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1] 탁상사원(Taktsang Gompa)
오늘은 부탄의 랜드마크인 탁상 사원(Taktsang Gompa)에 가는 날이다. 탁상(Taktsang)은 호랑이의 둥지를 뜻하는 말로, 호랑이가 둥지를 튼 사원(Tiger’s Nest)이라고 불린다. 해발 3,140m의 깎아지른 절벽에 있어서 존재만으로도 주목받는 곳이다. 파드마삼바바가 두 번째로 부탄을 방문했을 때,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여 암컷 호랑이를 타고 날아와서 온갖 잡신을 물리치고, 3개월 동안 동굴 속에서 명상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에 그가 숨겨둔 보물(경전/불상 등)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1998년 큰 화재로 본당이 완전히 소실되어 한동안 사원 출입이 금지되었으나 지금은 가능하다. 일반적인 문화 관광(Cultural Tour)을 하는 이들에게는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고난도의 코스이기도 하다.
보통 오르내리는데 다섯 시간쯤 걸린다. 워낙 저질체력이라 미안하다고 인내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더니, 마음 편하게 먹으라고. 다섯 시간이고 여섯 시간이고 걸려도 상관없으니 눈치 보지 말란다. 재이는 파드마삼바바를 만나기 위해 전통의상을 준비한 거라며 꼭 챙겨 입겠다고 했다. 나는 최대한 짐을 줄이고, 두툼한 양말을 꺼내 신고 신발끈을 단단히 동여맸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재이가 내 배낭을 메게 되겠지만. 그나마 산이라고는 한라산 윗세오름과 울릉도 성인봉 정도밖에 못 가봤는데, 고도가 높다고 하니 괜히 더 걱정이 되었다.
어떤 여행가는 중간까지 말 타는 것을 고려해보라고 조언했다. 두통으로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힘들었다는 후기까지 보고 나니 걱정이 앞선다. 실제로 등산로 초입에 말이 있다. 추가 비용을 내면 구간의 1/3 정도는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웬만하면 타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나머지 구간도 힘들것이고, 말이 너무 즐겁다며 하하호호 웃으며 걸을 리도 없을 텐데. 일부는 꼭두새벽부터 꼬박 걸어서 등산로까지 온 다음에, 반나절 동안 사람을 태우고, 다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한다. 어쩌다 그 운명으로 태어났냐고 안타깝게 생각할 만큼 고된 삶이다. 물론 주인도 말과 함께 먼 거리를 걸어서 오는 데다 생계 수단이니 타지 말라고는 못하겠다. 또한 여행자마다 사정이 있으니 말을 탄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몇 번의 얕은 하이킹을 지켜본 도마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내가 정말 말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으면 그가 먼저 타라고 했을 테지. 뜨거운 햇볕 만으로도 하이킹 여부를 물었을 정도니까. 입구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등산 스틱을 유료로 빌려주는 사람도 있었는데, 도마는 그것조차 필요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냥 가야지. 도마가 애매한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란 걸 알기에 믿음이 생겼다. 어쨌든 그렇게 출발이다. 남걀은 활짝 웃으며 잘 다녀오라고 했다. 보통 운전기사는 목적지에 내려주고 일행이 돌아올 때까지 자유시간을 갖는데, 오늘 같이 시간이 많이 남을 때는 무엇을 할까? 어디 가서 낮잠이라도 자고 올 수 있을 것 같은데.
두통도 없고, 날씨가 좋아서 산길도 보송보송하니 이만하면 온 우주가 최선을 다해 도와준 셈이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올라가면 된다. 부탄을 찾는 여행자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 말에 탄 사람들의 숫자가 제법 많았다. 초반부는 말과 사람이 뒤섞여 간다. 말과 함께 오르는 코스는 또 하나의 진풍경이 있었다. 등산로가 지뢰밭이다. 관광뿐만 아니라 사원에 필요한 물자를 운반하는 데도 말을 쓰기 때문에 어쨌거나 말똥 밭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난생처음 말똥 냄새가 엄청 다양하다는 것과, 오래되지 않은 것의 냄새는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부와 우리는 말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산을 올랐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낯빛이 숨을 헐떡이는 나와 비슷해진다. 송골송골 맺힌 땀, 생기 없는 눈빛, 나는 이렇게 가까이서 말의 고통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일부는 똥을 투두둑 싸면서 터벅터벅 나아갔고, 갑자기 멈춰서 물을 꿀꺽꿀꺽 마시거나 풀을 부왘 뜯기도 했다. 길이 험해 무서운지 멈춰 서거나, 앞발이 미끄러져 버둥대기도 했다. 그렇게 그 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들보다 빨리 숨이 찼지만 일행의 배려로 마음껏 쉴 자유가 있었다. 도마는 산행 속도를 늦췄고, 재이는 두 사람분의 짐을 든 채로 쉴 시간을 줄 겸 중간중간 멈춰서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으니까.
한 번은 말에게 길을 내주려고 등산로 가장자리에 섰는데, 마부가 그의 진로를 제대로 살펴주지 않았다. 나 또한 말과의 거리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해서 말의 옆구리에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줄 알고 식겁했다. 여행 내내 한 번도 인상을 쓴 적이 없었는데 너무 놀라고 화가 나서 마부를 째려보았다. 무섭기도 했고, 그 말이 힘겹게 걷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마부가 더욱 미웠다. 여기까지 데려올 거면 안내라도 잘해줄 것이지.
지친 말의 얼굴을 생각해서 빨리 잊어버리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금방 가라앉지 않는다. 생각을 지워준 건 끝없는 오르막이었다. 숨찬 상황을 해결하느라 잡생각이 뒤로 밀렸다. 역시 정신이 괴로울 때는 몸이 고생을 해야 하는 건가. 한 시간 남짓 올랐을까, 말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끝났다. 등산을 마친 여러 마리의 말이 미동도 없이 눈을 감거나 멍하니 뜨고 서 있었다. 아직은 훈련 중인 건지 사람을 태우지 않고 등산한 망아지가 있었는데, 땀에 젖은 갈퀴와 힘없는 눈망울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생각할까. 그저 녀석들이 충분히 쉬고 맛있는 풀을 양껏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쯤에서 나오는 카페테리아에서 한 번 쉬어갈 수도 있는데 우리는 쭉 이어서 가기로 했다. 카페테리아에서 다시 등산로에 진입하는 가파른 길을 오르느니 그냥 쉬다 걷다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미 상당히 올라온 후라 이제부터는 전망도 좋다. 사원을 바라볼 수 있는 지점에는 공간을 좀 더 크게 만들어 두기도 했다. 다들 인증샷을 남기며 지나갔다. 나도 이때만큼은 귀차니즘을 이겨내고 재이에게 가방을 받아 카메라를 꺼냈다.
전체적인 코스를 보니 옆 봉우리를 넘어서 가는 구조다. 옆 봉우리를 돌아서 아래로 내려간 다음에 다리를 건너서 다시 사원이 있는 바위산으로 올라가는 코스다. 두 봉우리 사이에는 긴 폭포가 있다. 아직은 건너편에 사원이 있지만 목적지를 마주 볼 수 있는 높이에 다다르자 무사히 잘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보니 바위산의 풍경만으로도 장관인데, 절벽에 걸린 듯한 사원의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이다. 외계인이 와서 지은 게 아니냐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그 많은 자재는 어떻게 다 실어 나른 걸까. 암반의 모양에 맞춰 재단을 해서 기둥을 박고, 벽을 쌓고, 문을 달았을 테지. 지금도 승려가 수행을 하는 곳이다. 꽤나 고된 환경일 텐데 무슨 생각을 할까.
사원 입구는 생각보다 많이 붐볐다. 아무것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짐을 맡기고 되찾으려면 입구에서 대기하게 된다. 도마가 짐을 보관하고 돌아온 후에야 내부로 들어가는 가파른 계단에 올라설 수 있었다. 계단을 오르자 따뜻한 밀크티를 나눠주었다. 쌀 뻥튀기까지 뿌려준 밀크티는 싱겁지도 달지도 않은 딱 좋은 맛이었다. 사연이 담긴 맛은 기억 속에서 점점 훌륭해질 것이다. 미슐랭 별 세 개를 단 밀크티가 있다고 해도 이길 수 없겠지. 출출해진 배를 달래고 따뜻하게 몸을 데워준 마법의 차.
도마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파드마삼바바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매번 깍듯이 인사를 드리고 공양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실 불교 이야기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사원이 있다는 자체가 요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재이는 아직 지식이 너무 얕다며 좀 더 이해한 뒤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존재만으로도 신비한 사원은 하이라이트가 될 수밖에 없는 요물이었다. 농담처럼 내게도 태워다 줄 호랑이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모두의 도움으로 눈부신 풍경을 보고 가는구나.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하지만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더 기니까 뭐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