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2] 키츄사원(Kyichu Lhakhang)
등산을 무사히 마치고 나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다. 마지막 일정은 658년에 세워졌다는 오래된 사원, 키츄사원(Kyichu Lhakhang)이다. 웬 상가에 차를 세우나 했는데, 그 옆의 논길을 따라 십여분 정도 걸어가니 작고 아담한 사원이 나왔다. 티베트를 최초로 통일한 왕이 지었다는데, 본래의 건물은 화재로 소실되고 19세기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국왕의 할머니가 와계셔서 건물 내부는 구경할 수 없다고 했다.
사원 지붕에 노란빛의 장식을 달아 치장을 했는데도 세월이 느껴진다. 건축 자재를 기계처럼 재단할 수 없었던 시절에 지어진 데다 세월에 닳아서 돌 모양이 약간 삐뚤 하고 둥그스름하다. 건물의 담도 높지 않다. 특별한 분이 방문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꽤 있었다. 오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아늑한 사원이다.
내가 사원을 둘러보는 사이에 재이와 도마는 긴 얘기를 나눴다. 도마에게 추수할 무렵의 노랗게 변한 논을 ‘황금물결’에 비유한다고 말하니, 쌀이 더 귀한 건데 왜 금을 들이대는지 이상하다고 했단다. 물질만능주의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느꼈나 보다. 황금물결이라는 비유에서 ‘색’만 떠올렸지 ‘황금'을 고민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겠다. 배고픈 시절에 쌀이 너무도 귀하고 소중한 데다, 색도 금과 비슷해서 그렇게 불리지 않았을까 싶지만 진짜 이유가 궁금하긴 하네.
재이는 도마가 부탄의 정책 방향에 대해서 힘주어 말했다고 했다. 공평하고 점진적인 경제 성장, 환경 보호, 전통문화 보존, 그리고 좋은 정부까지 4가지를 중심에 두고 있으며, 도마도 동의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인도에서 학위를 받았다고 하는데, 인도에서의 시간이 좋지만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부분에서는 부탄과 많이 다를 테니까.
노란 물결이 출렁이는 세상을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멀리 보이는 산자락에 또 무지개가 걸려있다. 이렇게 갑자기 무지개를 만나는 일은 더이상 없다. 수수께끼 같은 도마와의 시간도 끝이라니. 이 모든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하니 더욱 아쉽다. 아직 우리는 서로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앞으로는 더 재밌을 것 같은데.
마지막 약속을 정하고 보내는데 쿨하게 뒤돌아지지가 않네. 오늘은 오래도록 배웅을 하고 싶다. 내일 비행시간이 이른 탓에 서둘러 인사를 나누고 뒤돌아서야 할 테니까. 근데 우리가 이렇게 계속 오래 서 있으면 도마가 퇴근을 못한다. 어서 방으로 들어가 눈 앞에서 사라져 줘야지.
시간은 멈추지 않는 강물처럼 부지런히 흘러 결국 일주일의 끝에 닿았다. 여행이 끝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이미 지나간 행복과 조금씩 다가오는 그리움이 뒤섞여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동안 참아왔던 맥주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기쁨을 넘어서는 아쉬움까지. 오늘만은 아주 느리게 마침표를 찍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