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왕국, 부탄

[OUTRO-1] 부탄(Bhutan) 여행

by 시에

부탄에서 가져온 차를 끓이고 음악을 틀었다. 물론 그때의 맛도 기분도 나지 않는다.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서 비슷한 것을 데려오지만 이미 과거의 일이다. 또한 일상의 괴로움은 기억을 더욱 미화시킨다. 그렇다면 과연 부탄은 완벽하게 행복한 나라일까? 잠깐 머물고 떠난 이방인은 어떤 행복을 느꼈을까?


행복한 나라?

어렸을 때는 세상이 둘로 갈라져 있다고 믿는다. 만화 주인공은 언제나 정의롭고, 맞은편에는 지독하게 나쁜 악당이 있다.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나누어 단정 지으려고 한다. 부모님의 ‘쟤랑 놀지마'라는 말에 담긴 의미는 그 아이는 ‘(나에게 도움이 안 될) 나쁜 아이'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사이의 가운데 공간은 지워버린다. 하지만 결국에는 알게 된다. 대부분은 어중간한 어디쯤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여행지도 그와 비슷했다. 남다른 풍경을 보거나 멋진 체험을 했다고 해서 진짜 천국은 아니다. 현지인이 겪는 문제는 관광객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복지제도가 좋다는 유럽도 문제가 있다. 요즘은 테러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부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어렴풋하게나마 ‘행복'을 느낄만한 묵직한 무엇이 있을 거라고. 홍보 문구로 쓸 수 있을 만큼의 다른 점. 딱 그 정도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었다.



환경 보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더 힘든 시대에서 환경 보호 기준이 높은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절제를 추구하는 정책이 유지될 수 있다니. 수력발전소를 증설하여 전기 수출을 늘리는 길을 택하지 않는 것도 환경 보호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행객의 수를 조절하는 것도 마찬가지 관점이다.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게 되면 그만큼 자연이 파괴될 수밖에 없다고.


대신 그만큼의 불편함이 있다. 개발이 더디기 때문에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서 이동이 필요한 경우 효율성이 떨어진다. 여행자인 나도 깨끗한 자연을 맛보는 대신 험한 도로를 달려야 했다. 또한 엘리베이터와 같은 과학기술의 편리함도 누리지 못한다. 공장을 짓지 않으니 다양한 물건을 바로바로 써볼 수도 없다.


즉, 환경을 보호하려면 많은 사람들의 인내가 필요하다. 부탄에서 산다면 생각지 않은 불편을 겪게 될 텐데 마냥 괜찮다고 여길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신상’을 무척 좋아하는 사회에서 성장했는데. 알게 모르게 자본주의와 산업화에 완전히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경 파괴가 싫지만 불편한 것도 싫다며 양쪽으로 욕심을 부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개발 속도나 목표가 적절한 지는 모르겠지만, 부탄 정부는 건강한 자연을 잃게 되면 단 며칠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 단호한 의지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복지제도

모든 지도자가 국민의 행복을 추구한다지만 우습게도 입으로만 위하는 경우를 더 많이 봤다. 그래서 부탄의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는 자본주의의 비정함을 겪어본 사람들에게는 더욱 매력적이다. 스스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게 배울 기회를 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열심히 살면 위기의 순간에는 국가가 지켜줄 거라는 믿음.


무상의료

첫날밤에 호텔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이 병원에 다녀온 일화를 들려주었다. 일행 중 한 명이 등산 중에 다리에 다쳐서 병원에 갔는데 치료비를 내지 않았다고. 병원 시설이 좋지는 않았지만 여행자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했다. 게다가 자국민이 부탄 내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외국 병원으로 보내는데, 직접적인 의료비용부터 이동 경비까지 전부 책임진다고. 본인이 의사라 수술비용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알기 때문에 더욱 놀랍다고 했다. 부탄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 것 같다고. 그분은 직업 특성상 돈 때문에 고생하는 환자를 많이 봐서 더 충격을 받으신 듯했다.


물론 현실은 완벽하지 않다. 아직 시스템이 목표를 쫓아가지 못한다. 병원과 의료진의 숫자도 부족하고, 위급 상황에서 오지의 환자를 신속하게 이송할 교통망도 갖추지 못했다. 실질적으로는 대도시에 살지 않으면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다. 게다가 사고 위험이 높은, 주로 공사장에서 일하는 일부 네팔이나 인도 출신의 사람들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상의료는 ‘행복'에 가깝지 않을까. 모두에게 최소한의 행복을 주기 위한 노력이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시스템은 없고,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희망이니까. 조금씩 개선되는 모습을 보면 그 희망은 믿음이 된다.



무상 교육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무상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해외로 진학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자력으로 비용을 충당하거나, 국비장학생에 선발되거나. 부탄어(죵카어) 시간을 제외한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유학을 가더라도 기본적인 소통의 문제가 없다. 개발에 보수적인 부분이나 전통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 폐쇄적인 것 같지만, 국제 사회에서 살아갈 준비는 시키되 급진적인 변화를 지양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부탄 아이들은 다양한 꿈과 희망이 있다. 가난해도 흥미 있는 것을 배울 수 있으니 밝은 미래를 상상하고 기대한다. 행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교육의 현실도 완벽하지 않다. 우선 산간벽지에 있는 아이들이 혜택을 받기 힘든 인프라 문제가 있다. 두 번째로는 교육 수준과 사회 상황이 맞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다. 부탄은 여전히 농업과 목축업이 중심이며 산업화가 더디다. 즉, 다양한 공부를 하더라도 국내에서 전공을 살려 일하기가 어렵다. 자연스럽게 젊은 층은 실업 문제를 겪게 된다.


이렇게 바깥세상과 다른 속도로 사는 과정에서 생기는 괴리 때문에 어른들은 걱정이 많다. 게다가 요즘은 구글이나 유튜브를 통해서 산업화의 산물을 엄청나게 접한다고. 여행사 직원은 아이들이 한국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뜻도 모르는 채로 따라 부르고 춤추는 게 걱정된다고 했다. 자극적인 것들을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흡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상황이다. 자본주의의 장점도 폐해도 알기에 급진적인 변화를 지양하는 데, 모두가 적절한 판단을 할 거라고 기대하기에는 인간이 너무 나약하니까.



대외 환경

인도와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상황도 꽤 골치 아프다. 둘 다 만만찮은 과거를 가진 나라다. 옆에 있던 ‘시킴 왕국’은 인도로 편입되었고, 위에 있던 ‘티베트’는 중국에게 먹혀버렸다. 안 그래도 척박한 환경에 인도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최근에는 국경 근처에서 중국과 인도가 신경전을 벌이기까지 했다. 세계 경제가 호황일 때는 그래도 걱정이 덜한데, 지금처럼 미래가 불투명한 시대에서는 둘을 바라보는 마음이 평화로울 수가 없다.




부탄 왕국도 들여다보면 행복으로만 가득 찬 곳은 아니다. 실제로 자살도 늘고 있는 상황이다. 2016년에 92명이 자살했다. 완벽하게 행복한 나라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행복이란 단어와 잘 연결되지 않는 사건도 있었다. 90년대에는 전통을 보존한다는 이유로 종교가 다른 사람들을 내쫓았다. 하루아침에 난민이 되어버린 힌두교 신자만 해도 10만 명이 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국가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는, 어중간한 무엇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결국은 사람이 만든 것인데 사람과 닮을 수밖에. 다만, 부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수수께끼 왕국이 그리는 행복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부디 계속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 더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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