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탐험

[Day 6-2] 파로 중심가(Paro)

by 시에


SHOPPING

여섯째 날 오후는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재이가 부탄 음악에 반해버린 터라 CD를 구입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예스맨 도마는 이번에도 즉시 우리를 슈퍼마켓으로 데려 간다. 직원이 선반에서 CD뭉치를 내려놓자, 도마는 적당히 뒤적거리더니 서로 다른 3장의 CD를 골라주었다. 바로 지갑을 열었다. 집에서 들으면 그 맛이 아니겠지만 여행이 떠오른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울 것 같다. CD를 챙겨 든 재이는 이 노래로 출퇴근의 괴로움을 달래 볼 거라고 했다.


딱히 요리는 안 하지만 시장 구경은 좋아한다고 했더니 보이는 슈퍼마다 들어가겠느냐고 묻는다. 부탄 아이들이 즐겨먹는 사탕이나 젤리가 있으면 사고 싶어서 모두 함께 선반을 훑어보는데 유별난 게 없다. 공장을 짓지 않아서 대부분의 품목을 수입한다더니, 값비싼 유럽 사탕이나 초콜릿은 왜 이렇게 많은지. 적당히 먹기 좋아 보이는 사탕 꾸러미를 찾았으나 그 역시도 일본 사탕이었다.


도마는 내가 사탕을 사지 못한 게 마음에 남았는지, 차를 타고 가다가 잠깐 슈퍼에 다녀오더니 망고맛 캔디를 한 움큼 쥐어주었다. 또 인절미 같은 모양의 말린 치즈를 건네주기도 했다. 치즈는 너무 단단해서 씹을 수가 없었는데, 알고 보니 입 안에서 녹여먹는 것. 입에 물고 우물우물 거리면 우유맛이 조금씩 퍼진다. 어쩌면 이게 부탄식 사탕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사소한 것을 기억해주는 도마가 조금 더 좋아졌다. 무뚝뚝한 구석이 있지만 다정한 사람이라고. 페이스북 친구를 맺은 후로 재이와 도마는 일정이 끝나면 밤마다 사진을 주고받으며 수다를 떨었다. 번역기나 영어사전의 힘을 빌릴 수 있는 대화는 우리에게도 썩 나쁘지 않네. 이제 좀 편하게 이야기하며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내일 하룻밤밖에 남지 않았다. 꼭 여행도 사람도 이제 좀 적응했다 싶으면 끝이 나더라.



STYLE

재이는 내내 도마의 헤어스타일이 멋지다고 말했다. 혹시나 싶어 너처럼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역시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오케이. 그의 뒤를 졸졸졸 따라 도착한 곳은 ‘헤어살롱’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작은 미용실이었다. 단골가게 디자이너와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80 눌트럼(Ngultrum)이니까, 우리 돈으로 약 1400원 정도에 부탄의 최신 유행을 따라가 본다.



재이를 지켜보며 미용실을 구경했다. 좁은 공간에는 양쪽 벽면을 활용해서 두 개의 자리를 마련했다. 양쪽을 한 번씩 번갈아 손님을 앉히나 보다. 벽에는 모델의 사진이나 ‘헤어진 연인에게 최고의 복수는 멋져지는 것’이라는 웃픈 문구가 붙어 있었다. 높은 곳에는 애정 하는 국왕의 사진도 걸어놓고, 낡은 가위도 주렁주렁 매달았다. 몇 분 둘러보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 사이에 프로 디자이너는 엄청난 속도로 재이의 머리를 다듬었다.



재이는 완성된 헤어스타일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했고, 이제는 옷을 차려입을 차례. 전통 복장인 ‘고'를 파는 상점에 들어가니 관광객을 상대한 경험이 많아 보이는 주인이 재이를 스윽 훑어본다. 눈대중으로 사이즈 파악하고는 가게 안쪽에서 옷 한 벌을 들고 나왔다. 그녀가 골라준 디자인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쏙 들었다. 도마는 능숙한 솜씨로 옷을 입혀주었다. 생각만큼 만만치가 않다. 천이 삐져나오지 않게 맞춰야 하는데도 여미는 옷고름은 하나뿐이었다. 도마는 몇 번이나 입어봤을까? 매일 혼자서 어떻게 저렇게 갖춰 입는 건지 대단하다. 둘이서 하면 되는 수준으로는 익혀야 하는데 순서라도 외워야지.

1. 한복 두루마기처럼 펑퍼짐하고 긴 옷을 잘 맞춰서 겨드랑이 쪽에 옷고름을 맨다.

2. 허리 아래쪽의 옆선을 양손으로 잡고 위로 끌어올린다.

3. 옷매무새가 흐트러지지 않게 유지하면서 허리를 감싸는 방식으로 옆구리 부분의 천을 뒤로 감는다.

4. 허리띠를 맨다.

5. 허리 위쪽의 남는 천을 잘 정리해서 허리띠가 보이지 않도록 덮는다.



NIGHTS

시내 상점을 들락거리고 시간이 조금 남아서 해질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밤거리를 걸어볼 수 있는 것도 오늘뿐이다. 산이 있는 데다 가로등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어둠이 엄청난 속도로 퍼졌다. 저녁 치고는 이른 시간인데도 아주 깜깜하다. 도마는 우리가 충분히 볼 수 있도록 천천히 걸었다. 여행자가 많은 도시라 기념품점도 워낙 많고, 간판은 이미 전부 영어로 되어 있다.


도마가 파로에 살아서 그런지 중간중간 그의 지인이 지나갔다. 눈인사를 하고 몇 마디씩 나누면서 웃는다. 친구들과 얘기할 때의 표정은 우리와 있을 때랑은 또 달랐다. 표정에서 관계가 읽히니 그것도 참 재미있구나. 만약 이번 여행이 끝나고 고객과 여행 가이드의 역할에서 벗어난다면 그땐 또 우리 모두 다른 표정을 짓겠지.


거리의 끝에 서 보니 멀리서 파로죵이 빛을 발하고 있다. 가까이 볼 수 있는 곳까지 걸어가기로. 시가지에서 벗어나니 정말 까맣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핸드폰 라이트를 켜고 나란히 걷는 재이와 도마. 나는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몇 번인가 둘이 걷는 모습을 보았지만, 오늘 보니 함께한 시간이 느껴진다.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이 사그라든 것 같다. 이런 모습을 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니 무척 아쉽다.


도마는 파로죵의 조명을 설치할 때 한국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서로의 나라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고 하면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게 사람의 심리. 게다가 도움을 줬다고 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다. 돌아가는 길이 워낙 어두워서 남걀에게 연락을 했는데, 조금 늦을 것 같다며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다. 사실은 우리가 저녁을 즐기고 싶어서 야근을 부탁한 셈이니 괜찮을 수밖에.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남걀은 우리가 생각보다 오래 돌아다니는 바람에 미용실에 간 모양이었다. 남걀과 재이는 달라진 서로를 보고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변신의 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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