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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가 선물한 행복해지는 주문

"예쁘다 예쁘다 우리 행복이 정말 예쁘다"

by 달의 깃털

결혼을 하고 가장 좋은 점은, 조금은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사실 그리 낙천적이거나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다. 젊어 한때는 '우울함'을 사랑하기까지 했으니 말해 무엇하겠나. 가끔 이런 내 모습에 스스로 지치기도 했으나, 타고난 성향이려니 하며 받아들인 지가 꽤 되었다. 이런 내가 결혼을 하면서 많이 달라졌다. 타고나길 웃음 많고 긍정적이고 단순한 마당쇠와 살다 보니, 웃을 일이 많아져서 그런가 덩달아 긍정적이고 단순한 사람이 되어간다.


살면서 스트레스가 참 많다. 직장일에 인간관계에 시시콜콜한 일부터 대형 사건사고까지. 늘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면 참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삶이다. 언젠가부터 외부의 영향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 그나마 행복하게 사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종의 정신승리인 셈인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몇 년 전부터는 직장생활이 점점 힘들어졌다.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만만치가 않다. 살아야겠기에,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행복이 답게 천국에서도 행복하길...

첫 번째 방법,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장면 상상하기' 두 번째 방법, '억지로 웃어보기' 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첫 번째 방법이다. 당신은 상상하기만 해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 있는가. 저 질문에 꽤 오랜 시간 고민해 봤는데, 슬프게도 그런 장면이 거의 없다. 나에게 유일하게 상상만으로 즐거운 장면은 딱 한 가지다. 행복이와 함께했던 순간들(싸이와 하늘이가 서운해하지 않겠나 싶지만, 행복이는 이제 더 함께할 수 없으니 안타까움과 함께 행복함도 배가 된다).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겠다. 아니, 사랑하는 마당쇠가 있지 않는가 하고. 나는 마당쇠를 많이 사랑하고, 또 그와 함께 하는 삶이 좋고, 나름 행복하긴 하지만. 음. 뭐랄까. 마당쇠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남편이란 그런 아이러니한 존재인가 보다). 그건 아마도, 마당쇠는 내게 조금 더 복잡한 의미를 가지는 존재여서가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마당쇠가 혹여 서운해할까 봐 이렇게 적어본다).


천국에서도 예쁜 모습으로 곤히 잠들었기를...

내가 행복이를 떠올리는 순간은 참 많다. 그중엔 물론 죽음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행복이를 지켜봐야 했던 고통의 기억들도 있다. 너무나도 아픈 기억이기 때문에 쉽게 지워지지 않고, 여전히 떠올리면 가슴 아픈 장면들이다. 펫로스 증후군이 힘든 이유는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끊임없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이별의 기억은, 상실감과 슬픔 죄책감 같은 감정들에 뒤섞여 우리를 오랜 시간 괴롭힌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이 기억을 그나마 희미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대상과의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는 방법뿐이다. 아주 단순한 원리다. 고통의 기억을 즐거운 기억으로 엎어버리는 것. 시간이 흐르면서 슬펐던 기억보다는 행복이와 좋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횟수가 많아졌다. 이제는 의도적으로 딱 한 장면을 정해 기분이 다운될 때나,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떠올린다.


내가 의도적으로 정한 한 가지 장면은 이렇다. 행복이는 보통의 강아지들보다 유난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걸 좋아했다. 눈부터 머리를 거쳐 뒷 목덜미까지 아주 길고 오래 그리고 여러 번. 예민한 강아지라면, 눈을 만지는 것을 싫어하기도 할 텐데, 우리 행복이는 달랐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행복이를 그렇게 쓰다듬어 주곤 했는데. 그때 내가 행복이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예쁘다 예쁘다 우리 행복이 참 예쁘다"


천국에서도 행복이 다운 장꾸의 모습이기를...

지금도 늘 하루에 몇 번씩 저 말을 마음속으로 읊조린다. 그러면 진짜 행복이를 쓰다듬을 때, 그때 그 순간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만 같고, 똑같이 그때의 감정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행복이를 만지는 것이 큰 기쁨이었던 만큼, 다시는 만져볼 수 없다는 것이 큰 슬픔이기도 한데, 마치 행복이가 지금 곁에 있는 듯한 기분이다.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웃음 짓게 하는 데는 내게 저 구절만 한 것이 없다. 때때로 참 신비하다. 마약과 다름없는 주문이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세상근심걱정이 사라지고 오로지 나에게 행복이만이 남는다.


펫로스를 극복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처음엔 의도적으로 계속 떠올리다 보면, 습관적으로 떠올리게 되고, 결국, 행복했던 순간들이 반복되며,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행복하고 즐겁고 충만한 감정은 행복이를 잃은 상실감을 대체해 준다. 물론 여전히 행복이가 그립고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함께하고 싶다. 하지만 더 이상 행복이를 떠올리는 일이 고통스럽지 않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사람은 죽음을 눈앞에 두면 어떤 특정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고 한다. 가끔 생각한다. 나는 어떤 장면들이 떠오를까 하고. 그중에 한 장면엔 분명히 행복이가 존재할 것이다. 무지개다리 너머 행복이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 행복이를 다시 만나면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 '네가 있어 힘든 삶을 견딜 수 있었다고'


행복이가 선물한 행복의 주문을 나는 오늘도 읊조린다.

"예쁘다 예쁘다 우리 행복이 참 예쁘다"


보고 있으면 문득, 행복해지는 마법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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