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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Jul 19. 2024

무심히 떠나도 좋아, 마음 챙김의 시간

--하루 여행으로 딱 좋은 당진여행의 깊은 맛

    






여름이다. 누군가는 바다를 찾고 숲으로 갈 것이다. 바쁘게 사는 세상 멀리 훌쩍 떠나기엔 살짝 주춤거려진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거야? 가만히 앉아 여름 타령만 하기엔 아까운 시간이 금방 가버린다고, 하며  투명한 햇살이 부추긴다. 초록 물이 듬뿍 올랐다. 퍼석한 시간 속에서 기꺼이 자신을 끄집어내어 주기로 한다.     

  

당진은 서울과 수도권 기준 자동차나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 남짓의 거리다. 무심히 그냥 떠나면 된다. 사람들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에 굳이 의미를 담는다. 알고 보면 그럴 일은 아니었다. 무심코 떠난 곳에 당도했을 때의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하루가 행복하다. 마을 골목을 어슬렁거리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지역 들판이나 노포에 주저앉아 내다보는 느린 풍경에 세상 스트레스 날리면 되는 것 아닌가. 당진은 그러기에 적당하다.   

      


-당진에서 여름을 맞는 법왜목마을 바다와 갯벌

제법 덥다. 아무래도 바다를 먼저 보아야겠다. 충남 당진은 서해와 아산만을 경계로 절반 이상이 바다와 접한 지리적 특성 덕분에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비릿한 포구와 너른 들길이 번갈아 나온다. 당진의 왜목마을 해수욕장은 바다와 갯벌, 일출과 일몰뿐 아니라 해안가 절벽 쪽의 해식동굴을 비롯한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해상교통이 발달한 왜목마을 앞바다는 예부터 많은 배들의 왕래가 있었다. 해안가에 해상조형물 '새빛왜목'이 우뚝하다. 왜목의 지형이 왜가리 목처럼 생겼다는 유래에서 착안하여 꿈을 향해 비상하는 왜가리를 표현한 작품이다. 모래사장이 워낙 넓고 갯바위가 공존하는 왜목마을 해변은 바다의 즐거움을 다양하게 제공한다. 


모래밭에 그늘막과 파라솔이 즐비하다. 해변에 서면 바닷바람에 금방 땀이 마른다. 바닷가의 기온은 일반 지역보다 기온이 내려간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잠깐만 서 있어도 서늘하다. 물이 빠지면 갯벌 위엔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주저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즐겁다. 다시 물이 차오르면 푸른 바다와 시원한 파도 소리가 일품인 왜목마을 바다 풍경이 청량하다.    

   

당진 바다의 대표적인 왜목마을과 난지섬은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어촌마을이기도 하다. K팝 스타 BTS의 슈가는 앨범 작업으로 며칠 머무르며 조용히 머리 식히기 좋았던 당진 바다를 추천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해안에서 일출과 일몰을 맞을 수 있는 왜목마을을 지나면서 이근배 시인의 '왜목마을에 해가 뜬다'라는 시비를 만난다. 여기 왜목마을에 와서/백두대간의 해는 뜨고 진다/저 백제, 신라의 찬란한 문화/뱃길 열어 꽃 피우던 당진...         



-푸근한 시간여행레트로 감성의 면천읍성(沔川邑城 마을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당진이다. 성안마을로 불리는 면천읍성 일대는 뉴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따사로운 마을이다. 


면천읍성(邑城)은 조선시대 서해안권 내포 지역의 대표적인 요충지였다. 그 옛날 중국으로 통하는 바닷길이 있었고 국방상 거점이었다. 평탄한 지형에 축조되어 면천군을 방어하는 성곽으로 기능이 유지되다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 그 후 동학운동과 항일의병활동지로 성 안쪽에 3·10 면천학생 독립만세운동 기념비가 세워진 걸 볼 수 있다. 



읍성 안으로 들어가면 조선왕조의 정통성이 깃든 공간 면천 객사 앞엔 천년 세월을 넘긴 은행나무 두 그루가 노구를 지지대에 받쳐진 모습으로 울울창창하다. 


바로 옆 계단 밑으로 공민왕 시절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군자정 역시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부근의 조선 정조 때 연암 박지원이 면천 군수 재직 시 세웠다는 골정지는 봄과 여름이면 벚꽃과 연꽃으로 절경을 이루고 당진의 걷기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성안으로 들어왔으면 지나치지 않고 돌아볼 곳이 곳곳에 숨어있다. 당진이라면 폐교를 이용한 아미미술관이 많이 알려졌지만, 우체국이 미술관이 되어 예쁘게 변신한 '면천읍성 안 그 미술관'의 앞마당과 정원의 쉼도 좋다. 


언덕길의 낡은 자전거포는 동네 책방 '오래된 미래'로 바뀌어 동네 사람들의 문화 마실터이기도 하다. 책방 옆집의 감성 소품 진달래상회, 공출판사, 그야말로 옛날식‘별다방’, 시장제분소 떡방앗간 골목을 느린 걸음으로 둘러보기에 딱 좋다. 걷다가 허기지면 초록색 쑥면의 초원콩국수 집 앞으로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마음 챙김의 시간성지 순례길

당진을 신앙의 못자리이자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돌아보다 보면 내심 수긍이 된다. 천주교가 자리 잡도록 큰 역할을 했던 분들이 순교한 유적지 신리성지,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담고 있는 충청 최초의 본당인 합덕성당,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이며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던 솔뫼성지의 당진이다. 자동차로 달리면 세 군데 각각 약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어서 성지 방문만을 목적으로 하루를 계획해도 좋을 듯하다. 



또 다른 길이 있는데 바로 버그내 순례길이다. 버그내는 합덕의 오래된 장터 이름이다. 순교자들의 길을 따라 고요하고 평온하게 자연 속을 걷는다. 솔뫼성지를 시작으로 합덕성당과 신리성지까지 13.3Km 코스로 비순환형 길이다. 대략 4~5시간 걸으며 차분히 나를 다스리는 시간이다. 당진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 챙김의 시간도 갖는다.




-하얀 연꽃잎이 스며든 맛신평양조장

당진의 술도가 신평양조장 역사는 90년이 넘었다. 그 세월 동안 발효된 술맛은 더 깊어졌다. 하얀 연꽃잎을 발효 과정 중에 곁들여 빚어내는 백련막걸리로 지금껏 맛을 지켜왔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그리고 그 아들이 3대째 이어온 가업은 장인정신으로 양조문화를 계승해 나가는 중이다.  

   

오래된 한옥 고택 옆으로 신평양조장 뮤지엄이 먼저 보인다. 해풍을 맞고 자란 당진의 품질 좋은 쌀로 3대째 이어오는 백련막걸리와 백련 맑은술이 그동안 어떻게 빚어 왔는지 보여주는 곳이다. 백련막걸리는 한때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되기고 했으며 여전히 전통주 명가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양조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술의 제조 공정, 역사의 흐름에 따른 술의 변화, 세상의 술 이야기를 꼼꼼히 보여준다. 술 한 모금 시음도 하고 막걸리 만들기 체험과 소믈리에 교실 등의 참여 시간도 준비되어 있다. 시간이 익어가는 양조장이라는 테마로 돌아보는 옹골찬 예술 감성공간이다. 술과 인문학에 관한 공부와 하얀 쌀과 그에 대한 가치 또한 비로소 새롭다. 하얀 꽃 백련잎과 연잎주의 전통이 이어지면서 신평양조장의 꿈도 쉼 없이 발효되고 익어간다.        


 


-불꽃같은 삶작가 심훈의 필경사

신평양조장에서 15분 정도 거리의 필경사(筆耕舍), '붓으로 밭을 일군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농촌 소설인 <상록수>가 탄생했다. 작가 심훈이 낙향해 터를 잡아 직접 설계해 지은 집이다. 필경사는 당시 농촌 계몽활동을 하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는 조형물들과 시비가 마당에 전시되어 있다. 


마당 옆 심훈기념관은 작가 심훈의 활동이 전시물과 영상, 디오라마 등으로 다양하게 분류되어 전시되었다. 작가이면서 영화감독이기도 했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당시 경성방송국 조선어 아나운서까지 다재다능한 인재였다. 일제강점기 시절 당시 아나운서로서 뉴스를 읽던 중 '황태자 폐하'라는 부분에서 도저히 읽지 못하고 어물거리며 불편한 기분을 참지 못해서 3개월 만에 해고된 사실도 알게 된다.


작가가 직접 설계했다는 '심훈의 집'이 산 아래 소박하다. 전통적인 외관과 내부는 오밀조밀 짜임새 있고 정갈하다. 집 앞으로 들판이 펼쳐지고 저편으로 서해가 보이도록 자리 잡아서 문학적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초가집 뒤편으로 그가 심었다는 대나무숲이 가끔 바람에 일렁인다.






https://bravo.etoday.co.kr/view/atc_view/15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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