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걷고 있나요? 기록을 시작합니다.
드르르르륵. 익숙한 진동이다. "지금 걷고 있나요?" 나도 모르게 이십 분 이상 걷고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목적지로 가는 교통편이 애매해서, 또 누군가는 혈당 스파이크를 방지하기 위해 걷는다. 나는 그냥, 원래 많이 걸었다. 그런데 언제부턴 멈췄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날부터 기록이 멈춰 있었다.
조금도 특별하지 않아
열 두 살 남짓, 어렸을 때부터 지하철을 타고 서울 중심부를 돌아다니는 게 아주 좋았다. 주말이나 방학이 되면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경복궁 일대를 돌아다녔다. 키가 작은 어린이였던 까닭에 근정전 지붕을 보기 위해 고개를 뒤로 한껏 젖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스무 살이 지나서는 반경이 좀 넓어졌을 뿐이다. 대학로, 종각, 을지로, 명동. 이리저리 되는 대로 많이 걸었다. 영화관이나 카페에 들락거리면서 주머니를 털기도 했다. 백수 시절에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러 걷기도 했다. 가끔은 이 빌딩 숲에 내 자리 하나 얻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외로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날씨가 아주 좋아 걸을 때도 있었지. 좋을 때도 슬플 때도 많이 걸었다.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모르는 파업 선언
속도가 나지 않는다. 어깨와 목 뒤를 주물러가며 애를 써도 이십 분이면 지쳐버렸다. 몇십 년 동안 군말 없었던 몸이 비틀어진 자세나 걸음걸이를 더는 감당할 수 없는지 파업을 선언했다. 그래서 걷지 않았다. 사실 걷지 못했다는 게 좀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겁이 났기 때문이다.
사람이 붐비는 거리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는 게 정말 재미있었는데. 몸이 아파서인지 날카로워져서, 인파가 몰리는 곳을 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가끔씩 인적 드문 길만 조금씩 걸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오늘은 무르지 않기
오늘도 몸이 무거웠다. 입술이 다 터진지 며칠째고 잠도 많이 설쳤다. 집에서 뭉개고 싶은 마음 반, 모처럼 나가고 싶어하는 애인과 동행하고 싶은 마음 반. 기분 좋게 벌떡 일어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이성(理性)이 이겼다. 오늘은 나가는 게 좋을 거라고. 무르지 않기 위해 단호하게 대답했다. 갈 거야.
차가 막혀 예상 보다 많이 걸어야 했다. 찬바람에 몸이 움츠러드는 것 같았지만 이왕 왔으니까 고고. 조금 더 사람이 많은 거리로 들어섰다. 좋아하는 메뉴를 먹으러 가자는 배려에 조금 더 힘을 내 본다. 오늘은 대기줄이 애매했다. 원래 같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갔을 텐데, 어쩐지 기다려도 좋을 것 같았다.
지금 걷고 있나요?
대기 의자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오랜만이다. 하늘은 점점 더 맑아지고 햇살도 따뜻하다. 건너편 에그타르트 가게를 드나드는 사람들, 방향을 찾느라 분주해보이는 외국인 관광객들. 그리고 친구나 연인과 돌아다니는 사람들. 여전히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생김새는 물론이고 표정이나 걸음걸이, 스타일링까지 모두 제각각이다.
배가 부르다. 날은 여전히 좋았다. 그냥 돌아가면 집이니까, 반반의 마음을 붙잡아 힘을 내서 함께 걸었다. 구경하던 에그타르트도 하나 사고, 우연히 마주친 달콤한 냄새를 따라 베이글과 커피도 샀다. 잊고 있던 사이, 스마트 워치가 말했다. "지금 걷고 있나요?"
이미 가을이 온 공원에서 커피가 식을 때까지 앉아 있기로 했다. 그 사이에 까치와 벌레가 왔다 가고 산책을 나온 가족들이 킁킁거리는 강아지들과 함께 지나갔다. 모처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지나간 과거와 지금의 불안,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뒤죽박죽 이야기들.
이제 떠날 시간이다. 오랜만에 예쁜 가을 숲에서 보낸 여유, 단호하게 외친 보람이 있다. 그 뒤로도 다른 동네로 건너가 아주 많이 걸었다.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누비고 집으로. 스마트 워치는 운동링을 연거푸 뺑뺑 돌리면서 경망스럽게 나를 축하했다.
다시 별다른 마음을 먹을 필요 없이 걸을 수 있을까? 오늘은 성공했지만 사실 자신은 없다. '그냥' 하던 일들이 '어려운' 일이 되고 나면 돌이키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한 번은 걸었으니까, 다음에도 망설여지는 순간이 온다면, 오늘의 기억이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