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RO-2] 부탄(Bhutan) 여행
어떤 여행이든 언제나 아쉽고 그리웠으니 즐겁지 않았을 리가 없다. 바보 같은 질문이다. 그렇다고 부탄에 인류가 겪어 보지 못한 기상천외한 기쁨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여행지의 특성 때문인지 다른 때보다 ‘행복’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소소한 순간이 쌓여 커다랗게 뭉뚱그려진 추억, 그 안에 담긴 인상적인 행복을 떠올려본다.
닮은꼴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다가 어떤 아이가 ‘아빠!’라고 외치며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엄마’를 ‘엄마’라 부르고, ‘아빠’를 ‘아빠’라 부른다는 게 정말 사실이구나. 그리고 오색의 조각보, 익숙한 빛깔의 한지, 도깨비 탈의 표정, 시장에서 굴러다니던 나무 그릇(제기)에 또 한 번 놀랐다. 마지막으로 고추나 마늘을 쓰는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엄마가 만들어준 반찬과 비슷한 맛이 난 요리. 여러 번 닮은꼴을 확인하면서 오래전 어느 세대에서는 접점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상상을 했다. 어쩐지 설레고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여백
까만 여백이라고 해야 할까, 다른 여행과 달리 밤이 길었다. 아침에도 도마가 데리러 오다 보니 꽤 여유가 있는 편인데 저녁 시간까지 길다. 와이파이 연결 상태가 좋지 않아서 침대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횟수도 줄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열 시간은 꼬박 잘 수 있을 정도다. 재이와 여행을 다닌 지 벌써 5년인데 둘이서 이렇게 긴 여백을 가져본 건 처음이다. 각자 하루를 정리하고 지나간 일들을 얘기했다. 도마에 대한 이야기도 쑥덕쑥덕. 때때로 재이는 부탄에 관한 책에서 다녀온 곳과 갈 곳이 적힌 부분을 찾아 읽어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시간이 너무 많아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덕분에 푹 쉬고 천천히 하루를 갈무리할 수 있었던 게 너무 좋았다. 어찌 보면 여행도 일상의 여백인데, 여행의 여백도 소중하구나. 그래서 다른 어느 때보다 많은 순간들을 기억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방에서 찍은 사진도 많다. 가끔 한 번씩 넘겨보면 느리게 흐르던 긴 밤이 떠오른다.
도마
무엇보다 도마와 함께 보낸 시간이 특별하게 남았다. 수수께끼처럼 알쏭달쏭한 그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은 멋진 풍경을 구경하는 것만큼이나 큰 행복이었다. 처음에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정확히 알고 싶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두가 그런 것처럼 어느 한쪽 면만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 가운데 어디쯤 있겠구나 싶었다.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 결국 우리들은 서로에게 계속해서 수수께끼로 남을 수밖에. 이제는 주고받은 이야기에서부터 표정과 걸음걸이 같은 사소한 것까지 모두 특별한 기억이 되었다. 지금도 재이와 나는 종종 도마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도마는 언젠가 한국이나 홍콩, 방콕에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서울에 가면 남산타워에 올라가 보고 싶다고. 부디 부탄의 하늘처럼 파랗게 맑은 어느 날, 그와 함께 남산타워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꼭 다시 만나자고, 계속해서 연락하자고, 기약 없는 약속을 나누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여행 중에 어느 상점에서 남미의 춤을 연상시키는 ‘Samba’라는 간판을 보고 부탄의 말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Wishes’와 같은 뜻이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우리들의 만남에 대한 소망을 담고 싶다. Samba!