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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May 18. 2024

나의 늙은 개, 행복이 이야기

행복이를 통해 사랑의 가치를 배운다

행복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두 달 여가 되어간다.


행복이가 병을 얻고, 점점 상태가 나빠지고,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 중에는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사랑하는 존재의 상실이 코 앞에 닥쳐 황망한 데다, 행복이 병간호도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죽음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지켜봤어도, 행복이의 부재는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행복이가 떠난 후 일주일 동안 마당쇠가 일을 하지 않고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당쇠가 집으로 돌아간 후(우리는 아직 주말부부다), 처음으로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날의 공허함과 상실감을 또렷이 기억한다. 할 일이 없었다. 시간이 남아돌았다. 평소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좀체 가만히 앉아 쉴 시간이 없었다. 아이들 밥을 챙기고 대소변을 치우고 청소기를 돌리고 빗질도 하고 양치도 하고. 틈틈이 쓰다듬어도 주고. 하나의 일이 끝나면 또 하나의 일이 생겼다.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기껏 30분~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나는데, 결국은 너무 피곤해서 책을 읽다가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졸린, 혹은 자는 모습이 제일 예뻤던 행복이

싸이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 강아지다. 대소변도 내가 올 때까지 참았다가 마당에다 싸는 아이니 말해 무엇하랴. 행복이가 없으니 심지어 매일 청소기를 돌리지 않아도 되었다. 집에 돌아오니 할 일이 없다. 그러니 행복이 생각을 하며 훌쩍이기 일쑤였고, 울다 지쳐 잠드는 밤이 이어졌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사실이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


어멍작업에 적극적으로(?) 훼방을 놓던 장꾸 행복이

저 시간들을 버티며 내가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내가 행복이를 위해 정말 많은 시간을 내어주었다는 사실이다.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결같이 행복이를 위해 많은 일들을 했다. 그것은 헌신이었다. 상대방을 위한 존중, 책임감, 헌신, 보살핌, 이런 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기본 덕목이다. 나는 행복이를 책임감을 가지고 보살폈고 헌신했으며 존중했고 최선을 다했다. 끼니를 챙기고 대소변을 치우고 산책을 시키고 빗질을 하고 목욕을 시키고 어디가 불편한지 늘 살폈다. 그것이 진실된 사랑임을 의심할 수는 없다. 


가끔 아니 자주 숭한 모습으로 웃음을 선물하던 행복이

저 무렵 우연히 '개는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는가'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동물행동과학자인 저자가 (개가 아닌) 다른 동물을 연구하다가, 반려견과 함께하며 개에 대해 연구를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개가 어떻게 해서 지금처럼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품고, 그 원인에 과학적으로 접근해 나간다. 개가 인간을 지금처럼 사랑하는 것은, 개들의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자, 진화론적인 결과물이다. 개의 사랑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증명된 과학이자, 진실인 것이다.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뭉치를 만났을런지......

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이런 생각이 나를 감쌌다. '행복이는 존재 그 자체로 사랑이다.' 행복이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내가 마음깊이 늘 느꼈던 감정은, 말 그대로 진실한 사랑이었다. 순간 행복이의 사랑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는 행복이에게 최선을 다해 헌신했으며, 행복이는 나란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었다. 우리가 주고받은 사랑은 진실되고 아름다운 감정이었으며 그 사랑 자체로, 온전히 가치가 있는 것이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꿈꾸던 아름다운 풍경(마당, 그리고 개)

진심을 다해 한 존재를 사랑했다면, 그 존재가 사라지고 난 이후에도, 그 부재를 흔쾌하게 잘 견뎌낼 수 있다고 한다. 슬픔을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그 슬픔은 어느 정도 날아가, 슬픈이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 준다. 이제 나는 행복이의 부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행복이의 사랑을 행복하게 떠올리곤 한다. 물론 행복이가 여전히 사무치도록 그립고 또 그립지만, 그 그리움 또한 행복이에 대한 나의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싸복이 남매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나는 이제 남아도는 저녁시간에 운동도 더 하고, 책도 더 보고, 가끔은 TV도 보며 온전히 쉰다. 행복이가 부재한 시간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옆구리가 시리고 (행복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 옆구리가 정말 든든하고 따뜻했다), 행복이의 부재가 적막하게 느껴지지만, 나는 이제 거의 울지 않는다.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행복이가 나를 지켜보며 미소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생각보다 잘해 나가고 있다면서.


행복이는 '사랑' 그 자체다

아이도 남편도 없었던 나는 사랑의 가치를 오랜 시간 동안 모르고 살았다. 사랑이란 한 존재에게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고 헌신하고 보살피는 일임을, 그 헌신이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임을, 행복이를 통해서 배웠다. 행복이가 나에게 보여준 무한한 사랑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까지도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립고 또 그리운 행복이

앞으로는 좀 더 사랑이 많은 존재로 살고 싶다. 마당쇠와 싸이와 하늘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있다면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먼 훗날,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행복이를 다시 만나면, 행복이가 나를 향해 '잘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행복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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