지난다고 해서 괜찮아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하와이라는 바닷가의 풍경과 대조되는 사치의 저릿한 마음은, 영화를 보는 내내 나에게 까지 전달되었던 것 같다. 그토록 아름다운 풍경도 의미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겐 그 모든 게 아픔이다.
영화 하나레이베이는 인생에서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계획되지 않은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예기치 않은 사고, 준비되지 않는 죽음에 대한 슬픔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음을 알려준다.
누구나 무덤 위에 무덤을 쌓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많이 슬퍼하고 또 슬퍼함으로써 감정을 희석시키는 방법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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