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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 Oct 29. 2024

퇴사를 마친 백수의 행복한 꽃길

그래, 그동안 고생했어~

퇴사 후 한 달이 지났다.

퇴사를 마친 지금 나는 백수이고 주부이다.


맹위를 떨치던 폭염이 물러간 요즘은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시간이 많아진 나는 근처 공원으로 아침운동을 간다.

9월까지 푹푹 찌던 무더위는 10월이 되니 제법 가을다워졌다.

선선한 찬 공기는 이 아침 공원을 한 바퀴 돌기엔 너무 청량하다.

가을 냄새가 진하게 어우러져있어 자꾸만 심호읍을 하게 한다

아주 파아란 하늘과 붉어가는 나뭇잎들 그리고 살랑이는 바람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가을 아침이다.


공원엔 혼자 천천히 걷거나 빠르게 걷는 사람이 있고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견주는 천천히 걸으며 보폭을 맞추며 산책하고.

둘이 셋이 걸으며 얼굴을 마주 면서 이야길 하며 걷는 사람들.

운동기구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

테니스장에서 공치는 소리들.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한가롭게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고 있다.

아침이 이렇게 활기찰 수가 있다니 출근전쟁을 하던 한 달 전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다.

백수가 되니 느낄 수 있는 여유이다.

아침운동 가는 집 근처 공원


회사 다닐 땐

자주 가슴이 두근거려 힘들었다.

아~뭐지? 남들도 그런가? 

아마도 그렇겠지..

그들 또한 직장인이니 같은 상황 들일 것이다.

반복되는 스트레스에 번아웃도 오고 늘 퇴사를 꿈꾸고 그날이 오길 바라며 출근하고 퇴근하고

매일을 그렇게 반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고 일하며 지치고 힘들 때면 남편에게 하소연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의 공감력은 아주 탁월하다.

어쩌다가 나의 하소연 수위 정도가 지나칠 때면 '어딜 가도 다 거기서 거기'라고 선을 긋는다.

그러던 남편이 내가 10년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게 되자

"이제 쉴 때도 되지 않았냐"라고

"그동안 고생했다"는 그 말이 퇴사과정에서 아팠던 맘속의 상처가 치료되는 기분이었다.


아~~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 것인가!

퇴사를 하게 되었으니..


요즘 나는

커피 한잔을 들고서 소파에 앉아 라디오를 듣거나 일할 땐 보지 않던 드라마를 정주행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지금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불과 한 달 전 직장생활과 집안일을 병행하던 직장인이던 내게 청소는 밀린 숙제였다.

직장생활 중 제일 난제였던 게 청소였다.

안 하고 미루고 미루어둔 방학숙제 같던 청소를 맞벌이 부부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런 청소로 인하여 맞벌이 동생 부부에게도 청소대첩이 왕왕 벌어졌다.

40평 집을 특히 여름에 청소기 돌리기는 극한의 노동이었기에 소소하나 격한 청소전쟁빈번히 발발하였다. '청소기는 왜 안 돌렸냐? 나도 바빴네, 일찍 퇴근한 사람이 청소를 해야 한다!' 등

전쟁, 휴전, 소모전을 반복하다 동생부부에게 올해 극적인 평화가 찾아왔다.

그들의 집 청소는 이젠 그 누구도 아닌 도라(로봇청소기의 이름이다)가 하기에...


백수인 내게 '청소'

새털같이 많은 게 시간이고 시간은 넘치게 많으니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청소이다.

푸 하하하 이런 게 백수만의 여유란 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어느 광고처럼

누리리라~ 이 여유로움과 선택적 게으름을...


하... 그러나 무엇이던 대가가 따르기 마련인가?

지난 한 달여 선택적 게으름은 그만큼 확실한 보상이 주어졌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몸무게로 단 1g의 마이너스 없이 차곡차곡 플러스되어 섭섭지(?) 않게

충분히 눈물 나는 보상을 받고 있다. 부작용이다.


퇴사 후 한 달이 지났다.
동네방네 자랑한 메일

직장 생활 중 사무실에서 스트레스받는 날이면 컴퓨터 모니터 창을 올리고 내리며(대놓고 볼 수가 없었다) 힐링되는 글을 찾아 읽던 브런치 스토리 작가신청을 하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교내 백일장에서 수상한 경력을 가족들에게나 어필하다가 시간이 많아진 요즘 글이 쓰고 싶어졌다.

잠이 오지 않던 불면의 밤이면 일기처럼 메모장에 적어가던 소소한 일상들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브런치 스토리 작가 축하 메일을 받던 날은

어린 날의 내가 된냥 선물 받은 아이처럼 들떴다.


어설픈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은 부끄럽지만

글을 쓰면서 앞으로 더 나은 내가 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백수의 행복한 꽃길이 되길 바라본다.


전화위복 이랬던가?

생각지도 못한 중년의 퇴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는 막연한 막막함이 아닌

인생 2막 새로운 시작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퇴사로 아파하고 힘들어하던 내게 남편이 말해주었던

"그동안 고생했어~" 치료가 되던 그 말을 이젠 나지막이 내게 해본다.

'그래 그동안 고생 많았어~' 


백수의 행복한 꽃길이 계속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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