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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onbusin Feb 26. 2019

꿈을 좇아 불안한 모든 청춘에게

영화 프란시스 하 리뷰


이번 주말, 집에서 나가지 않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렸다.

모처럼 나에게는 자유였다. 평일은 늘 퇴근 후 집에뻗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sns, 인터넷 뉴스, 커뮤니티 등으로 시간을 소비하기 일수였고, 매 주말은 데이트 혹은 약속으로 점철된 날들을 보냈다.


해야지 하는 일들은 뒤로 미루기 일수였다. 1월 1일에 계획했던 것들 중 그 어느 것도 꾸준히 하는 일들을 없었다. 프란시스 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같은 영화도 일 년 넘게 봐야지 생각하면서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화관에서 데이트 하며 인기 있다는 요즘 영화는 보면서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볼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보고 싶었다는 그 두 영화가 모두 자극적인 요소가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그것 말고도 더 재밌는 일들이 많았다. 가령 남자 친구와 데이트라던가 새로 사귄 친구들과의 대화, 새로운 공간에 가서 먹고 마시고 노는 것들 이런 것들이 나를 더 재밌게 했다.


그러나 이번 주말은 요 근래의 다른 주말과 달랐다.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공백이 생겼고 그 공백을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소비적인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고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여태까지 애써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을 멀리했기 때문에 생산적이거나 현실을 직시하는 상황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번 주말 나는 프란시스 하를 봤고,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보았다. 책도 읽었는데 아무튼 시리즈 중 '아무튼 잡지'(황효진 저), '불교는 왜 진실인가'(로버트 라이트저), 북 저널리즘 시리즈 '블루보틀에 다녀왔습니다'(양도연 저)를 읽었다.




프란시스 하를 알게 된 건 영화 시사회를 통해 '레이디버드'를 보았고, 감독인 그레타 거윅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부터다. 그레타 거윅은 레이디버드의 감독이자 동시에 프란시스 하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레이디버드와 프란시스하의 공통점이라면 주인공의 이름이 영화 제목이라는 것, 둘 다 고향이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라는것. 그리고 그레타 거윅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프란시스 하를 보면서 울컥했다. 주인공 프란시스가 나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무일곱 살의 프란시스는 고향인 새크라멘토를 떠나 뉴욕에서 무용수로 성공하고자 하는 꿈을 가진다. 그러나 물론 쉽지는 않다. 높은 물가와 비싼 임대료 덕분에 생활을 유지하기조차 벅찼고 작은 말다툼으로 남자 친구와 헤어지게 된다. 영원할 것 같았던 베스트 프렌드도 남자 친구와의 미래를 약속하게 되면서 룸메이트 생활도 끝난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친구네 집에 비용을 주고 살게 되지만 그 비용마저 내는 것도 벅차 새로운 집을 찾는다. 나를 빼고 모든 사람들은 잘 살고 있는데 나만 자꾸 뒤처지는 것 같이 느껴진다. 무용수로서 크리스마스 공연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불분명한 상황을 앞두고 급작스럽게 계획 없는 파리 여행을 떠난다. 파리 여행은 생각보다 즐겁지 않다. 너무 계획 없이 온 터라 무얼 봐야 할지도 누굴 만나야 할지도 없다. 오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 온 여행은 카드빚만 늘었다.




파리 여행 후, 크리스마스 공연을 할 수 있을지 여부를 물어보지만 선생님은 어렵다는 대답과 동시에 대신 좀 더 가능성이 높은 안무가 및 사무 일자리를 제안한다. 즉, 무용수로서는 재능이 없으며 이 재능으로는 먹고살기 벅차다는 의미다. 프란시스는 더 나은 일자리가 있다고 거절하며 본교로 돌아가 기숙사 조교로 잠깐 일하게 된다. 거기서 베스트 프렌드의 생각보다 즐겁지 않은 사생활을 목격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느끼는 바가 있어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안무가 자리를 수락한다.


그 자리를 수락한 후, 프란시스는 좀 달라 보인다. 전처럼 멍청하거나 찌질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프로페셔널 해졌다고 할까. 본인의 일을 성실히 하고 성숙해진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본인의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다고 할까.


안무가로서 첫 무대를 보며 나는 눈물이 났다. 너무 멋진 무대였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느끼는 점이 많았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를 수도 있다는 것. 어떤 맥락에서는 포기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것. 무조건 하고 싶은 일에서 일등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럴 수 없다면 차선의 선택에서 최선의 결과를 낳는 것도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란시스는 정말 멋졌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내게 잔잔한 감동까지 주었다.

안무가로서 첫 발을 내디딘 그녀는 뉴욕에서 우편함에 자기의 이름이 적을 수 있는 집을 드디어 구하게 된다.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에서 본인의 이름을 꼬리표에 적은 후, 우편함에 넣는다. 이게 영화의 마지막이다.



이 영화는 리얼리티가 있다. 이 영화는 내 얘기다. 이 영화는 꿈을 좇는 우리 얘기다. 꿈을 좇는 청춘들은 불안하다. 그게 뉴욕이든 파리든 도쿄든 서울이든 어디든.


스무아홉, 내 나이도 그렇다. 더 이상 어리지는 않은 나이. 그러나 여전히 꿈이 많은 나이다.

어떤 선택이 더 나은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선택을 잘할 수 있는 방법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알 수 있는 건, 세련되고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공이 필요하고 내공은 많은 경험들로부터 만들어진다. 그러니 어떤 경험도 허투루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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