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진상짓을 고발합니다!!
누군가를 사귈 때 보는 첫 번째 조건, '강아지(고양이)를 좋아하는가'
반려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특히나 나처럼 1인가구인 경우는 더욱더.
누군가를 만날 땐 항상 '동물을 좋아하는가'가 1순위 조건이다. 다행히 마당쇠는 그 점에서 합격점이었다. 반려동물과 마당 있는 집에서 사는 나의 (다소 평범치 않은) 조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싸복이남매와 하늘이를 처음 만났을 때도 별 문제가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순진하게 싸복이 남매는 우리 사이에 큰 문제가 안 될 줄 알았다.
언제부터인가, 싸이가 조금씩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내가 돌아다니고 있을 땐(집안일을 할 때는) 발에 차이도록 나만 쫓아다닌다. 그러다가 마당쇠와 내가 붙어 있으면 본격적으로 행동을 개시한다. 침대 이불을 사정없이 들쑤신다. 여기저기 난장판을 친다. TV 장식장 뒤쪽 좁은 틈으로 들어가 들쑤신다(TV가 훅 하고 꺼진 일도 있다). 한자리에 앉아 우리를 쳐다보며 몸을 부들부들 떤다(뭔가 무서울 때 하는 행동이다). 자꾸만 마당에 나가겠다고 한다. 내보내주면 대문밖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때론 뒤뜰에 넘어간다.
좀 더 부연설명하자면 이런 식이다. 이불을 못 들쑤시게 막으면, 장식장 뒤를 어지럽히고, 그걸 못하게 하면 밖에 나가겠다고 보채는 식이다. 혼내기도 얼르기도 지친 우리가 그래 그럼 나가서 놀아라 하고 내보내주면 본격적인 사고를 친다. 허술한 대문을 열고 밖으로 탈출을 하고(덕분에 대문을 개보수했다), 탈출해 놓고 대문코 앞에서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가련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누가보면 내가 내쫓은 줄). 대문을 막아놓으니 이번엔 뒤뜰로 탈출을 시도한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우리 집 뒤뜰은 동네냥이들의 구역, 싸복이 남매가 절대 침입할 수 없도록 양쪽이 다 막혀 있는 구조다. 한쪽문은 무거운 물건으로 막아 놓았는데, 그 작은 몸(6킬로에 불과)으로 문을 열겠다고 용을 써 대문을 열기도 하고(덕분에 이쪽 문도 개보수함), 다른 쪽 담장은 그리 높지 않은데, 훌쩍 뛰어넘기도 했다(여태까지 월담은 한 적이 없다). 뛰어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높이면, 땅을 파는 식이다. 왜 땅굴이라도 파서 넘어가려고? 뒤뜰에 가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마당쇠가 함께 있을 땐 좀처럼 낮잠도 자지 않고 어김없이 저런 식이다가, 마당쇠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넉다운이 됐다. 마당쇠가 있는 동안 지쳐 쓰러질 때까지 잠도 자지 않고 사고를 치니 힘들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걸 못하게 하면 저걸 하고 저걸 못하게 하면 다른 사고를 치는, 마당쇠와 함께 있는 동안은 잠시도 맘 편히 있을 수 없는, 돌이켜보면, 싸이도 마당쇠도 어멍도 모두 불편한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싸이가 마당쇠를 경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매번 털을 빗겨주는 마당쇠의 손길을 즐기기도 했고(어멍은 싸이털은 잘 안 빗겨준다. 거대한(?) 행복이 빗질만으로도 숨이 차다), 마당쇠를 보면 늘 좋다고 꼬리를 흔들기도 했다. 시거든 떫지나 말라고, 그러니 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싸이는 질투와 소유욕이 강한 강아지다. 행복이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엄청나게 질투한다. 누가 놀러 오면 행복이 예뻐하는 꼴을 못 본다. 누구든 자기만 쳐다봐야 한다. 조금 과장하면 우리 집에 방문하는 손님은 있는 동안 싸이만 주야장천 쓰다듬다 가야 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마당쇠도 초반에는 순순히 싸이를 (원하는 만큼) 쓰다듬어 주었으나, 어떻게 매번 그럴 수가 있겠는가. 마당쇠의 방문이 잦아지면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 손길을 주지 않자, 그때부터 싸이의 진상짓이 시작된 것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이제 사고는 치지 않는다. 단, 마당쇠를 감시하는 모드는 여전히 발동 중이다. 내가 움직일 땐 어김없이 나만 따라다니고, 마당쇠와 내가 붙어 있을 땐,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미동도 없이 마당쇠를 감시한다. 그렇게 꼿꼿이 앉아 눈에서 레이저를 쏘며 감시하다가 시간이 지나 힘들어지면 슬쩍 자세를 낮춘다. 그러다 밤이 깊어 체력에 한계를 느끼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조는 모양새가 귀여워 웃음이 나기도 하고, 왜 저렇게 사서 고생일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그러다 내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면 내 옆에 바짝 붙어 다시금 마당쇠를 감시한다. 어떨 땐 내 다리에 사지를 걸치고 흡사 '어멍은 내 거야. 아무도 손 못 대.' 하는 자세로 누워있기도 하고, 어떨 땐 어멍 가슴팍에 올라가려고 하다, 어멍한테 혼구녕이 나기도 한다. 자꾸 손을 써서(손으로 꾹꾹 누른다) 자신을 쓰다듬어 달라고도 하는데, 그러다가 역시 단호박 어멍한테 혼쭐이 나기 일쑤다.
정말 다행인 것은 시간이 갈수록 상태는 나날이 호전 중이고, 이제는 어쩌다 한 번씩 자기 방석에 편히 앉기도 한다(마당쇠와 함께 있는 동안 편히 눕는 걸 본 적이 없다). 시간이 더 지나고 마당쇠와 본격적으로 함께 살기 시작하면(현재 주말부부임), 싸이도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 중이다. 지금도 마당쇠가 집에 가고 난 다음날이면 하루종일 떡실신인데, 같이 살면 강아지 체력에 버틸 재간이 있겠는가 말이다.
오래간만에 어멍이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 좀 해주면 좋으련만, 그 착한 모범생이던 싸이가 허튼짓을 해대니 마음 불편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싸이맘을 상상해 보면 이렇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웬 놈이 감히 나의 어멍을 넘봐?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나는 가끔 싸이를 쓰다듬으면서 이야기한다. '싸이야 엄마는 너의 소유물이 아니야. 그러니까 좀 적당히 해'라고. 반면 행복이는 이런 와중에도 행복이 답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하루종일 잠만 자니(마당쇠가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참으로 대조적이다. 둘이 좀 적당히 믹스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이전 남자 친구에게는 저러지 않았는데, 도대체 왜 이런 걸까' 하고 진지하게 '고찰'해 보기도 했다. 첫째, 마당쇠를 테스트하는 것이 아닐까? 못살게 굴어서 나가떨어지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둘째, 이런 마음일까? '어멍은 나의 것, 같이 있는 꼴은 볼 수 없다. 사고를 치자. 시선을 나에게 돌리자' 나의 결론은 이렇다. 마당쇠가 진짜배기임을 알아본 것이 아닐까? 다른 놈들은 다 중간에 포기할 놈들이었는데, 이 놈은 끝까지 나와 경쟁할 놈임을, 질긴 놈임을 알아본 것이라고.
시간이 흐르면 마당쇠를 자신의 라이벌이 아니라, 한 가족으로 받아들여 줄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본다. 행복이가 들어왔을 때도, 뭉치나 하늘이가 새 식구가 되었을 때도, 처음에는 엄청 경계했다가 시간이 흐른 후 자연스럽게 모두를 받아들여 주었던 것처럼.
본가에는 강아지가 있지만, 혼자 산 이후로 한 번도 강아지와 함께해 본 적이 없는 마당쇠는, 다행스럽게도 나의 유난한 강아지 사랑을 많이 이해해 주는 편이다. 진상짓을 하는 싸이가 많이 불편했을 텐데, 그 불편한 시간을 잘 버텨주어서 너무 고맙다.
싸이야~ 이제 진상 짓 그만하고 다시 모범생 싸이로 돌아오지 않으련.
마당쇠는 이제 못 물러. 우리 이제 영원히 함께 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